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혹의 사춘기 16
안녕하세요. 딱따구루이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지난 글에서 자세히 다루기로 했던 퇴사 후 좋은 점들에 대해 말해 볼까 합니다. 하하.
"퇴사하니까 좋아?"
"200% 좋아."
아직 배가 덜 고파서 그런 거란걸 저도 압니다. 생계를 온전히 책임져야 하는 위치에 있었다면 퇴사를 하지 않았어야 한다는 것도 압니다. 그런 의미에서 생계를 책임져 주고 퇴사를 격려해 준 남편에게 일단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네요.
뭔가가 하고 싶거나 사고 싶고 원하는 것들을 돈이 없어서 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 늘어가면 퇴사를 후회하게 되는 순간이 찾아올 거란걸 어렴풋이 느끼고 있습니다. 그 시기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도요. 하지만 아직은 괜찮습니다. 퇴사한 후의 만족도가 훨씬 크거든요. 하하.
대기업을 다니는 사촌이 퇴사를 하고 글을 쓰고 싶어 하는데 조언을 구한다는 글을 보았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절대 그만 두면 안된다.', '글은 퇴근 후에도 쓸 수 있다.', '글 쓰는 것은 취미로 하고 회사를 계속 다녀라.' 등의 조언을 해주더군요. 제가 그만두기 전 주변에서 들었던 말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말들이었습니다. 자신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삶의 가치가 돈과 관련이 많다면 그만두지 않는 게 맞습니다. 그저 같이 근무하는 사람이 싫다거나 회사가 다니기 싫은 거라면 그만두지 않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너머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이 확고하게 있고 직장을 다니면서 얻게 되는 것들을 버려도 괜찮을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된다면 퇴사를 해도 행복할 수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저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고, 책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저는 지금 행복합니다.
2025년 5월 퇴사 후 수입 없이 무소속 백수로 지낸 8개월이라는 시간. 퇴사하며 받은 퇴직금으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퇴사를 고민하고 있다면 퇴사 전 자신의 특성을 잘 파악하는 게 중요합니다. 자신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삶의 가치가 무엇인지 뚜렷하게 알고 있어야만 퇴사 후 후회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저는 싫어하는 게 뚜렷한 사람입니다. 싫어하는 것을 계속하게 되면 극도로 스트레스를 받는 유형의 사람이죠. 직장에 다닐 때에는 악관절이 심해 어깨 뭉침과 두통을 달고 살았습니다. 출근길에 하품하다가 턱관절 탈구가 일어나는 일도 부지기수였습니다. 대학병원에서 스플린트를 맞춰 낀 것도 20년이나 됐습니다. 이제는 딱딱한 숏다리를 씹어 먹은 날이 아니라면 턱관절이 아픈 날은 없습니다. 직장에 다니며 스트레스 안 받는 사람이 어디 있냐라는 말도 맞지만 스트레스에 대한 민감도는 개인마다 다르고 스트레스에 더 취약한 사람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건강을 망칠 정도로 스트레스에 민감한 사람이라면 계속 직장에 다니다 건강이 나빠지는 것보다 건강할 때 퇴사 하는 게 더 싸게 먹히는 게 아닐까요?
사람들을 덜 마주하고 나만의 시간이 많은 걸 선호합니다. 남이 인정해 주는 것보다 스스로의 만족감이 더 중요합니다. 하루 종일 타이트한 시간 속에 나를 욱여넣는 것보다 내 시간에 맞춰 일을 하는 게 좋습니다. 물질적인 것보다 정신적인 만족감이 더 중요하고, 스스로 자신이 유용하다고 느껴지는 게 중요한 사람입니다. 내가 좋아해서 반복적으로 하는 행위들이 쓸모 있다고 느껴졌을 때 성취감이 듭니다.
주말 동안 후쿠오카로 가족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위 그림은 여행 중 찍어온 주택가 풍경을 보고 그린 것인데요, 직접 찍은 사진을 그림으로 남기고 여행을 다시 한번 상기할 수 있어 좋습니다. 여행을 더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게 됐다고 할까요.
매일 아침 곤히 잠들어 있는 아이의 얼굴을 지그시 바라보고 있는 시간이 좋습니다. 빨리 가야 한다며 재촉해서 잠을 깨우고 아침밥을 먹는 둥 마는 둥 문밖을 나서지 않아도 되어 좋습니다. 아이가 조잘조잘 이야기하고 작은 입을 부지런히 움직이며 여유롭게 아침밥을 먹는 시간이 좋습니다. 늦었다며 아이손을 잡고 뛰지 않아도 돼서 좋습니다. 아이와 손 잡고 오늘의 날씨를 이야기하며 낙엽을 줍고 물웅덩이에서 첨벙거리며 하늘색을 얘기하고 멋진 구름을 바라보며 조금은 느긋하게 어린이집에 걸어가는 시간이 좋습니다. 가장 먼저 어린이집에 도착해 혼자 덩그러니 있을 아이를 안타까워하며 급한 작별인사를 하고 돌아서지 않아서 좋습니다. 아이가 아프면 아무 걱정 없이 집에서 함께 지낼 수 있어 좋습니다. 어린이집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달려가 아이를 찾을 수 있어 좋습니다. 아이가 그림 그리는 엄마를 좋아하는 게 좋습니다. 그림 그리는 제 옆에 조용히 앉아 같이 그림을 그리고 책을 읽는 게 좋습니다. 부담 없이 아이의 학교 행사에 참여할 수 있어 좋습니다.
나름 삶을 지속하는 이유에 대해서 꽤 오랫동안 고민해 왔습니다.
나만의 무언가를 만든다는 것. 남긴다는 것. 여기, 이 시간, 내가 존재했음을 기록하는 것. 나의 유용함이 증명되는 것. 이런 것들이 지금을 살아가게 만드는 힘이 되는 것 같습니다.
퇴사를 하고, 그림을 그리고, 이제야 조금 살아있다고 느끼는 요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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