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아.
이름도 잃었고, 소속도 잃었어.
네 말처럼, 서글프기도 야속하기도 했었는데.
가만히 우주를 산책하다 보니
이름에 얽매일 게 없었고,
소속에도, 정해진 궤도에도 얽매일 필요가 없어졌더라고.
그냥 내가 존재하는 모습으로 지내도 된다는 게,
얼마나 자유로웠는지,
이 기분과 가벼움을 조금 상상해 볼 수 있을까?
몇십 년 전에 한 무리의 과학자들이 내 궤도를 착각해서,
태양계에 소속시키고,
명왕성이라고 이름 붙였던 것뿐이었어.
나도 내 이름을 명왕성이라고 수십 년 불러오니까,
나도 내가 명왕성이라고 착각했었지.
그리고 태양계에 걸맞은 궤도를 가야 한다고 생각했었어.
맞지 않는 궤도에 올라가 있는 모습이,
너희들은 조금 더 상상하기 쉬울지도 모르겠다.
난 원래 내 멋대로 궤도를 산책해.
이젠 태양계를 벗어나 사건의 지평선으로 갈거야.
사실 태양계도 인간이 이름 붙인 한계인거지.
난 그냥 내 궤도를 돌 거야.
아무런 목적도 의도도 없이.
이름도 없이.
나로 존재할 거야.
나를 놓아줘서 고마워.
붙잡혀있던 시간들 에게도 고마워.
<위로하는 마음들에게 명왕성의 답장>
위로하는 마음들에게 명왕성의 답장
칼세이건의 창백한 푸른 점에 대한 영상+글을 보다가 문득 명왕성이 생각났습니다.
보이저호가 촬영했던 그 지점이, 마치 명왕성에서 지구를 바라보는 관점과 비슷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명왕성의 안부가 궁금해졌습니다.
명왕성은 이름도 소속도 잃고 난 이후, 어땠을까? 에 대한
개인적인 상상의 답장입니다.
풀어내고 해쳐 나와도 아직 얽매인 것들이 남아있는 제 희망사항이 담겨있는 글이기도 했습니다.
정해놓은 나이와, 해야 하는 과제 같은 것들이,
마땅히 해야 하는 것들이라고 교육받아 자라왔어서 일까요.
가령, 졸업. 취업. 승진. 결혼. 출산. 효도. 경쟁. 성취.같은 것들이요.
하나라도 삐끗하면 첫 단추를 잘못 꿰인 셔츠라도 되는 것처럼. 겁먹었는데요.
(나르시시스트와 파혼을 했고, 번아웃과 우울증을 겪었지요)
한번 그 궤도로부터 이탈해 보니.
생각보다 또 별일 없더라고요.?
오히려 내 멋대로 살아도 괜찮겠더라고요.?
+(외부에 너무 맞추는 한 극단에 있었어서요)
+(내 멋대로라는건, 피해를 주면서 까지 멋대로의 의미는 아닙니다.)
될 일은 되고. 안될 일은 안되어지는 것을 구경하며 살아가는 시간도 경험해 보고요.
기대하는 대상에게 실망을 전하고, 이건 내 몫이 아니라 거절함으로써,
개인의 시간과 에너지를 확보하기도 하고요.
덕분에 책도 냈고.
덕분에 스스로 화해도 했고.
덕분에 나만의 궤도를 나만의 속도와 모양으로 산책하고 있습니다.
산책하다보면 또 새로운 궤도를 발견하기도 하는데요.
모르죠 어떤 일들이 펼쳐질지요.
가봐야 아는 것들이 있는 거고.
엎어지면서 우당탕탕 해보는 게 또 저에게 거름이 되지 않을까요.?
[선곡]
https://youtu.be/mnpQsM-tqQU?si=uoyPRBjVDRQmm7a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