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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티 Sep 15. 2023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욕망의 전차에서 열망의 자전거쯤으로

이래 봬도 류중일 감독 찐 팬이었다.

팬레터 이런 거 절대 안 쓰는데 내가 류중일 감독에게

어린 시절 팬레터를 썼다가 보낼까 말까 망설이다 앨범에 끼워 뒀다.


어린 시절 나는 야구의 열렬한 팬이었다.


5학년때부터 야구에 눈을 떠 6학년 때 대부분의 야구 룰을 알았고 재미를 붙였다.

6학년 말쯤 되었을 때에는 한일 대항전이라든가 국가대표의 라인업을 꿰뚫을 정도가 되며

남들은 관심 갖지 않는 포지션인

포수유격수의 중요성을 익히 알고 있었으며

중1이 되었을 때는 라디오에서 나오는 중계를 이어폰으로 듣다가 중요한 순간

공이 맞는 소리를 듣고 홈런과 안타와 파울을 구별해 낼 수 있었다.(증인이 없으니 믿거나 말거나)


나는 야구에 진심인 소녀였다.

그래서 나는 불변의 2루수를 내 포지션으로 열심히 연습했다.

물론 야구팀 같은 건 없었지만, 발야구를 할 때도 나는 2루수였다. 왜냐하면 포수와 유격수의 호흡을 눈치껏 잘 받아낼 수 있는 최적의 포지션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혹시 1루수와 유격수의 사인이 안 맞아 실수하더라도

2루수가 그것을 커버해 줄 수 있는 중요 포지션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때는 집에 오는 길에 꼭 역 앞에 있는 자동 타석기에서

매일 친구와 배트를 한 번씩 휘두르고 집에 갔다.

그러던 어느 날 하교 길에 체육선생님들이 야구를 하는 것을 보고

우리가 구경을 하니 선생님들이 우리가 뭘 아느냐는 듯 묻길래


내기 시합하실래요?

라고 말했다. 샘들이 콧방귀를 뀌었다.


우리는 비장의 미소를 숨기고 몇몇 애들을 더 불러와서 샘들과 인원수를 맞추고 약식 게임을 하기로 했다

경기 전, 나는 샘들에게 내기는 콜라 한 박스라고 했다.

아니 애들은 5명인데 한 박스가 뭔가 싶으면서도 설마 여학생들한테 질까 싶어 알았다고 했나 보다.


결론은

우리가 이겼다. 무참하게 밟아드렸다.

샘들이 콜라를 사 줬다. 근데 1인 1병만 사 줬다.

그래서 우리는 치사한 샘들과 다시는 내기 시합을 안 하는 걸로 하고

체육시간에 미식축구라든가 그런 험한 게임이 있을 때 선생님의 런닝 셔츠까지 찢어놨던 것 같다.


일명 우리를 잘 못 본 대가였다.


여학교 무섭지????


이러던 우리가....

손에서 물건이 미끄러진다.

양말이 돌아간다.


이런 우리들에게 어떤 욕망이 있을까? 꼭 있어야 하나? 그것만이 삶의 원동력일까?

욕망이라기보다 갈망이나 열망이란 말이 편안하다.


운동장에서 체육선생님들을 상대로 야구시합을 하던 우리는 전차부대를 방불케 했는데

이제는 그런 액티브한 욕망보다 무언가 내면 깊숙이 숨어 있던

또 다른 열망들을 실현해 보는 나이가 된 것 같다.



그것을 세상과 잘 어우러지도록 비비고 섞어 나 다운 나이로 채색되어 가도록.




#야구소녀 #글루틴 #팀라이트 #류중일감독 #불변의2루수 #욕망전차 #열망 #비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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