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작가입니다.
어느 80세 노인이 보내는 편지
서문]
50살 이후부터, 제법 내 삶의 속도를 찾아 삶이 많이 안정되었다. 이전처럼 조급해하지도, 불안해 하지도 않는다. 내가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도 분명해져서 삶의 이야기들을 한 페이지, 한 페이지에 나만의 방식대로 담아내는 데 어느 정도 노련해졌다. 그렇게 어느덧 '나의 삶'을 주체적으로 꾸려나가며 책을 여러 권 출간했다.
이 세상 누군가 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준다니, 80살까지 걸어온 나의 여정이 그리 헛되지 않았나 보다.
편지]
안녕, Kite. 30대 초반의 너는 많이 서툴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많이 방황했었지. 유년시절부터 너 자신이 누구인지를 잘 모르고, 스스로가 원하는 선택을 할 기회가 많이 부족한 환경에서 자랐기에 너에게는 너 자신을 찾는 것에 대한 갈망이 무엇보다도 컸었지. 그래서 너는 조금 무모한 도전도 무릅쓸만큼 용감했고 대담했었어. 20대 초반에 너 자신을 찾아 떠났던 유학이 훌륭한 결말을 맺지 못하고 초라한 모습으로 네가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그 모습을 본 가족들이 너의 유학생활 자체를 비난했을 때, 너는 몹시 마음 아파하며 어둠의 길을 한걸음씩 걸어갔었지. 어두움의 시간이 너무 길어 너조차 스스로를 의심하고 질책하다 어느 새 너는 너 자신의 가장 큰 적이 되어 있었어. 너는 너 자신이 왜 그리 나약하냐며 속상해하고 하염없이 스스로를 향해 화살을 쏘았었지.
그런데, Kite. 시간이 다 지나고 보니, 너는 옳았어.
강하고 권위주의적인 부모에게 굴복당하고 그들의 결정에 네 인생이 흘러가도록 숨어서 너 자신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너는 무언가가 잘못되었음을 인식했고 끝까지 너 자신을 포기하지 않았어. 너는 나약하지도, 비겁하지도 않았어. 오히려, 그리 뒤틀리고 건강하지 못한 가치관에 너는 당당히 맞서 싸웠어. 가족이 지속적으로 심어주는 실패의식에 영향을 받아 잘못된 자기상을 가져 스스로를 많이도 괴롭혔지만, 너는 매순간 너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 해왔어. 그래서 Kite, 지금의 네가 아무리 나약해 보여도, 너무 오랜시간 동안 방황한 것 같이 느껴져도, 80세의 나가 보기에 너는 참 강인한 아이구나. 그 힘든 세월들을 너무 잘 버텼어. 네 속에 있는 어린 아이를 그만 부끄러워 해도 돼. 괜찮아. 달리는 방법만 배워왔기에, 멈추고 스스로를 돌보는 것을 어색해하는 것은 당연해. 그러니, 이제 자책은 그만두고 진흙탕을 뛰어오기만 했던 너에게 먼저 손을 건네보는 건 어때?
재미있는 사실 하나 알려줄게.
80세의 나는 나를 가장 신뢰해. 그리고 존중해. 왜냐하면 그럴만한 사람이니까.
그리고 세상을 더 산 인생 선배로서 얘기할게. 이건 진실이야. 20대에 미국으로 떠난 유학은 네가 스스로를 위해 내린 첫번째 주체적인 결정이었고 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 중 하나였어. 내가 장담하지. 네가 가장 잘 내린 선택들 중 하나였다고.
일의 결과로 그 일의 모든 과정을 판단하거나 정의내릴 수 없고, 인생이 계획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배웠을거야. 한 가지 더 기억하자.
네 삶을 결코 타인의 판단에 팔지 마. 그렇게 하기엔, 사람 인생의 순간 순간들이 너무 값지고 소중하단다. 그러니 헐값에, 잘못된 가격에 네 인생의 조각들을 쉬이 넘기지마. 그것들을 다시 제자리로 찾아오기까지 많은 노력과 시간을 공들여야 해.
30대 초반의 네가 돌아봤을 때, 아직 마무리 되지 않은 춥고 어두운 길이 야속하리만큼 길다고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역설적이게도 너는 너무 건강하기에 아파할 줄 알았고, 충분히 아파했고, 아팠던만큼 너는 더 강해졌어. 너는 너의 신념대로 잘 살아왔어. 스스로에게 떳떳한 사람으로.
너의 내면 속 어린아이를 무시하지 않아 주어서 고마워.
그 아이도 알고 있어. 네가 얼마나 다양한 노력들을 해왔는지. 네가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기를 얼마나 반복했는지. 사랑하는 방법을 몰라 속상해했던 너이지만, 그 와중에도 어린 아이는 네게 사랑을 받고 성장하고 있었어. 너는 자주 후회와 회한으로 하루하루를 채웠지만, 너는 포기하지 않았고, 그 긴 어둠의 터널을 지나오며 너라는 사람이 참 많이도 깊어졌어. 세상과 사람들을 보는 시야가 넓어졌고, 네가 애써 스스로를 세상과 단절시켰던 그 시간들을 통해 놀랍게도 오히려 이전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진실되게 포용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울 수 있었어. 너는 어둠 속을 헤맸지만 너무도 찬란히 빛났고, 아파했지만 더 건강해졌고,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생각했지만 너는 진짜 너를 마주하기 시작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