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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or워커 Jan 25. 2023

연차를 쓰고 슬램덩크를 보러 갔다.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면 나를 위한 연차를 쓰기 어렵다. 아이가 갑자기 아프거나, 참석해야 할 가족 행사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직장에서 보면 연차가 높을수록 휴가를 사용하지 않는다. 일도 일이지만 별일 없으면 직장에 있는 게 당연스러워져서 그런 것 같다. 하지만 가능한 한 기회를 만들고 자신을 위해 연차를 쓰라고 말하고 싶다. 나는 특별한 일 없이 연차나 반차를 쓸 때가 꽤 있다. 이번에는 슬램덩크를 보기 위해 연차를 썼다.


연차 얘기를 해야 하는데 슬램덩크가 자꾸 생각난다. 슬램덩크 이야기부터 꺼내보겠다. 나는 초등학생 때 처음 슬램덩크를 봤다. 형을 따라 만화책과 비디오로 만났다. 중학생 때는 TV로 다시 봤다. 고등학생 때와 대학생 때는 다시 만화책을 봤다. 결국 청년으로 성장하는 내내 슬램덩크가 곁에 있었던 셈이다. 볼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렸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는 농구가 되었다. 


슬램덩크를 처음으로 연재할 때, 작가 이노우에 다케히코는 23살이었다고 한다. 6년의 연재기간 내내 그는 20대였다. 청춘의 최전성기를 보내던 작가는 작품 속의 캐릭터들에게 피 끓는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담았을 것이다. 그렇게 창조해 낸 청춘들은 신화가 되었고, 30년이 지난 시간임에도 그 모습, 그 열정 그대로 다시 찾아왔다. 이번 슬램덩크 극장판도 자연스레 기대하게 되었고, 극장에서 보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영화는 대만족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몰입할 수 있었고, 극적인 연출과 메탈 사운드는 영화를 보는 내내 가슴 뛰게 만들었다. 두근거림이 참 좋은 감정이라는 것을 잊고 살지 않았나 싶다. 추억이 되살아나는 느낌도 좋았다. 요즘 3~40대 남자들이 열광한다고 뉴스에도 나오는데, 입소문만큼의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서 그동안 보았던 슬램덩크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감정을 느꼈다. 영화와 관련 없이 오롯이 나에게서 생겨난 감정이다.


우선 주인공들에게 감정이입을 하기 힘들었다. 오히려 극 중 송태섭의 어머니와 비슷한 시선으로 그들을 지켜봤다. 그저 다치지 않기를, 상처받지 않기를, 건강하게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리고 송태섭, 강백호, 서태웅에게 내 아들의 모습을 투영하고 있었다. 부모의 감정이 이런 거구나. 내가 정말 어른이 되었구나 생각했다.


또 작가인 이노우에 다케히코의 심경에 대해 생각했다. 20대 청춘의 작품을 50대가 되어서 다시 만들 때 과연 작가는 어떤 기분일까? 산왕전이라는 예전과 똑같은 경기를 묘사하였지만 장면마다 느끼는 감정이 다를 것이다. 지난날의 나와 지금의 나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할 것이다. 젊은 날 열정적으로 작업하던 그때가 그리울까, 아니면 다시 그때를 묘사할 수 있을 만큼 성공과 성장을 한 지금의 모습에 뿌듯함을 느낄까. 알 수는 없지만 그런 작가의 심경을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20대의 나와 지금의 나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보았다.




2주 전에도 연차를 쓰고 아바타 2를 봤다. 아바타 2를 보면서도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와이프와 함께 했던 몰디브의 바닷속이 떠올랐다. 낯선 곳에서 쉽게 어울리지 못하는 아이들을 보며 이사를 갔을 때 우리 아이들의 적응을 어떻게 도와줘야 할까 생각했다. 자식이 넷이나 되는 제이크 설리를 보며, 셋째도 도전해 보면 어떨까 하는 무시무시한 생각까지도 들었다. 


자신을 위해 연차나 반차를 써보자. 직장에서의 나는 쳇바퀴 속 다람쥐 같을 수밖에 없다. 의도적으로 새로운 자극을 주입해야 한다. 거창한 계획이나 목적이 없어도 좋다. 나와 세상을 다른 시선으로 볼 수 있는 잠깐의 시간이면 된다. 보고 싶던 영화를 보거나, 혼자 카페를 가거나, 자주 못 봤던 친구를 찾아가 보자. 직장의 팍팍함도 조금 무뎌지고 삶의 재미도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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