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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국제학교 반 대표 엄마, homeroom parents의 길

by 미네

'yangi Yil muborak.'

'yeni yılın kutlu olsun.'

'щасливого Нового року.'

سنه جديده سعيده

happy new year.


어느새 새해를 맞이했다. 한국은 벌써 새해 아침 7시가 되었을 시각이지만, 나는 이스탄불에 살고 있으니 6시간 늦은 새해를 맞이한다. 사실 조금 늦게 오는 새해라서 더 좋은, 6시간 늦게 한 살 나이를 먹으니 조금 더 젊은 느낌, 헛소리를 새해부터 해본다. 아하하하


자, 그래 새해를 맞이하니 모두에게 미리 새해 인사를 해보자. 그렇다. 나는 왓#앱을 통해 아들의 반 친구들 부모님들에게 다음과 같이 인사한다. 구# 번역 앱을 통해 위와 같이 인사를 건넨다. 말은 모두 달라도 모두 한 가지 뜻, 위의 문장은 모양과 발음은 달라도 모두 한 가지의 뜻을 가지고 있다. 바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새해 인사다.


터키어, 우즈베크어, 우크라이나어, 아랍어, 영어, 한국어까지 아들의 친구들의 엄마와 아빠에게 새해 인사를 건넨다. 한국 사람들은 따로 카카#톡을 통해 인사를 하지만, 반 전체 공식적인 매체는 왓#앱이다. 나는 영어로 말하자면 'homeroom parent' 뭐, 영어로 굳이 말해야 하나, 그렇다. 한국말로 반 대표 엄마다.


아마 누군가 이 말을 듣자마자 '우와! 영어를 엄청 잘하시나 봐요!' 이렇게 생각하지만 뭐, 나의 영어 수준은 솔직히 평범한 수준이다. 누가 또 이렇게 적으면 중등 교사 영어 자격증 소지자면서, 뭔 소리냐고 하겠지만 내가 가장 영어를 잘하던 시절은 바로 영어 시험 치기 직전이었다. 아하하하.



언어라는 것은 쓰지 않으면 금방 퇴화하고 잊어버린다. 물론 영어 독해나 영작문은 일반 평균보다 빠를 수 있겠지만 솔직히 듣기나 말하기에 있어서는 자신이 없다. 그래서 대화 녹음을 즐기는 우즈베크 엄마와 PTA 이후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같이 참석한 영어를 잘하시는 다른 한국 엄마에게 들은 내용을 한 번 더 확인하는, 나는 아주 소심한 영어 사용자다.


더 웃기는 것은 내가 관심 없는 대화 주제 분야는 '윙'하는 소리와 함께 집중하지 않고 흘려버리는 통에, 가끔 학교의 PTA에 참석하고도 그 분야에 대해선 다 잊고 씩씩하게 자리를 나서기도 한다. 아하하하. 그렇다고 큰 문제가 안 생기는 게 다행인 것 같고, 그래도 다행히 꼭 알아들어야 할 중요한 정보는 알아듣고 기억하는 덕분에 이 일을 하고 있다.


이렇게 넋 놓으면 놓치는 영어 듣기와 말하기 실력에도 불구하고 아들의 학급 담임 선생님과 소통한 후, 반의 부모님께 다시 한번 연락 사항을 공지하기도 하고, 학교의 문제점에 대해 메일을 쓰기도 하고, 문제점에 대한 대처에 대한 글도 쓰고, 학교에게 감사 편지도 쓰기도 한다.


실상 영어를 아주 잘하지 못하고, 늘 읽기만 해 오던 한국형 영어 교육을 받은 사람이기에 요즘 아들의 영어 말하기 실력이 향상될수록 한편으론 기쁘면서도, 한국으로 돌아갈 때 아들을 가르치기 위해 미리 영어 공부를 새로 해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마음도 생겨난다.


난 영어로 메뚜기는 알아도, 송충이, 집게벌레 이런 건 모르고 살았으니 말이다. 똥이면 자지러지게 웃는 아들의 영어 속에 스스로 라임을 넣어 만든 똥 노래를 듣다 보면, 나와는 다른 세상인 것이다. 아들의 농담에선 라임(Rhyme)이 있다. 라임(Rhyme)은 라임(lime)인가. 내가 쓰는 라임은 '리 자로 끝나는 말'이 다인데, 내 속도 모르고 가끔 누군가는 내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영어 잘해서 좋겠어요."


"하하하. 아니 절대 아니에요. 정말 아니라서 들킬까 봐 밤에 공부해야 하니 그만해 주세요."




요즘 이스탄불 살이에서 나의 주요 언어는 사실, 영어다. 그리고 터키어, 하루의 일과를 자세히 생각해 보면, 하루에 대화 중 한국어의 비율은 아주 적다. 아들, 남편과의 대화를 제외하면 거의 모든 대화는 외국어다. 그러다 보니 어떤 때는 영어가 술술 나오기도 한다. 그런 때는 역시 며칠 동안 영어를 말할 환경에 많이 놓여 있었을 때이고, 또 어떤 때는 터키어가 제법 잘 들리고 잘한다고 느껴질 때는 마찬가지로 터키어를 쓸 기회가 많았던 날이 이어지는 경우다. 결국 언어에서 듣기, 말하기는 노출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이렇게 아들과 달리 지극히 한국적인 교육 속에서 살아온 내가 반 대표 엄마를 하면서 느끼는 힘든 점은 결국 의사소통이다. 그런데 그 의사소통은 영어의 부족함도 있겠지만 다양한 문화 차이에서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 11월 24일, 튀르키예의 스승의 날이었다. 왓#앱을 통해 학부모들과 소통해 학부모당 100리라(한화 약 7,000원)를 내서 선생님들을 위한 꽃, 사탕, 편지를 준비했다. 반의 학생이 10명이기에 1000리라, 한화로 7만 원가량의 돈이다. 담임교사와 보조교사의 꽃다발 2개와 여섯 명의 과목별 선생님들을 위한 사탕 선물 등을 준비하니, 솔직히 저 예산으론 불충분했다. 그렇다. 내 손수로 이것을 채워야 한다. 뭔가 텅텅 빈 선물가방을 채우기 위해 집에 있는 국산 라면도 넣고, 포장비를 아끼기 위해 아들을 학교로 보내고 손수 다 만든다.


으싸으싸! 이게 무슨 짓인가, 부모님께도 연애 때도 안 했던 편지와 포장을 하고 있다. 으하하하. 꽃다발과 사탕을 제외하곤, 자르고 붙이고 정성을 더한다. 참 애썼다. 선물 비용으로 '100TL'이라니 너무 작은 돈을 스승의 날에 썼다고, 누가 봐도 부자인 우즈베크 엄마는 고향 친구들에게 이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1000TL'가 아닌 '100TL'이라니 너무 작은 것을 산다고 이야기한다. 사실 나는 그런 마음이면 개인적으로 선생님께 무언가를 보내라고 권유했다. 그녀가 어떻게 스승의 날을 보냈을지는 나는 잘 모른다. 스승의 날에 학교가 쉬면 차라리 편한 것 같은 분위기에서 교사로 살아온 탓인가, 그녀가 선물하기에 원했던 금액이 나에겐 다소 과하기에 그 말이 내겐 최선이었다.


아니면 이건 문화 차이가 아닌 국제학교에 다니는 구성원의 부유함의 차이일지 모른다. 알고 보니 우즈베크 엄마는 자신이 어릴 적에 스승의 날에 사람 크기만 한 꽃을 감사의 의미로 선생님께 보냈다고 했다. 그러니 100TL은 그녀에게 작아도 너무 적은 금액이다. 아, 그렇구나. 참 어렵구나. 국제학교에서 반 대표 엄마 하는 것은, 참 어렵다.




그런데 이렇게 적은 금액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또 다른 사람은 내게 그 100TL조차 주지 않는 사람이 있었다. 전체 채팅 창의 내 글을 분명 읽었는데, 읽고 대답은 하지 않는다. 어쩔 수 없다. 그래, 기다려보자. 아, 안 준다. 그래, 내 돈 채워 넣자.

아들의 알레르기 때문에 시작한 봉사활동이다. 그래 좋은 일하자. 내가 조금 더 내자. 그렇게 시간이 지나 어느새 연말이 되었다. 열 명 중, 딱 한 명을 빼곤 다 돈을 보내주셨다. 내가 이득 보는 것도 없건만 참 어렵구나. 그만하면 됐다. 그 사람은 이런 거 안 하고 싶나 보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새해를 맞아, 아들의 친구들의 부모님이 공유하는 왓#앱에 그들의 나라말로 새해 인사를 보낸다. 그리곤 돈을 아직 보내지 않은 학부모에게도 그 나라의 말로 메시지를 보냈다. 새해 인사와 함께 '반 행사에 더 이상 참여하고 싶지 않니?'라고 구# 번역 앱으로 영어가 아닌 그녀의 나라의 말로 메시지를 보냈다. 학부모 초대의 날, 전화번호를 묻는 내게 말없이 미소만 보내던 그녀에게 나는 용기를 내서, 새해 인사와 함께 이런 문장도 보냈다.


"너만 100TL 나에게 안 줬어."

푸하하하. 난 용기 있게 말했다.


돌아온 그녀의 영어로 된 짧은 답장,

"100TL를 담임 선생님께 보냈어."


그리곤 그 돈을 나에게 보내야 한다는 것을 몰랐다는 것이다. 그녀는 왓#앱의 영어로 보낸 내 메시지와 다른 부모님들의 메시지를 다 읽을 만큼 영어에 능통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돈을 보낼 수 있는 계좌 번호를 다시 묻곤, 내게 늦게나마 100TL를 보내주었다.


그리곤 한참을 그녀의 말로 그녀와 이야기했다. 물론 구# 번역 앱을 사용해서 이 대화는 이어졌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쓰이는 그녀의 글을 내가 쓰자 그녀는 웃는 이모티콘을 보냈다. 우리는 아이와 학교에 관한 이야기를 했고 나는 그녀로부터 소중한 100TL을 연말이 되어서야 받았다.




만약 내가 그녀에게 아랍어로 새해 인사를 보내지 않았다면, 우린 2023년 어떤 사이였을까? 아마 난 그녀가 반 행사에 참여하고 싶지 않고 그녀가 돈을 일부러 안 주는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곤 나는 그녀를 계속 오해했을지 모른다.


그녀에게 나는 그녀의 나라말로 메시지를 보냈다.


"나는 영어 잘 못해. 지금도 구# 번역으로 너에게 이야기하고 있어."

"너의 나라 말로 내게 메시지 보내도 괜찮아."


그리곤 그녀는 다른 말 없이 하트가 담긴 웃는 이모티콘을 보냈다. 그렇게 소중한 100TL이 내게 왔다. 그리고 그녀는 내게 완벽하지 않은 영어로 새해 인사를 했다. 나는 다시 그녀에게 인사한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덧붙임)

이스탄불 국제학교는 지금 방학중입니다.

제가 한동안 글을 못 쓰면

1번, 아들이 아프다.

2번, 아들을 돌보다 엄마인 나도 아프다.

3번, 아들의 방학이다.

4번, 고생이지만 보따리 싸서 여행 중이구나.입니다.


지난 2주간, 1번부터 4번까지 모든 상황을 거쳤습니다. 3번은 진행중입니다.

모두 새해 좋은 일 가득하세요. 지난 한 해 부족한 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참고로 제 글은 브런치 대상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일 년 글 쓴 동안, 다음 메인에 2번 노출되었습니다. 그래서 돈도 못 벌면서, 또 이곳에 글을 쓰고 있네요. 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글이 책이 될 수 있게 더 노력하겠습니다. 행복한 한 해 보내시길 바랍니다. 아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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