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하지 못한 말들로 채워진 하루

엄마도 매일 성장 중입니다, 뭄바이에서

by 김소연

뭄바이

한국에서의 익숙함을 내려놓고, 전혀 새로운 삶이 시작된 도시


많은 이들이 ‘주재원 아내’라고 하면 여유롭고 안정된 생활을 떠올리지만, 나의 일상은 그와는 조금 다르다.


뭄바이에서의 하루는 새벽 4시 반에 시작된다

해가 뜨기도 전, 부엌 불을 켜고 도시락 세 개를 싼다.

중학교 2학년 딸, 초등학교 4학년 아들, 남편

아이들은 둘 다 다른 학교에 다닌다

딸은 일본계 국제학교, 아들은 현지 아이들이 대부분인 인도 국제학교


매일 도시락을 싸며 생각한다

‘ 오늘도 이 아이들이, 이 낯선 땅에서 조금 더 단단해지기를.’


딸은 요즘 방에서 잘 나오지 않는다

사춘기라 그런가 보다 하고 넘기려 해도

문득, 그 문 앞에 오래 서 있게 되는 날들이 있다

말은 줄었지만 마음은 더 커졌을 딸에게

나는 매일 조용한 밥상을 건넨다.

그게 지금 내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의 사랑이자 위로다.


사실 나는 영어를 못한다

처음 인도에 왔을 땐 식당에서 물 한 병 주문하는 것도 어렵고, 아이 학교에 전화 한 통 넣는 것도 두려웠다

주재원 아내들은 대부분 영어를 잘하니까 나도 당연히 그럴 거라는 시선 속에서, 나는 더 작아졌다


그래서 공부를 시작했다

아이들 학교 보낸 뒤, 작은 카페 구석에 자리를 잡고

하루 5시간씩 영어를 공부한다

유튜브, 팟캐스트, 문법책....

하나도 쉽지 않지만 이대로 머무를 순 없다는 생각 하나로 매일 그 자리에 앉는다


일본어도 마찬가지다

딸의 학교는 일본어로 운영되는데

언어의 장벽 때문에 아이에게 도움이 되지 못할 때

마음이 답답하고 미안하다. 그래서 포기하지 않는다.

하루에 단어 하나라도 더 외우고, 문장 하나라도 익히고 나면 조금은 안심이 된다. 조금은 덜 외롭다


나는 주재원 아내지만 그 이름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사람이다. 나는 엄마고, 아내고 , 학생이고 그리고 ‘나’라는 사람으로 매일 노력하며 살아가고 있다


말이 잘 통하지 않아도

마음만큼은 전하고 싶은 사람이 되기 위해

오늘도 책장을 넘긴다

오늘도 말 한마디를 따라 소리 내어 읽는다


뭄바이의 새벽, 그 시간은 나를 닮았다

조용하지만 단단하고,

고요하지만 간절하다

낯선 도시에서의 외로움은 갑작스레 찾아오지 않는다

늘 곁에 있는 공기처럼, 가만히 나를 감싼다


하지만 나는 그 고요함을 밀어내지 않는다

창밖을 내다보며, 차 한 잔을 천천히 마시며,

그 외로움과도 조금씩 친구가 되어간다


누구에게 털어놓을 수 없어 더 무거운 감정들이지만

그럴수록 더 천천히, 정직하게 마주하려 한다


언젠가는 이 시간들도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고

결코 나의 노력들이 헛되지 않았다고

담담히 웃으며 말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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