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For워커 Dec 30. 2022

수동적인 아이

취업준비생에서 첫 직장까지

나는 수동적인 아이였다. 선택의 중요성을 깨닫는 게 굉장히 늦은 편이었다. 부모님이 원하는 수준의 대학을 갔고 담임선생님이 원하는 학과를 선택했다. 친구가 선택한 군대를 갔고 친구와 함께 복학했다. 주변에서 다들 준비하는 회계사 시험에 도전했지만 취업하는 친구들을 보며 다시 취업으로 노선을 바꿨다. 그렇게 끌려다니다 보니 27살이 되어있었다.


그전까지 큰 문제는 없었다. 먹고사는 고민도, 미래에 대한 고민도 깊게 하지 않았다. 그저 그렇게 흘러가듯 살았다. 성공하는 사람과는 거리가 먼 생활방식이다. 하지만 취업 전선에 뛰어든 27살, 이전까지의 삶과는 달리 무언가 스스로 해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내 의지로 선택을 해야 했고 성과를 내야 했다.


부랴부랴 준비를 했고 한 해가 가기 전 두 군데의 합격통지서를 받을 수 있었다. 삼성생명과 신한은행이었다. 두 곳 모두 금융회사인 만큼 급여가 센 곳들이었고, 채용까지의 과정도 쉽지 않았다. 삼성생명의 경우 SSAT(현재는 GSAT)를 치고 두 번의 면접을 봤다. 신한은행도 인적성검사를 보고 두 번의 면접을 봤다. 합격자 확인을 위해 주민번호와 이름을 칠 때 떨리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걱정이 해소되는 쾌감에 밤잠 설쳤던 기억도 난다.


"내가 보기엔 그냥 둘 다 비슷비슷한데?"

군대 동기 형에게 고민을 상담했을 때 답변이다. 고학력에 로스쿨을 합격한 그 형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당시 난 그 형이 괜히 시기하는 건가 생각했지만 결국 그 말이 정답이었다. 두 곳 모두 보수는 높은 편이었지만 업무강도가 높았다. 특히, 영업을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서 내 성격과 굉장히 어울리지 않았다. 그렇게 불안감이 커져갔음에도 다른 직장에 대해 알아보지 않았다. 그때의 나는 두 군데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생각에 함몰되어 있었다.


삼성생명에는 근무 중인 선배가 있어 많은 것을 물어보았고, 신한은행에는 지점에 무작정 찾아가서 행원에게 물어보았다. 여러 정보를 수집하다 보니 갈림이 있었다. 삼성생명은 보험이란 사회적 인식이 생각보다 매우 나빴다. 누군가에게 설명을 할 때면 삼성그룹에 공채로 입사한 사람이라는 설명을 꼭 덧붙여야 했고, 그렇게 하더라도 상대방의 미심쩍은 눈초리는 잘 바뀌지 않았다. 신한은행은 사람들의 인식이 괜찮았지만 일의 강도가 높았다. 특히 영업 전반에서 직접 뛰는 행원들의 영업 불안감은 숨길 수가 없었다.


그렇게 고민을 이어가던 중 삼성생명으로 결정하게 됐다. 영업은 간접적으로 하고 돈은 조금 더 많이 주는 삼성생명을 선택했다고 말하고 다녔다. 하지만 실상은 그게 아니었다. 신한은행 연수가 먼저였는데 그냥 가기가 귀찮아졌었다. 그게 가장 큰 이유였다. 그때의 마음은 아직도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내 머릿속에서 정리를 마친 것이었는지, 연수 전날 짐을 싸다 말았다. 그러고는 연수 둘째 날이 되었을 때 신한은행에 연락해서 지금이라도 가면 안 되냐는 어처구니없는 질문을 했다.


그전까지는 그냥 아이의 마음이었던 것 같다. 선택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철부지. 그렇게 첫 직장이 정해졌다. 모두가 중요성을 입모아 말하는 그 첫 직장이다. 그때의 나를 만날 수 있다면 호되게 혼을 내고 싶다. 직장은 어쩔 수 없이 가는 곳이 아니라 목표가 있어서 가는 곳이라는 것을 밤새도록 말해주고 싶다. 연애, 결혼, 출산, 육아 등 앞으로의 거의 모든 삶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선택이란 것을.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수동적으로 임했던 나의 자세에 안타까움이 몰려왔다. 나란 존재가 어떤 사람인지, 내 삶의 방향성이 무엇인지 생각도 해보지 못하고 세상은 답안지를 걷어갔음을 깨달았다. 망치로 뒤통수를 세게 맞은 느낌을 받은 그 순간, 수동적인 아이는 사라지고 능동적인 청년이 태어났다.




첫 직장이 중요하다는 말을 많이 한다. 커리어나 연봉, 인적네트워크 등 실리적인 이유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첫 직장의 의의는 조금 다르다. 첫 직장은 직장인의 삶을 지속할 수 있는 가를 처음으로 느끼게 되는 곳이다. 새롭고 놀라운 첫 경험은 오랫동안, 혹은 평생토록 기억에 남고 영향을 준다. 직장이 나에게 도움을 주고 나도 여기서 성장할 수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곳인지 잘 생각해보길 바란다.

이전 01화 대기업 갈래? 공공기관 갈래?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