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작가입니다.

어느 한 여인의 이야기

by Kite

"어쩌다 내가 이렇게 되었지..

어쩌다 내가 이렇게 되었지.."

이 문장을 반복하며 끝내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그 속상함을 왠지 알 것만 같으면서도, 알고 싶지 않았다.


올해로 85세.

하얀색과 회색으로 뒤덮힌 머리카락,

앞에 있는 사람이 누구일까 기억을 더듬기 위해 끔뻑거리는 두 눈,

웃고 있는 것일까 울고 있는 것일까 알아볼 수 없을 만큼 경직된 얼굴 근육.

그녀는 알츠하이머 치매를 앓고 있다.


1940년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6.25 전쟁을 겪었고,

그녀는 한 남자의 아내로, 네 자녀의 엄마로 그 모진 세월을 악착같이 살아왔다.

그녀는 타고난 재능이 많았다.

눈에 보이는 이미지를 단숨에 파악하고, 사람의 생김새에 따라 어떤 스타일링이 어울리는지를 잘 알았다.

그 옛날, 서울 한복판에서 그녀는 타고난 패션 감각을 살려 청바지를 직접 디자인하고 만들었다.

그녀의 옷가게는 문전성시를 이루었고 사업수완도 좋아 마침내 평창동에 큰 주택 두 채를 보유하게 되었다.

그녀는 매일 새벽 3시 반 출근해서 늦은 밤 11시가 넘어서야 집에 들어오곤 했다.

커리어 우먼, 신여성 등의 단어들로는 그녀의 인생을 표현하기에 역부족이다.

쉴 틈 없이 공장을 돌리고, 수많은 직원들을 관리하며 오로지 그녀의 실력과 근성으로 쌓아올린 사업을 그녀는 '장사'라 칭했다. 네임밸류를 자랑하는 대학 교육을 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그녀는 그녀의 존재와 그녀가 결실을 맺은 그 많은 업적들의 가치를 깎아내렸다.

깎는다고 깎아질 수 없는 그 귀한 것들을 그녀는 귀한 줄 알지 못했다.

재능이 뛰어난 만큼, 또 그녀가 부지런한 만큼

일을 쉼 없이 계속 해야 했기에

집안일은 그녀의 남편이 맡았다.

남편은 그녀의 바쁨을 이해하기보다 그녀의 바쁨으로 부터 나오는 풍족을 곧잘 누리는 쪽을 택했다.

끼가 많았던 그는 부지런하게도 그녀의 마음을 상하게 했다.

그는 노래를 좋아했고 여자를 좋아했다.

그는 그의 장점을 너무도 잘 알았다.

뚜렷한 이목구비에 튼튼한 성대, 언제 어디서나 당당한 그의 애티튜드는 사람들의 관심을 즐겼던 그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선물이었다.

자칭 성악가였던 그는 어디서나 노래를 불렀고,

그의 노래가 있는 곳엔 사람들이 있었고, 그 사람들 중엔 여자들이 있었다.

1년 365일 근면성실했던 그녀가 바쁠 수록, 그녀의 남편은 그의 인생을 즐길 기회가 많았다.

안타깝게도 그녀는 남편을 많이 사랑했다. 그녀 자신보다 더 그를 사랑해서였을까. 그녀에게 남편은 절대자였고, 유일한 남정네였다.

미적으로도, 시각적으로도, 사업적으로도 그렇게 좋은 판단을 빠르게 내렸던 그녀는 유독 남편 앞에서는 길 잃은 아기 고양이가 되었다.

그렇게 나이가 들었고, 노쇠해졌다.

남편의 잘못된 판단으로 잘 나가던 사업이 무너졌고,

그렇게 그녀는 안팎으로 그녀 자신을 잃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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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흘러 그녀의 삶이었던 장사를 더 이상 하지 못하게 되었고, 점점 집에 있는 날들이 많아졌고, 그녀는 서서히 기억을 잃게 되었다.

그녀의 남편은 그녀를 방치했고, 그렇게 그녀는 인생의 하루 하루를 잃어버려가고 있었다.

눈을 떠보니 같은 옷을 입은 동년배의 여인들이 같은 방에 머물러 있었다.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오늘이 며칠인지 알 수 없는 날들이 반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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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토요일 오후, 키가 큰 청년이 찾아왔다.

그녀는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어 한참을 뚫어져라 청년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청년이 마스크를 벗고 '할머니' 하고 불러도 그녀는 도통 누구인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렇게 손녀의 이름을 묻고 이야기 나누고 또 다시 이름을 묻고 이야기 나누고를 한 열 번즘 반복했을까.

"첫 손주라 내가 널 얼마나 예뻐했는지 아니?"

그녀의 기억이 선명해졌던 순간이다.

이내 채 몇 분도 지나지 않아 그녀는 다시 손녀의 이름을 물었지만 순간마다 찾아왔던 그녀의 기억은 보석처럼 반짝거렸다.

그녀의 손녀가 인사를 하고 일어서려 하자,

기억을 잃기 전 그녀의 아름다웠던 인생이 주마등처럼 그녀의 머리 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런데 어쩌지, 내가 용돈을 줘야하는데 줄 게 없네. 미안하다..."

그녀는 진심으로 그 상황을 안타까워 했다.

그녀에게 용돈은 마음의 표현이었다.

몇 십년을 거슬러 올라가 과거의 그녀를 만났던 걸까.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어쩌다 내가 이렇게 되었지..

어쩌다 내가 이렇게 되었지.."


언제나 줄 것이 많았던 그녀가, 줄 것이 없는 쇠약한 자신을 마주하기엔 너무 많은 날들이 생략되어 버렸다.


어엿한 어른이 된 손녀에게 오늘도 그녀는 자꾸만 용돈을 주고 싶다.


용돈을 받는 것이 더 익숙할 동년배의 할머니할아버지들과 달리 그녀는 용돈을 주지 못해 미안하다며 눈물을 흘린다.

손녀는 아주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 같다.

침대에 누워 자신의 상황을 온 맘으로 안타까워 했던 그녀의 모습을.

기억을 잃어가던 중에도 결코 잃지 않았던 그녀의 인심을.


시간은 사람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냉혹한 현실과,

미래 자신의 노년의 모습을 그려보는 상상 사이에서

손녀는 뇌리에 박힌 할머니의 애달픈 말을 떠올린다.


"어쩌다 내가 이렇게 되었지..

어쩌다 내가 이렇게 되었지.."


자신의 삶을 찾아 방황하던 손녀에게 왠지 이 말이 낯설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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