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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닐라쿠키 Aug 23. 2021

얘들아, 엄마도 '엄마반찬' 먹는다

사계절과 그녀의 반찬


  계절은 참으로 정직하게 반복된다. 사방 모든 것들이 물기를 잔뜩 먹어버린 습한 장마철이 지나고 뜨거운 불볕더위가 온 땅을 찜통으로 쪄놓고 나면, 기분 좋은 저녁 바람이 스치는 늦여름이 찾아온다. 엄마는 그런 계절이 내 생일이라고 했다. 2017년 여름, 첫 아이를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오는 날이 꼭 그랬다. 나의 엄마가 날 떠올리며 미역국 걱정을 하고 있을 시원한 바람이 불던 여름의 끝날에, 나는 그 조그만 생명을 끌어안고 온갖 맹세들을 하느라고 생애 처음으로 내 생일의 특별함도 잊었다. 그 해 여름은 그렇게 순식간에 지나갔고 거의 없어지듯 가버렸다.
 
 내게 다음 계절을 느낄 기회는 수유를 하며 악화된 젖몸살로 병원을 방문하던 날 찾아왔다. 아기를 맡겨두기 위해 엄마에게 도움을 청했다. 난 너무 아파서 입맛도 없었는데 이때다 싶은 엄마는 반찬에 찌개를 한 상 가득 차려놓고 날 맞이했다. 왠지 불편해진 마음으로 한 공기 가득한 밥을 비워내고 헐레벌떡 병원 건물에 들어섰다. 엘리베이터에 탑승해 4층을 누르고 한숨 돌리려니 닫히던 문이 다시 열린다. 한눈에 들어오던 단정한 화장에 깔끔한 단발 웨이브, 세련된 하늘빛 투피스를 입은 젊은 여직원에게 내 시선은 고정됐다. 테이크아웃 커피를 들고 서둘러 함께 타는 그녀의 동료는 또 너무 예쁜 검정 하이힐을 신고 있었다. 거기다 내가 즐겨 쓰던 향수 냄새까지 더해져서 한 순간 엘리베이터 가득한 사람들 하나하나를 바라봤던 것 같다. 병원, 회사, 호텔 사람들이 운집해 있는 60층도 넘는 종합건물이었으니 회사원들 또한 많은 것이 당연했는데 4층까지 오르는 순간은 4시간처럼 길었다. 늘어진 수유 티셔츠에 트레이닝 치마를 입은 내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움츠러들어 구겨 신은 단화로 뒷걸음쳤다. 그중에서도 가슴팍에 얼룩진 김치찌개 자국이 내 차림새의 화룡점정이었으니, ‘이것 봐. 밥이라도 안 먹었음 나았을 걸.’ 자기가 흘려놓은 붉은 얼룩의 불똥은 그렇게 엉뚱한 엄마가 차려준 반찬으로 튀어버린다.
 
 진료를 마치고 건물을 빠져나왔다. ‘아 세상에...’ 온통 새빨갛고 샛노랑이 된 가을나무들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벤치 위 굴러다니는 마른 낙엽소리가 너무 반가웠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계절이 바로 앞에 온 것도 모르고 한참을 지냈구나. 어김없는 계절의 반복을 상기하며 차가운 어스름 저녁까지 조금 더 걷다가 들어갔다. 계절은 똑같이 돌아왔지만 나의 일상은 참 딱지 뒤집듯 완전히 뒤바뀌어 있다고 혼자 웃었다. 몇 시간 전만 해도 만만한 엄마 반찬 탓을 해대던 나는, 결국 그날도 백일 아기가 자는 틈을 타 엄마가 싸준 장조림으로 늦은 저녁밥을 해결했다. 아이 말곤 아무것도 안 보이던 ‘초보 엄마’로 보내는 1년 동안, 그렇게 나는 계절의 변화만큼은 알아챌 수 있었고 돌이켜보면 거기엔 어떤 식으로든 엄마가 있었다. 여름, 가을, 겨울, 봄, 다시 여름.. 그리고 우리 엄마 반찬도.


사진출처: 픽사베이

 전국의 맛있는 먹을거리는 철마다 꿰고 있는 그녀는 뭐 그리 생각나는 사람이 많은지 때마다 많은 이들도 함께 챙겼고, 가족들에겐 갖가지 반찬과 간식을 잘도 해 먹였다. 그녀의 정직한 반찬을 먹고 자란 나는 요리로 꿈을 품고 음식으로 감동을 주는 남자와 사랑에 빠졌다. 소고기로 외식을 하거나 뜨신 밥에 반찬을 먹는 것만이 식사인 줄로만 배워 컵라면도 엄마 몰래 먹던 나는, 때로는 컵라면에 삼각 김밥도 훌륭한 한 끼가 될 수 있음을 알려주는 그 사람에게 반해버렸다.
 
 그때쯤부터였을까. ‘엄마와 딸’이 ‘친정엄마와 결혼한 딸’로 바뀌는 순간부터 아마 우리의 관계는 조금씩 달라져갔던 것 같다. 환갑의 그녀 눈엔, 아이 둘 낳은 서른 중반의 아줌마도 여전히 아이여서 아직도 그 아이를 먹이고 재울 기회만 엿보는 듯했고, 그 아이는 마지못해서라는 듯 그 반찬을 먹고 얻어낸 쪽잠을 채워 자신이 둥지를 튼 새 가정을 돌보러 날아가 버렸다. 물어다 주는 먹이를 받고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던 그 큰 아이는 태어난 둥지에선 밝은 꽃같이 굴었고, 새로운 둥지에선 씩씩하게 날았다.    
 
 아이 둘을 낳고서야 내 날 적부터 인생 곳곳에 스며있는 엄마가 보였던 것 같다.  꽉꽉 들어차 답답하던 엄마의 냉장고처럼 나의 냉장고도 내 자식들의 반찬들로 가득 차 있는 걸 이렇게 발견한다. 아이 반찬 틈에 엄마가 두고 간 내 반찬이 놓여 있어서 또 운다. 새로 만들어본 음식을 싹 비워내는 내 아들을 보면서 ‘보기만 해도 배부르네’라는 진부한 말의 뜻을 이해하게 되고, 음악 소리에 춤추고 까르르 웃는 내 딸을 마주하며 ‘눈에 넣어도 안 아프겠다’는 교과서 같은 문장에 끄덕끄덕 하는 나도 어느새 어쩔 수 없는 엄마가 되어 있었다.
 
 온통 내 새끼들로 채워진 나의 시간표 속에서 나 역시 그녀의 딸이라는 공간을 잊지 않으려 다짐하곤 한다. 오늘날 나의 할머니가 나의 엄마에게 그러하듯이, 지금보다 더 나이가 든 윤여사가 내게 자꾸만 아이 같은 어리광을 부리는 날이 온다면, 그 늙은 소녀의 투정을 여유 있게 받아줄 수 있는 지혜로운 딸로 나이 들고 싶다고. 음식을 흘리고 같은 말을 반복하기 시작하는 그녀를 마주할 즈음엔 그때나마 내가 엄마의 엄마가 되어주고 싶다고. 가만히 닦아주고 조용히 끄덕여 주겠다고.



 '그때는 엄마에게 내 반찬들을 건네는 것도 지금보단 쉬워지겠지.' 그래도 엄마. 어떤 존재들도 예외없이 그 훗날을 장담하지 못하고 살잖아. 그러니까 한 번씩 내가 만든 반찬을 건네받을 때는, ‘내 딸이 만드느라 얼마나 고생했을까’보다는 ‘그래 너도 한 가정의 아내와 엄마로 많이 성장해주었구나’ 기특하다고 격려해줬으면 좋겠어. 엄마도 그랬잖아. 다 엄마 보고 자라서 그래. 나는 반복되는 지난 모든 계절마다 엄마의 반찬을 먹었고 오늘 내 반찬을 만들면서 잘 살아내고 있어. 리고 엄마 마음에 전해졌으면 해.  나는 지나온 삶과 지금 이 순간을 사랑할 수 있게 된 믿음으로 기도하며, 어쩌면 소소해 보일 수 있는 일상을 거창한 행복으로 살아가 보려는 아기새이자 이제는 어미새라는 . 


 혹여나 살다가 크게 넘어졌을 때는 엄마가 있는 둥지로 쉬러 갈게. 둥지가 바뀌니, 아파도 삼키는 것부터 알아 답답한 딸이지만 지금처럼 엄마 밥 먹으러 갈게. 언제나 열려있는 엄마네 문 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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