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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애리 Dec 17. 2020

엄마의 편애 대상 1호

6.엄마의 첫째 딸



나는 여느 회사에서 채용공고를 낼 때면 수십 장 보게 되는 자기소개서에 나오는 딱 그런 집에서 태어났다. 엄하신 아버지와 인자하신 어머니의 1남 2녀 중 장녀다.  

고모가 나를 볼 때마다 셋 중에 내가 제일 홈세가 심했으며 엄마 치마폭에서만 살았다고 말씀하셨다.

('홈세'는 제주도 사투리로 어린아이가 무엇을 달라고 보채며 어리광 부리는 것을 말한다.)


엄마는 내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너무 울기만 해서 점집에 데리고 간 적이 있다고 했다. ‘아기아빠가 예민하니까 아기가 똑같지.’

문지방을 넘기도 전에 이런 말자,

아빠는 기분이 상해 곧바로 나와 버렸다고 한다. 

믿든 말든 내 성격은 아빠를 닮은 걸로.      


엄마는 첫 딸이라 나를 애지중지 키웠다.

이유식은 방앗간에 가서 곡식을 미숫가루처럼 곱게 갈아 와서 이유식 가루와 혼합해서 먹일 정도로

첫 아이에 대한 애정은 남달랐다고 한다.    

제사나 집안 모임 기타 행사가 있을 때도 딸이라고 해서 전 부치기 같은걸 한 번 시킨 적이 없었다.

이 나이 먹고 자랑은 아니지만, 할 수 있는 요리라곤 생존을 위한 계란 프라이와 라면밖에 없으니 일곱 살 때부터 밥솥에 밥 짓는 법을 배웠던 남동생과는 사뭇 다르게 키워졌다.



여동생이 기억하는 엄마의 편애는

딱 두 번이었다고 다.  

내가 중학생이고 여동생이 초등학교 6학년 때, 큰아빠가 지역 선거에 나가던 시절이 있었다.

엄마 아빠는 유세현장에 나가야 해서 어린 남동생을 돌볼 사람이 필요했다.

그날 우리는 성당에서 눈썰매 타러 가기로 한 날이었는데, 엄마는 여동생 집에 남아 남동생과 놀고 있으라고 하셨.

그리고 언니만 눈썰매 타러 다녀오라고 했을 때 처음으로 둘째의 설움을 느꼈다고 했다.


두 번째는 교복. 동생이 중학생 되던 날이었다.

동생은 나와 같은 중학교에 진학하게 됐는데 엄마는 동생에게 새 교복을 사주지 않았다.

엄마는 올해 졸업하는 아빠 친구 딸 교복 물려 입었다가 내년에 내가 졸업하 언니 것을 입으라고 하셨나 보다.

지금이야 집안 형편 때문이겠거니 하고 넘어갈 수 있는 상황이지만 그 당시 어린 마음에는 왜 언니는 사주고 자기는 물려 입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했다.


미안하게도, 나는 두 사건 다 기억나지 않는다.

어쨌든 우리 집은 아들 편애는커녕 장녀 특혜를 누린 건 인정하는 바이다.

(그나저나 쓰다 보니 참으로 이기적인 첫째 딸일세.)  



첫째의 투정은 밥상머리에서도 소환됐다.

매번 고등어를 먹을 때면 엄마는 가시를 발라 내 밥그릇 위에 가장 맛있는 꼬리 부분을 올려주곤 했다.

지난주, 랜만에 엄마와 여동생과 셋이서

집밥을 먹은 날이 있었다.

그때 마침 엄마가 고등어를 구웠는데 꼬리가 동생의 밥그릇에 올라가는 장면을 보고 나는 버럭 화 냈다.

“엄마, 꼬리 내 건데! 삼십 년을 내가 먹었는데 그거 왜 나 안 줘?”  

“넌 여기 뱃살로 먹으면 되지. 동생도 좀 먹자.”

“나 밥 안 먹어.”

이게 서른 살 훌쩍 넘은 딸과 엄마의 대화였다.

동생은 이런 나와 달리 시큰둥했다.

“엄마 그거 언니 줘. 난 아무거나 먹어도 상관없어.”

꼬리든 뱃살이든 아무거나 먹으면 그만인 것을.

첫째와 셋째 사이에 낀 설움.

아마 나는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평생 모를 것이다.     



성인이 된 후 여동생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커보니까 내가 둘째인 게 좋아. 언니가 언니니까 다 하잖아.”

“나도 내가 첫째인 게 좋아.”

좋다. 해결이다.

나도 첫째가 좋고 너도 둘째가 좋으니

엄마, 이 순서로 잘 낳았!


엄마는 가끔 우리에게 속내를 내비치셨다.

둘째가 아무 탈 없이 잘 커줘서 고맙다고.

말도 잘 들고 키우기 편한 딸이었단다.

“그럼 나는?”

“어휴. 너는...”

엄마는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으셨다.

그 이유를 왠지 알 것 같아 나도 더 이상 떼쓰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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