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에 제일 큰 충격 중 하나는 동생이 태어나서 그 애에게 엄마를 빼앗겼다고 느꼈던 때였다. 나는 어렸지만 또렷이 기억한다. 엄마는 내게 말했다.
"이제 너는 누나니까 젖을 그만 먹자. 젖은 아기들이나 먹는 거야."
나는 분명 세 살 밖에 안 되었음에도 똑똑히 기억한다. 속으로 나도 아직 아기인데...... 라며 서운했지만 엄마의 교묘한 설득과 카리스마, 그리고 아직은 자유롭게 구사하기 힘든 말대구 실력.
나는 그날 이후 엄마에게 딱 한 번만 엄마 젖을 먹게 해 달라고 졸랐다. 마지막이라는 말에 엄마도 어쩔 수 없이 내게 젖을 물렸다.
어린 나는 있는 힘을 다해 엄마의 젖꼭지를 깨물었다.(라고 전해진다.) 나는 사실 그건 기억이 나질 않고 마지막 애원까지만 기억이 난다. 어쩌면 엄마가 너무 아파 나를 때려 기절시켰을지도 모른다고 혼자 상상하곤 했다.
하지만 팩트는 엄마가 병원에 갔다. 그것도 먼 친척벌인 나의 오빠벌 되는 분의 외과에 갔다고 한다. 엄마는 죽는 날까지 그것을 일생의 가장 큰 치욕으로 여겼다. 너무 창피했다고 했다. 나도 미안한데 어쩔 수 없다 생각했다. 그러게 왜 어린 나에게 그런 가혹한 처사를 했을까. 다시 태어났다며 나는 왜 이전 일을 기억하는 걸까?
다시 산다는 것. 이것을 기독교에서 말하는 거듭남의 개념으로 해석해 보고 싶지만 아직 실력이 부족하다. 그러나 좀더 정확하게 한다면 나는 그냥 죽을 뻔 했다 다시 산 사람으로 설정하고 싶다.
이렇게 다시 태어났으니 기왕이면 전과 다르게 살아보고 싶다. 현재 나는 몇 살인가? 기왕이면 완전히 다른 환경에서 태어나 다르게 살고 싶다. 만약 같은 환경이라면 젖먹이 때로 돌아가 순순히 동생에게 양보하고 말겠다.
내가 다시 산다면 첫 날에는 거울 앞에서 나를 세심하게 살펴볼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너무 먼 산만 보느라 창 밖은 자주 봤지만, 거울을 자주 보지 못했다. 봐도 대충 필요한 부분만 훑어 보는 정도였지 꼼곰히 뒷모습, 옆 모습, 웃는 모습을 들여다 본 적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세상 그 누구보다 나를 가장 잘 알고 나와 가장 친하게 지내고 싶다. 이렇게 첫 날을 보낼 것 이다.
거울을 보니 시무룩한 내가 있다. 아니 다시 살게 된게 기쁘지 않은 걸까? 생각보다 많은 나이로 다시 살게 된 걸까? 둘째날은 감사로 시작을 해야 할 것 같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