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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화 Aug 02. 2019

유혹으로 삶의 여유로움을 되찾을 수 있을까

<유혹의 기술>이 말하는 유혹, 관계

                                                                                                                                                                                                                                                                                                       

그녀를 처음 만난 곳은 2년 전 목동 KT 챔버홀에서 진행된 ‘세바시(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강연에서다. 네번째 강사였던 그녀는 몸의 곡선이 그대로 드러나는 와인색 니트 원피스를 입고 나타났다. 니트 원피스가 썩 잘 어울리는 몸매였다. 긴 생머리에 하얀 얼굴, 큰 눈과 긴 목은 청초함까지 풍겼다. 매력있는 외모였다.


작가 이서희에 대해 아무런 정보 없이 마주했다. 그녀의 책 <유혹의 학교>가 베스트셀러인 것은 강연이 끝난 후 인터넷 검색 후 알았다. 그러고 보니 내가 팔로우했던 페북 인사가 그녀의 글에 몇번 ‘좋아요’를 눌러 읽어본 기억이 났다. 그녀는 잔잔한 말투로 유혹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많이 긴장했다는 본인의 말처럼 약간 경직되어 있는 그녀의 목소리는 차분하고 여렸다. 그런데 시간이 좀 지나니 말투에서 답답함이 느껴진다. 달변은 바라지도 않지만 저렇게 두서 없이 말하는 것은 이미 지겨워지기 시작한 청중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유혹하는 삶이라는, 본인이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뚜렷해 보였다. 내용도 괜찮은 듯 했다. 그러나 그녀의 이야기들은 듬성거렸다. 연결은 매끄럽지 않았고 목소리 톤은 일관되게 낮아서 무엇이 중요한지 깨달으려면 온 관심을 쏟아야 할 것 같았다. 곧 흥미를 잃고 휴대폰 게임을 시작했다.


그녀가 제대로 전달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궁금해져 <유혹의 학교>를 도서관에서 대여했다. 책을 읽으며 그녀의 글이 목소리보다 훨씬 매력적이라 생각했다. 그녀의 글은 심장을 조이고, 일상의 건조함 속에서도 노력을 한다면, 준비를 한다면 얼마든지 촉촉한 시간들을 보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한 시간에서 중요한 것은 유혹. 재미없고 시시한 관계가 아닌 나를 흥분시킬 관계를 맺으려면, 겹겹이 쌓인 껍질 속에 숨어 있는 관계의 본질을 맛보려면, 유혹해야 한다고 그녀는 말한다. 그것도 상대를 배려하며 여유있게.


그녀의 말처럼 상대를 알아가는 건 새로운 도시를 탐험하는 것과 같다. 낯선 곳을 헤매며 도시와 나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나의 인식과 지각이 확장되는 것처럼 유혹적인 관계는 상대와 나의 경계선이 얽히고 희미해지면서 나의 내면이 확장된다. 또한 낯선 이에게서 느끼는 설레임에 더해 기대치 않던 동질감을 발견하는 건 만남에 특별함을 부여하며 증폭된 설레임을 만들어 낸다.


관계의 유혹에 빠지고 싶다고 생각한게 언제였나? 관계에서 촉발된 감정에 시간의 흐름을 망각하던 때가 내게도 분명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유혹이라는 단어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한지 오래고 익숙한 관계 속에서 편안함만을 누리며 새로운 관계를 거부하고 있다.  나의 내면은 예전보다 훨씬 쪼그라 들었고, 자극에 반응할 촉도 퇴화했으며, 새로운 관계와 환경에 두려움마저 든다. "관계의 빈곤이 존재의 빈곤"인 것처럼 현재 나의 초라함은 물질의 부족에서만 비롯된 게 아니었음을, 이런 뒤처짐이 나를 진정 보잘것 없는 사람으로 만들었음을 깨닫는다. 그렇다면 나의 내면을 일깨운다면, 촉을 다시 일으켜 세운다면 예전의 여유로움을 되찾을 수 있을까?


어떤 책을 읽다보면 다음에 읽을 책을 자연스럽게 정하게 된다. 저자의 다른 책을 읽고 싶거나 같은 주제의 다른 책을 보고 싶기 때문이다. <유혹의 학교>를 읽으며 다음 책을 예약했다. 이서희의 ‘유혹’이 아닌 다른이의 ‘유혹’에 관한 책으로. 책을 읽다 보면 유혹하는 삶에 대한 욕구가 다시 생기지 않을까하는 희망으로.


덧붙임) 저자 소개글은 이서희 본인이 쓴 것인지 출판사의 글인지 궁금해졌다. ‘유혹’에 관한 책에 이렇게 심심한 저자 소개라니. 어느 학교에서 무엇을 공부했는가가 주된 내용인 자기 소개에서 독자들은 어떤 매력을 찾아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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