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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기다리는 시간

아이에게 화내고 후회하는 당신에게

by 미네

학교에서 일할 때, 어쩌다 보니 2학년을 참 많이 맡았다. 그러다 보니 마지막 근무하던 해의 학교에서 나는 교감 선생님만큼 수학여행을 많이 간 교사였다. 그러던 내게 세 번째 수학여행은 참으로 행복했다.

수학여행, 청춘들과 함께이기에 그 여행은 참으로 아름다워야 하건만, 그 극한 체력의 녀석들과 함께 하기에 여행의 첫째 날 밤은 언제나 불침의 시간이었다. 내게 왜 밤에 잠을 못 잤냐고 물어본다면, 그래, 내가 가르친 그들이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매사에 너무 열정적이었다고 말한다면 충분할까. 그들은 밤에 잠을 안 잔다. 정말 하나같이 모두 잠을 자지 않는다. 경복궁을 구경한 수학여행의 첫째 날 밤, 보통 아이들은 밤새도록 잠을 안 잔다. 그리고 둘째 날, 경기도 용인에 있는 꿈과 환상의 나라 '에#랜드'에 가고 나면 모두 기절하듯 잠에 든다. 그러나 가끔 걔 중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 자는 녀석들이 있다. 정말 무서운 녀석이다. 그리고 셋째 날 '독립기념관' 앞에서 그들의 정신 상태는 꿈과 환장의 경계선에 있기에, 그들을 버스에서 내리게 해서 단체 사진을 찍는 일이 이 고난의 마지막이었다. 대형 버스 주차장에서 천안 독립기념관 입구까지가 얼마나 멀고도 먼 지, 양을 모는 양치기 개 마냥 정말 정신없이 뛰어야만 그들을 독립 기념관 입구까지 도달하게 할 수 있었다.

이런 비슷한 수학여행의 일과에서 큰 차이가 있다면, 바로 남녀의 아침 모습이다. 남학생들 중 사춘기가 일찍 와서 이미 여자 친구가 있는 소수의 아이들을 제외하곤, 대다수가 내가 깨울 때까지 절대 먼저 일어나서 씻지 않는다. 이에 반해 대다수의 여학생들은 내가 아침에 깨우기 전에 일어나서 여행용 캐리어 담아 온 고데기로 손수 머리를 말고 있다.

이렇게 열정적인 녀석들과 극한 여행을 여러 번 겪고 나서 내가 깨달은 것은, 이 녀석들과 내가 대결해 봤자 '백전백패'라는 엄중한 사실이다. 술을 모두 수거했고 너희들은 이제 잠만 자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때론 아이들이 자는 방에 화재 경보 사이렌이 울린다. 그렇다. 가끔 걔 중에 금연이 필요한 녀석들이 있다. 그 녀석들과 내가 과연 어떻게 대결할 것인가! 그들의 체력은 실로 엄청나며, 그들의 행동은 언제나 기대를 벗어났다. 그래도 비슷한 코스로 수학여행을 세 번째로 가게 되자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대충 감이 와서, 그들의 다음 행동 위치에 미리 가 있기도 한 덕분에 교사로서 간 세 번째 수학여행은 나름 즐거운 여행으로 기억된다.

고무줄은 한없이 당기면 터져버리듯, 그 적당함을 유지하는 것은 언제나 교사의 일이었다. 그래도 이런 내 마음을 아는 학생 한 명만 교실에 있으면, 뭐 그래도 제법 해 볼만한, 분명 가치 있는 일이었다. 아이들은 누가 뭐라 해도 어른보다 순수했다. 가끔 너무 힘든 일도 있었지만, 지나고 나서 돌아보니 내가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했던 나의 욕심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지금 이스탄불의 학교는 지진으로 인해 모두 휴교 상태이다. 정부는 국민 애도 기간을 선포했다. 하루가 다르게 사망자 수는 늘어나고, 시리아에선 구조 활동을 중단한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튀르키예의 모든 학교는 문을 닫았고, 정부 산하의 교사 또한 지진 복구를 위한 총동원령에 따라 지진 지역에 배치되었다.

아들이 다니는 학교는 국제 학교이므로 이러한 명령에 해당되지 않지만, 일단 튀르키예 교육부 산하에 있으며, 교직원 중 튀르키예인이 있기에 마찬가지로 이 애도 기간에 학교는 참여하고 있다. 자연히 학교는 정상적인 수업을 할 수 없고, 튀르키예인이 아닌 외국인 교사가 인터넷 수업으로나마 학습 진도를 이어나가고 있는 현실이다.

하루 종일 아들의 숙제와 인터넷 수업 스케줄을 따르다 보면, 나의 감정은 정말 요동을 친다. 지진이 일어난 곳을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닌 일에 나는 오늘도 열을 내고 말았다. 대충 해도 될 것을 하나부터 열까지 다하려고 하는 나의 성격이 문제인 것이다. 이러한 수업 상태가 드디어 2주 차 되었고, 내가 평소 다니는 튀르키예어 학원까지 정상 수업을 한다고 하니, 나의 마음은 더욱 다급해진다.

아들을 데리고 노트북을 들고, 본래 수업 시간보다 일찍 튀르키예어 학원에 가서 그의 인터넷 수업을 미리 준비를 한다. 그리고 나는 옆 교실에서 수업을 듣는다. 이렇게 훈훈하게 끝나면 좋으련만 역시나, 아들은 계속 '엄마'를 외친다.


"엄마!"

"엄마!"

"혼자 있으니까 이상해!"

"엄마는 뭐 해?"


옆 교실에 있건만, 수업하는 교실 문은 아들의 소리로 끊임없이 열리고 나의 얼굴은 화끈거리고, 내 엉덩이는 들썩거린다. 안타깝게도 나는 오늘 학원에 가서 수업을 들었지만 무엇 하나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다. 아들의 목소리만 들린다.

결국 미안하다고 말하는 내게, 옆에 있던 엄마인 또 다른 외국인 학생은 아무 문제없다고 괜찮다고 말한다. 그녀의 딸 또한 지금 아빠와 함께 집에 있다고 한다. 또 다른 외국인 엄마는 집에서 일하는 보모가 아이를 보고 있다고 말하고, 내게 괜찮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화가 난다.


'수학여행처럼, 한 세 번 즈음해 보면 이 상황에서 나는 더 잘할 수 있을까?'

녀석들이 대충 여기 즈음에서 말을 안 들었는데, 여기 즈음에서 이 녀석들 사고를 쳤는데 하며 나는 거기에 먼저 가서 웃고 있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녀석들은 똑같이 말을 안 들었는데 세 번째의 나는 이전과 다르게 웃고 있었다. 똑같이 사고를 만들었는데도 생각해 보니, 세 번째의 나는 먼저 웃고 있었다.




그때의 나와 달리, 나는 아직 엄마로서는 한없이 부족하다. 모든 것이 나에게 처음이다. 터키어 학원 앞 'Sok' 마트에서 찾은 터키어가 가득 써진 공룡 스티커북에도 함박웃음을 짓는 아들 녀석, 그 책을 들고 행복해하며 수업 중에 내 옆에 앉아서 공룡 그림을 그리다가 내게 계속 보여주고 싶은 녀석, 화내지 말아야 하건만 오늘은 결국 이런 일에 짜증을 냈다. 그리고 아들을 재우고 후회를 한다. 아무 일도 아니건만 절대 화낼 일도 아니건만 나는 화가 났다.

아들아, 네가 나를 좀 더 키워줘야 하나 보다. 내가 너를 키우는 것이 아닌, 아들인 네가 나를 좀 더 나은 어른으로 나를 키워주어야 하나보다. 아들이 잠에 들고 그가 그린 공룡을 바라본다. 참으로 귀엽다. 그런데 왜 수업 시간에 계속 'ROAR' 적어달라고 하냐. 윽! 정말! 다시 화가 솟구친다. 엄마 되기는 참으로 어렵구나.

네가 어른이 되기를 기다리는 시간은 어쩌면 내가 진짜 어른이 되는 시간과 같을 것이다. 나는 지금 네가 어른이 되길 기다리고 있고, 너 또한 이런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렇게 나는 가끔 너에게 화를 내고, 그리고 다시 후회하며 그렇게 아들과 나는 점점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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