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그 어떤 교육기관도다니지 않던 그의 어린 시절, 그는 오전 11시 '오감 발달 수업'의 가장 큰 형님이었다. 겨우 아장아장 걷고 눈빛을 겨우 맞추고 웃는 동생들 사이에서 우리 아들은 다른 누구보다 컸다. 모두 한 명씩 엄마의 회사 복직으로, 때론 자식들 대신 손주를 돌보아주시는 할머니의 연이은 몸살로, 모두 한 명씩 문화센터를 떠났고 순번에 따라 나이에 따라, 엄마의 직장에 따라 차례에 맞춰 그의 같은 반 동생들은 '어린이집'으로 입장했다.
결국 그는 같은 반 동생들과 달리 오전 시간 '오감 발달 수업'에 마지막까지 유일하게 남아있던 큰 형님이었다.
주위를 둘러봐도, 모두 지훈이보다 작은 아기들이었다. 돌이켜보면 그도 아기였건만, 나는 그때 어리석게도 아들과 비슷한 또래가 있는 시간의 수업을 듣게 하고 싶어, 기존의 잘 듣던 문화센터 수업 대신 그의 또래가 많은 오후반으로 그를 옮겼다. 그러나 옮긴 오후 첫 수업에서 그는 '아나필락시스' 증상을 보였다.
아들은 수업 도중, 몸이 간지러운 듯 거칠게 온몸을 긁었고, 채 10분도 안 되는 시간에 기도가 붓고 숨을 쉬기 어려워했으며 그의 얼굴은 순식간에 누군가에게 때려 맞은 것처럼 벌겋게 부풀어 올랐다. 나는 아들을 안고 미친 듯이 뛰었다. 그때의 나는 정신이 없었는지, 택시가 아닌 차를 붙들고 응급실이 있는 인근 병원의 이름을 불렀다. 택시 기사가 아니었던 아저씨는 옆의 택시를 잡아, 나와 아들을 병원에 데려다주었다. 나는 그렇게 그의 첫 번째 아나필락시스를 겪었고, 그 후 나는 다시 예전 다니던 문화센터 오전 수업으로 돌아왔다.
오랜 기간 교육기관을 못 보내던 내게, 일주일 중 정확히 정해진 유일한 외출은 대형마트의 문화센터였다. 매주 수요일 오전, 나는 운전을 해서 그를 데리고 친정집 근처 대형 마트에 갔다. 나의 친정엄마는 기동력이 없으셨고 나는 대단한 효도인 것처럼 매주 손자를 보기 위해, 수업 시간에 맞추어 마트에 오는 나의 엄마에게 나의 아들을 보여주었다.
수업을 마친 그 시간, 나는 마트의 서점에서 아들이 직접 고른 새로운 스티커북을 사주었고, 마트 안 작은 체인점 빵집에서 나와 친정엄마는 그렇게 앉아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마시며, 그가 스티커를 붙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렇게 나는 그의 아나필락시스 이후, 한 달이 지나고 다시, 오전 시간대의 큰 형님이 된 아들과 함께 친정 엄마의 집 근처 대형마트의 문화센터에 다녔다.
일 년 넘게 다닌 '오감 발달 수업'선생님은 아들의 알레르기를 알았고, 재료의 재사용 없이 늘 교구를 관리해 주셨다. 그 사건 이후 다시 돌아온 내게, 아마 오후에 수업을 들으면교사가 다시 닦더라도 오전에 사용한 교구이니 알레르기 반응 물질이 있을 수 있다고, 내게 솔직하게 문화센터 상황을 설명해 주셨다. 그렇게 나는 그녀의 솔직함과 노력, 친정 엄마의 도움으로 일주일 한 번 마트 안의 작은 체인점 빵집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마실 수 있었다.
문화센터 수업의 동생들이 한 명, 두 명 어린이집 등원을 결정하고 다들 마지막 수업이라고 말하고 떠나는 그 순간은 그 후로도 계속되었다. 그러나 아들과 나는, 같은 선생님과 매주 같은 요일, 같은 시간에 콩을 모아 새로운 그림을 그리고 때론 미끌미끌한 미꾸라지를 잡아 옆의 고무대아로 옮겼다. 그는 벌써 두 번째 입는 똑같은 소방관 옷을 입고, 강아지의 수를 세며 종이로 만들어진 불길 속에서 용감하게 강아지 인형을 구했다.
그렇게 그는 그 순간에도 자라고 있었다.
이곳, 이스탄불에서 나는 정기검진을 맞아 에피네프렌 주사(알레르기 환자를 위한 응급 비상용 주사)를 새로 사러 간다. 이 주사는 아나필락시스가 올 경우를 대비해 구매하는데, 그 유통기한이 짧아 보통 6개월에서 1년에 한 번씩 교체해주어야 한다. 만약 아이에게 위험한 일이 다행스럽게도 생기지 않아 주사를 사용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약의 효과가 점차 떨어지기 때문에 유효기간 지켜 그 약을 다시 구매해야 한다. 알레르기 환자에겐 보험과 같은 예방 주사이기에, 그동안 나는 이 돈은 버린다는 마음으로 병원에서 정기적으로 처방을 받아 주사를 사곤 했다. 게다가 그동안은 튀르키예의 에피네프렌 주사가 한국의 가격보다 저렴해서, 그래도 사면서 큰 부담이 없어 다행이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1년 또는 6개월에 한 번씩 새로 사야 하기에 가격이 부담되지 않는다면 계속 준비할 생각이었다.
아나필락시스 없이 주사가 쓸모없어서 폐기되는 상황이 참으로 다행이건만, 얼마 전 이곳의 에피네프렌 주사 가격을 듣곤 이곳에서 더 이상 약국 간의 약품 가격 비교 없이 편하게 사기엔 힘들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과, 1년 300TL, 6개월 전 500TL(한화 약 4만 원)이었던 같은 회사의 제품인 에피네프렌 응급 주사는 2주 전, 이스탄불 마슬락 아즈바뎀 인근 약국에서 가격을 물은 순간, 약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무려 1,800TL(122,544원; 23년 3월 29일 환율 기준)으로 오른 것이다. 물론 지진으로 인해 튀르키예 국가 전체적으로 비상 상비약 조달을 위해 에피네프렌(아드네날린을 일시적으로 분비하도록 하기 때문에 비상약으로 흔히 쓰인다.) 관련 약품 수요가 많아 가격이 오를 것이라 예상했지만, 아무리 봐도 일 년 전의 6배에 해당하는 가격, 이것은 너무 심각했다. 더 이상 이곳이 한국보다 물가가 저렴해서 살기 좋다고 말하기가 정말 어려워졌다.
현재 튀르키예 경제 상황은 극심한 인플레이션을 겪고 있다. 매주 만나는 튀르키예어 선생님께 나는 달러 또는 유로로 수업료를 지불한다. 그만큼 자신의 나라의 돈의 가치가 안정적이지 못하다는 뜻이다.오늘 자신의 나라 돈으로 받은 그 물건의 가치는 내일이 되면 그 가치가 아니다. 살고 있는 시떼의 관리비도, 집 앞의 커피숍의 라테 한 잔도 지난 일 년 전의 3배의 숫자로 껑충 올라가 있다.
'지금 사는 그 물건의 가격은 지금이 가장 싸다.'는 튀르키예어 선생님의 말처럼, 지난 1년 전, 불과 300TL로 샀던 에피네프렌 주사는 6배의 가격으로 약국 테이블 위에 놓여있다. 너무나 충격적이다. 결국 나는 그의 에피네프렌 주사의 유효기간을 생각한 후, 다른 약국에 가서 가격 비교를 하고 사야겠다고 결심하고 집었던 에피네프렌 주사를 내려놓았다.
며칠 전, 정부에서 아이를 더 낳게 하기 위해서,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서 여러 가지 정책을 내놓았다. 그리고 나는 그 기사를 자세히 읽는다. 그리고 나에겐 전혀 해당사항이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더 확인한다. 그리고 이 정책으로 과연, 누군가에겐 도움이 될까 하고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나는 유효기한이 지나 이제는 쓸모없어진 에피네프렌 주사를 3개를 가지고 있다. 쓸모가 없는, 어쩌면 나는 쓸모가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들의 안전을 위해 부모인 나는 돈을 쓴다. 지난 과거의 위험과 경험에 따라서 말이다. 한국에서도 나는 그 위험을 겪었고 이곳에서도 나는 준비한다. 그렇게 우리는 그것이 쓸모없기를 바라면서, 아이를 위한 것이라면서 그것을 준비하는 것이다. 아마 모든 부모는 그럴 것이다. 내가 할 수만 있다면 그것이 쓸모없기를, 때론 쓸모 있기를 바라면서, 우리는 아이를 위해 그 무언가도 할 수 있다.
지금 우리의 논의가 진실로 쓸모 있기 위해선 현실 속에 아이를 키우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쓸모없는 에피네프렌 주사를 모으고, 그 어떤 이유로 아이를 편안하게 교육 기관에 보낼 수 없고, 그 어떤 사연으로 자신의 소중한 회사를 그만두고, 그리고 또 어렵게 시험관을 시도하는, 자신의 아이를 건강하게 낳고 키우고 싶어 하는 그녀 또는 그의 삶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나는 그렇게, 잡았던 에피네프렌 주사를 슬며시 내려놓는다.
이곳, 튀르키예에 알레르기가 있는 그 어떤 아이도 아니 세상 모든 아이가 건강하길 나는 다시 빌어본다. 분명 내게도 부담스러운 이것이, 그 누군가에겐 선택조차 할 수 없어, 그저 외면하는 어려움이 아니길 모든 아이들이 건강하길 다시 한번 더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