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시경 검사를 위해 병실에 누웠다. 코에 산소를 공급하는 기구가 달리고, 링거 주사가 내 몸으로 들어간다. 나는 드디어 대기실에서 수술실로 들어간다. 이곳의 검사는 한국의 건강검진센터의 내시경 검사와는 판이하게 달랐다. 나 스스로 검사실에 누워 공장처럼 돌아가는 한국의 병원 검사대에서 잠들던 나에게, 익숙한 한국어 대신 튀르키예어와 영어가 내 귀에 들린다.
"Türkçe konuşabiliyor. (튀르크체 코뉴샤빌리요)"
의사 선생님은 간호사들과 의료진에게 다시 말했다. 남편과 아이에게 인사를 하고, 혼자 병원 침대에서 누워 정말 진지한 수술을 하는 것 마냥 단절된 공간 속에 들어갔다. 그리고 내가 또렷하게 들은 튀르키예어였다. 그리고 의사 선생님은 내게 걱정하지 마라며, 점점 잠이 올 거라고 영어로 말했다. 나는 그렇게 한국의 내시경 검사실과는 너무 다른, 밝고 환한, 마치 아주 중요한 수술을 앞둔 환자처럼 나는 무수한 간호사와 의료진에 둘러싸였다. 의사 선생님의 괜찮을 거라는 속삭임에 서서히 잠이 들었다.
"고혈압 또는 저혈압이신가요?"
"가족 병력이 있으신가요?"
"이전에 수술한 경험이 있으신가요?"
"몸무게는 몇 킬로그램인가요?"
"키는 몇 센티미터인가요?"
"B형 간염 혹은 전염성 질환 보유자인가요?
어쩌면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아도 될 나의 가족 병력부터 몸무게와 키까지, 얼굴도 모르는 남편의 회사 동료에게 나는 모두 말한다.
튀르키예어로 된 전문 의학 용어와 고급 어휘들이 나의 귀를 향해 들어온다. 무슨 소리인가. 아는 말이 없다. 그리고 그 질문이 한국어로 바뀌어 내게 다시 전해진다. 생각보다 너무 구체적이다. 조금 불편하다. 내시경 검사를 위해 정말 이것까지 알아야 하나? 내시경 검사 전, 질문은 참으로 많았다.
남편이 튀르키예어가 능통한 한국인 직원에게 전화하기 전 상황은 이랬다. 간호사는 튀르키예어로 내게 질문을 한다. 그리고 병원에 상주한 영어 통역자는 그 내용을 다시 영어로 질문한다. 나는 그 질문에 영어로 대답한다. 이렇게 몇 차례 질문과 대답이 오고 간 후, 내시경 검사 전 수술 동의서라는 이름의 두 페이지가 넘어가는 종이의 무수한 질문을 보곤, 남편은 결국 튀르키예어가 능통한 한국인 직원에게 전화를 건다. 이 속도면 이 모든 질문에 답하는데 1시간은 더 걸릴 판이었다.
내시경 검사 전, 질문이 나열된 튀르키예어로 된 종이. 그 종이 속엔 질문이 정말 많았다. 튀르키예인 간호사가 튀르키예어로 설명을 하고 그리고 그것을 다시 영어로 말하는 아즈바뎀 병원의 영어 통역자, 그리고 나는 그 질문을 듣고 영어로 답한다. 다시 통역자는 간호사에게 튀르키예어로 통역한다. 그 속도는 참으로 답답했다. 남편은 종이 속의 무수한 질문을 보더니 결국 토요일, 회사가 쉬는 날, 미리 부탁드린 동료에게 미안하고 고맙다는 말을 연거푸 전하며 전화를 걸었다.
나는 얼굴도 모르는 남편의 회사 동료에게 나의 몸, 가족 병력, 나의 병력, 수술 경험, 알레르기, 출산 경험 등 나에 관한 모든 것을 말한다. 점점 불편한 마음이 든다.
회사 업무와 상관없는, 휴일에 나의 검사를 위해 오전 시간인 그때, 전화를 받아 준 남편의 동료. 그 또한 나의 정보를 굳이 알고 싶지 않을 것이다. 토요일 오전, 전화를 받아 준 그에게 나는 오히려 감사해야 한다. 나의 불편한 감정은 접어둔다. 쓸데없는 잡념이다. 튀르키예어를 잘하는 그 덕분에 그 무수한 질문들은 영어로 다시 바뀌는 수고로움 없이 쉽게 한국어가 되었다. 튀르키예어로 된 어려운 의료용어는 다시 한번 의료진에게 물어서 내게 한국어로 말해주신다. 너무 고맙다. 그런데 왠지, 자꾸만 불편한 감정이 든다. 아니다. 그런 감상적인 생각을 할 시간이 없다. 내시경 검사일뿐인데, 나는 정말 대단한 수술을 하는 것 같다. 질문이 너무 구체적이다.
여자로서 점점 부끄러움이 고개를 들 때, 나의 마음을 아는 건지 영어로 통역을 담당하는 그녀가 옆에서 내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통화하는 사람이 남편의 회사 동료인가요? "
"네."
"민감한 질문이라서 따로 물어요. 유산 경험은 있나요? 낙태하신 경험이 있나요? "
내가 요청하지 않았건만, 영어로 통역을 하던 그녀도 튀르키예어만 할 줄 아는 간호사인 그녀도 나를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묻는다. 그녀들은 나의 불편한 마음을 이미 알고 있었다. 의료인과 환자 사이가 아니라면, 어쩌면 서로에게 불편한 질문이라는 것을 그녀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같은 여자라서, 그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그들의 배려에 그녀들에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편하게 할 수 있었다.
" 이 사람 튀르키예어 할 수 있어요."
수술대에 누운 내게 의사 선생님은 재차 주변 의료진에게 말했다. 그렇게 나는 잠이 들었다.
암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아니 설사 암이라고 하더라도 쉽게 죽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이스탄불에서 내시경 진료를 다시 받기 위해 검사 날짜를 잡는, 소화기 내과를 처음 방문을 한 날, 사실 나는 병원에 가기 싫었다. 정말 많이 아프다고 할까 봐 겁이 났다면 이 마음이 완벽할까. 솔직히 병원에 가기 싫었다. 막연히 불안했다.
사실 이스탄불에서 돌아가서 검사를 결정하기 전, 다른 이들의 무수한 말을 들었다. 한국에 왜 더 있지, 왜 이스탄불 가냐는 말들을 들었다. 아이의 개학과 남편의 근무를 위해 돌아왔다는 내 말에 튀르키예 병원보다 한국 병원이 더 나을 텐데, 왜 그런 어리석은 결정을 하냐는 말도 들었다. 남편의 회사와 아이의 학교 때문에 왔다니, 그게 너한테 그렇게 중요하냐는 말도 들었다. 그렇다. 다들 나를 걱정해서 하는 말이었다.
나를 걱정하는, 나를 위한 충고들이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나 또한 이미 했기에 지금의 나의 마음을 온전히 읽지 못하는, 나의 마음을 안정시켜주지 못하는 그들의 말이 참으로 불편했다. 그 정도는 나도 알고 있다고 화를 내고 싶었지만, 그저 마음을 써주셔서 감사하다는 답변을 했다. 그런 말들은 지금의 나의 결정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말이었다. 나의 마음의 불안만을 더해 주는 말이니, 그저 걱정을 해줘서 고맙다고 답변했다. 지금의 결정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말이다. 소중한 나를 위해, 신경을 조용히 거둔다.
첫 번째 병원 진료날, 마음이 바쁜 남편은 약속한 시간보다 훨씬 일찍 나와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도착했다. 그런데 예약한 시간이 되어도 의사가 오지 않는다. 남편이 영어 통역관에게 왜 진료를 시작하지 않느냐고 간호사에게 물어달라고 요청한다. 영어 통역관의 질문에 간호사는 말한다.
"의사 선생님의 친한 친구가 와서 지금 이야기 중이야. 환자에게 더 기다려야 한다고 말해줘."
그리고 영어 통역관은 내게 자신이 들은 내용과 다른 말을 한다. 의사가 앞의 진료가 길어져서 진료가 미뤄졌다고 내가 들은 튀르키예어 내용과는 전혀 다른 내용을 말한다. 의사는 그렇게 20분가량 늦게 진료실에 우리를 불렀다. 사실 이 상황에 화가 난 나는 영어 통역관이 있었음에도 튀르키예어로 말했다.
"나는 오래 기다렸어. 친구보다 약속이 중요해. 나는 오래 기다렸다."
의사 선생님은 당황해했다. 솔직히 나는 조금 예민해있었다. 그리곤 갑자기 의사인 그녀는 나의 튀르키예어 실력을 칭찬한다. 자신이 늦어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한다. 그리고 초음파 검사를 하며 아주 친한 친구가 왔었다며, 다시 한번 늦어서 미안하다는 사과를 한다. 그리고 세세하게 나의 몸을 살핀다. 여기는 위, 여기는 대장, 신장, 하나하나씩 그녀는 초음파로 나의 몸을 비춘다. 그리고 나는 그녀에게 여전히 어설픈 튀르키예어로 말한다.
" 나는 여기에 다른 가족이 없어. 남편과 아이만 있어. 그는 지금 힘들어해. 네가 정말 중요해."
의사 선생님, 그녀는 나를 말없이 안아주었다. 그리곤 그 후, 그녀는 진료 대기실에 있는 동안, 내가 검사를 위해 병원 침대에 누워 있는 동안 재차 말했다. 그녀는 내가 튀르키예어를 말할 수 있다고 여러 번 말했다.
남편은 의사 선생님의 그 말은 간호사나 의료진들에게 환자가 못 알아들을 거라고 생각해서 환자에 대한, 너에 대한 쓸데없는 말을 하지 말라는 주의라고 말했다. 굳이 불편한 말을 하지 말라는 주의라는 것이다. 내가 외국인이라서 튀르키예어를 모를 것을 생각해서, 못 알아들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함부로 말을 하지 말라는 주의를 주는 것이라고 했다. 남편은 의사의 그 말은 그저 네가 튀르키예어를 할 수 있다는 칭찬이 아니라 환자에 대한 배려, 의료진에 대한 말조심을 강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의사 선생님은 나의 손을 잡고 간호사들을 향해 이야기한다. 병원 침대는 새하얀 수술실로 들어간다. 매년 받은 내시경 검사와 달리 한국어가 아닌 다른 나라 말이 쏟아진다. 그리고 나는 서서히 잠에 든다.
한국에서 내가 전화를 하자마자, 남편은 회사의 사람들에게 그리고 튀르키예에 오랫동안 살고 있는 현지 직원까지, 이곳에서 내시경을 해 본 사람들의 경험을 들었다. 이곳에서 내시경을 하기 위해선 일반 내과에서 진료를 보는 것이 아니라 소화기 내과에서 진료를 본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모두의 도움 덕분에 나는 다시 검사대에 누웠다.
그리고 나는 잠에 깨어나 한국의 병원에서 주는 죽이 아닌 토마토, 오이, 빵, 올리브가 놓여있는 튀르키예식 아침 식사가 담긴 병원식을 받았다. 간호사는 내게 상태를 묻는다. 한국이었다면 벌써 일어서서 나가도 되겠건만, 의사 선생님이 올 때까지 누워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엄청난 수술을 한 거 마냥, 잠시 후 온 의사 선생님은 내게 식사는 잘 넘어갔는지, 지금 상태는 어떠한 지 자세히 묻는다. 그리곤 내시경 과정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 영어로 설명했지만, 자신이 살펴본 구역이 크게 네 군데로 나뉘며 몇 개의 샘플을 채취했는지까지 생각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셨다.
공장 같던 한국의 내시경과 달리, 내게 약을 처방해 주며 한심한 듯 쳐다보던 그때의 의사 선생님과는 그녀는 많이 달랐다. 이곳에서 내시경 검사 비용이 비싼 탓인가. 아니면 나는 정말 엄청난 검사를 한국에서 매년하고 있었던 것인가. 보험 처리를 하고도 한국의 내시경의 대략 3배의 가격을 지불하고 검사를 해서 그런 것인가. 이곳의 내시경 검사는 한국의 그것과는 참으로 달랐다.
나는 모든 검사를 마치고 결과를 말하는 의사 선생님을 안았다. 여기서 튀르키예어를 하는 나는 조금 푼수이며 감상적으로 변한다. 솔직히 처음의 불편함은 없었다. 모두가 나의 막연한 불안감과 불편함을 알고 배려한 덕분이었다. 검사를 마치고 감사히 병원을 둘러본다.
나는 이곳이 왜 불안하고 불편했던 것인가. 달라진 건 없다. 3년 전의 나와 달라진 것은 내가 그들의 말을 알아듣고 못 알아듣느냐에 대한 것일 뿐. 모든 것은 그대로다. 아니 나는 솔직히 여전히 그들의 말을 온전히 알아듣지 못한다. 다만 그때의 나와 달라진 것은 나의 불편함을 말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긴 것뿐이다.
여전히 어색한 튀르키예식 아침상, 카흐발트를 병원식으로 받아 들고 그래도 이게 여기서만 할 수 있는 경험이라며 남편에게 기념사진을 찍어달라고 말해본다. 내가 잠든 사이에 지훈이와 한참 무얼했는지 아들과 이것저것 무엇을 하고 놀았는지 이야기한다. 배가 너무 고프단다. 우리 진짜 밥 먹으러 가야지.
너무 긴장한 탓에 휴대폰도 안 들고 온, 병원복을 입고 어색하게 웃는 나를, 남편은자신의 휴대폰으로 연신 찍어준다. 그렇게 우리는 지금 이 순간도 찰칵, 그리고 예쁘게 기억에 담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