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난주 병원에 갈 일이 참 많았다. 방학 중에 아들의 알레르기 진료는 봐도, 나의 병원은 저 멀리 이스탄불의 아시아 구역에 있는 탓에 약이 다 떨어졌는데도 갈 수 없었다. 기동력 없는 내가, 아들을 데리고 차가 밀리는 대학병원 그곳까지 가기 힘든 일이었다. 주말마다 왜 다 예약이 잡혀있는지 남편은 같이 가주지 못하는 것을 미안해했다.
결국 모든 일이 끝나고, 나는 남편이 미리 예약한 마슬락 병원으로 향했다. 나는 살기 위해 며칠 전 그녀와 서 있던 그 복도를 걷는다. 너무 아프다. 난 지금 아픈 게 분명하다.
병원 예약 시간보다 일찍 장소에 도착해 순서를 기다리다, 다시 울리는 전화기에 이런저런 감정을 못 이기고 결국 병원 대기실에서 펑펑 울었다. 간호사는 말없이 내게 휴지를 가져다주었고, 나는 화장실에 들락거리고 그 공간에서 누가보아도 사연 많은 사람이 되었다.
전화기 너머 속, 그녀에게 계속 같은 이야기를 한다. 눈물이 계속 난다. 속이 아프다. 나는 아프다.
원래는 내시경 검사를 해준 이스탄불의 아시아 지역의 병원에 가야 하건만 결국 모든 것이 끝난 후, 나는 집과 가까운 유럽 지역의 병원에 혼자 갔다. 병원은 최신식의 화려함을 자랑하고, 월요일이라 그 밤보다 사람이 북적거렸다. 나는 며칠 전에도 온 이곳에, 나는건강하게 살겠다며 약을 받으러 왔다.
처음 만나는 소화기 내과 선생님께 그동안 진료 내역과 검사 결과 내밀었고 그녀는 병원 간의 공유된 진료 내역을 읽어보기 시작했다. 한참 동안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내게 영어가 편한지, 튀르키예어가 편한지 묻는다. 나는 영어가 편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전에 먹던 약과 똑같은 것을 더 달라고 말했다. 그리고 진료내역을 다 읽은 그녀는 내게 화를 내기 시작했다.
"우리 병원 의사들을 못 믿는 거야. 우린 이스탄불에서 최고야!"
나는 눈물이 주룩주룩 흘러나온다. 내게 병원 쇼핑을 하는 거냐고, 한국 의사가 암일 수 있다고 말했으면 다 암이냐며, 약을 줄 수 없다고 말한다. 내게 화를 낸다. 나는 그녀의 의도를 안다. 꼬장꼬장한 할머니인 그녀는 그녀에게 배움을 받는 다른 의사 선생님도 옆에 앉혀둔 채, 내게 이 병원이 이스탄불에서 얼마나 대단한 지를 말한다. 그녀의 배움을 받는 선생님은 미동도 없다. 참으로 무서운 선생님인가 보다.
나는 아무 대답 없이 눈물이 흘러나온다. 서럽다. 그저 먹던 약만 더 주면 되는데, 그녀는 아무래도 내가 다른 병원에서 또 이 병원으로 옮겨온 것에 오해를 하는 것 같다. 나는 말할 기운이 없다. 눈물이 흐른다. 마구 흐른다. 그리고 그녀도 이런 내 반응에 퍽 놀랐는지, 왜 우냐고 되물었다.
나는 내가 왜 우는지를 설명해야 했다. 나는 결국, 구구절절 말한다. 지난 일들을 하나씩 설명해야 한다. 그것도 한국어도 아닌 영어로 아니면 튀르키예어로 설명해야 한다. 고작 위장약을 더 받기 위해, 교수라는 직함 때문에 회사에서 지원해 주는 보험 외에도 특진비라며 일 만 티엘을 더 받으면서 그녀는 환자인 내게 그냥 이유 없이 약을 줄 수 없다며 우는 이유를 설명하란다.
나는 내가 뚜벅이라서 아시아 사이드의 병원에 가기 힘든 이유와 운전이 미숙한 이유, 내 지인의 슬픈 소식과 이틀 전에 이 복도를 걸었고 내가 그동안 언제부터 얼마나 아팠는지를 구구절절 이야기한다. 서러워서 더럽게 화가 난다. 정말 화가 난다.
고작 위장약을 더 받기 위해 지금 이것을 구구절절 설명하고 있는 내 신세가 너무 싫다.
그리고는 그녀는 내가 너무 힘들었던 그 시절, 나를 혼을 냈던 교장 선생님처럼 말한다.
"그럼 빨리 말했어야지, 맞아. 이스탄불의 교통은 정말 최악이야. 엄마는 강해져야 해. 더 좋은 약을 줄게."
서럽게 눈물이 쏟아진다. 의사가 아닌 나는 도무지 알 수 없지만, 그녀 기준에서 전보다 더 좋다는 위장약을 적어 처방전을 써준다. 나는 여전히 눈물이 계속 난다. 그녀는 내게 말한다.
"사자에게 매일 쫓기는 얼룩말은 위궤양에 걸리지 않는데, 편안한 아파트에 사무실에 사는 인간이 왜 위궤양에 달고 사는지 아니?*"
"결국 스트레스야. 엄마니까 강해져야 해"
지적인 그녀는 안경을 고쳐 쓰곤, 영어도 튀르키예어도 그 어느 것도 편하지 않은 내게 꼬장꼬장한 목소리로 처방전을 써준다. 예전 무서웠던 친정 엄마처럼, 그 교장선생님처럼 그녀는 내게 커피, 콜라, 초콜릿도 먹지 말고 햇볕을 많이 받고, 증상이 계속되면 보호자 데리고 같이 와서 단층검사를 하러 오라고 말한다. 엄마니까 그걸로 울면 안 된다고 말한다. 울 일이 아니란다.
나는 진료비를 계산하고 그리고 화장실로 가서 실컷 울었다. 목청 터져라 울었다. 그리고 편안해졌다. 어차피 그녀에게 들리지 않을 테니까.
이스탄불에 햇볕이 비추니 나는 걸어야겠다. 나는 여전히 힘들면 말도 제대로 못 하는 이방인이니, 강해지기라도 해야겠다. 햇볕 아래에서 아주 천천히 걸어야겠다.
*그녀는 로버트 새폴스키의 '스트레스'라는 책을 예를 들어 설명해주셨다. 그녀가 교수인 건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