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레스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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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레스덴 쿤스트 아카데미(Hochschule für Bildende Künste Dresden)에서 열리는 전시를 위해 드레스덴(Dresden)으로 향하는 기차를 탔다. 바이에른주의 뮌헨(München)에서 작센주의 드레스덴으로 가는 기차는 고속열차(ICE)와 일반열차(RE)로 나뉜다. 고속열차를 타면 풀다(Fulda)와 에르푸르트(Erfurt)를 거쳐 곡선을 크게 돌아가는 루트를 지나야 한다. 반면, 일반열차는 직선에 가까운 루트를 따라가며, 소요 시간은 거의 비슷하다. RE를 타고 녹음이 우거진 풍경을 바라보며 호프(Hof)를 지나 드레스덴에 도착했다.
드레스덴은 웅장하고 고전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도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많은 건물이 파괴되었지만, 전후에 재건되었다. 이곳은 커트 보네거트(Kurt Vonnegut)*의 소설 제5 도살장(Slaughterhouse-Five)**과 플로리안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Florian Henckel von Donnersmarck)*** 감독의 영화 작가 미상(Werk ohne Autor, 2018)****의 배경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남주 작가가 다니는 드레스덴 예술학교(HfBK Dresden)는 19세기 말 작센의 왕 알버트 폰 콘스탄틴 립시우스(Albert von Constantin Lipsius)에 의해 설립되었다. 이 학교는 게르하르트 리히터(Gerhard Richter)*****, 에버하르트 하페코스트(Eberhard Havekost)******, 토마스 샤이비츠(Thomas Scheibitz)******* 등 걸출한 작가들을 배출했으며, 여전히 고전적인 공간에서 젊은 작가들을 양성하고 있다. 교내 공간은 학생들의 작업실뿐 아니라 전시 공간으로도 활용되며, 그중 하나에서 전시가 열렸다.
이 전시는 3인전으로, 드레스덴과 라이프치히 등 작센의 주요 도시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뮌헨 출신 니마 에마미(Nima Emami), 라이프치히에서 온 가명을 사용하는 그의 동료 작가, 그리고 부산 출신의 남주 작가가 참여했다.
나도 독일 대학에서 공부했지만, 독일 대학들은 학교마다 시스템과 정서가 매우 다르다. 또한, 주축이 되는 전공에 따라 분위기가 천차만별이다. 드레스덴의 분위기가 궁금해졌다. 나는 디자인, 미디어아트, 그리고 미디어이론을 다루는 학과에서 비교적 정형화된 커리큘럼을 따라 공부했지만, 순수예술의 경우 작가로서 필요한 이론, 콜로퀴움, 기술 워크숍 등으로 구성되며, 커리큘럼을 따르기보다는 전시에 참여하거나 기획하며 작가로서의 커리어를 만들어가는 것이 주축이라고 들었다. 이 때문에 드레스덴에서 작가로서 시간을 보내는 남주 작가의 이야기가 더욱 궁금했다.
내가 도착한 날은 전시 마지막 날 피니사제(Finissage)******** 하루 전이었다. 그래서 작가들이 행사를 준비하는 과정을 도우며 그간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들은 방문하는 모두가 파티처럼 먹고 마시며 즐기길 바랐다. 니마 작가는 니콜라이 반에서 빌려온 카페트를 깔아 모두가 둘러앉을 수 있는 낮은 식탁을 만들고 함께 음식을 준비했다.
행사 준비를 도왔기 때문에 그날 밝은 방에서 남주 작가의 작업을 가장 먼저 감상할 수 있었다. 세 가지 색으로만 그려진 정물과 다이빙하는 인물이 있는 풍경을 바라보았다. 각기 다른 시간들, 뛰어내리는 동적인 모습과 뛰어내린 후 물결의 표면이 부서지는 순간, 그리고 잘려나간 정적인 자연의 그림자가 교차한 그림이 참 좋았다.
공간적으로 다른 작가들의 작업과 함께 둘러보았을 때, 니마 작가와 남주 작가가 가진 색감과 질감의 대비, 그리고 두 작가가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회화성과 라이프치히 작가의 그래픽적인 이미지의 대비가 흥미로웠다. 서로 다른 작업들을 한자리에 배치함으로써, 그 차이에서 만들어지는 이야기를 다루어내는 것도 이 전시의 묘미였다.
해가 진 뒤에는 디제잉이 시작되었다. 그림을 감상하거나 이야기를 나누며 먹고 마시던 사람들은 모두 함께 춤을 추기 시작했다. 남주 작가는 여러 동료 작가를 나에게 소개해 주었고, 그들에게 우리가 뮌헨의 오프 스페이스 갤러리에서 듀오 전시를 기획 중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 인사를 나누고, 그들에 대해 듣고 나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날은 남주 작가의 집에서 묵고, 다음 날 뮌헨으로 내려가기로 했다. 전시가 끝난 늦은 밤, 드레스덴의 노란색 트램을 타고 엘베 강 반대편 노이슈타트(Neustadt)로 향하면서, 좋은 전시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또한, 우리의 전시는 어떤 형식과 이야기로 채워질지 상상했다.
사진 = 김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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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트 보네것 (Kurt Vonnegut) - 풍자적이고 어두운 유머로 유명한 미국 작가로, 제5 도살장, 고양이의 요람 그리고 챔피언들의 아침 등의 대표작을 발표했다.
** 제5 도살장 (Slaughterhouse-Five) - 제2차 세계대전 중 드레스덴 폭격을 배경으로 한 과학 소설과 반전(反戰) 테마를 결합한 작품.
***플로리안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 (Florian Henckel von Donnersmarck) -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영화 타인의 삶 (Das Leben der Anderen)과 작가 미상 (Werk ohne Autor)으로 잘 알려진 독일 영화감독.
****작가 미상 (Werk ohne Autor / Never Look Away) - 독일 예술가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삶과 작업에서 영감을 받은 2018년에 발표된 영화로, 예술과 개인적 트라우마의 교차점을 탐구한다.
*****게르하르트 리히터 (Gerhard Richter): 현대 미술의 거장으로, 추상화와 사실주의를 넘나드는 폭넓은 작업으로 유명하다. 사진과 회화를 결합한 독창적인 스타일을 선보였으며, 대표작으로 흐릿한 사진을 재해석한 Betty, 역사적 비극을 다룬 October 18, 1977, 그리고 추상적 색채 조합의 대규모 캔버스 작품들이 있다. 그의 작업은 "가장 정확한 표현을 위한 지속적인 탐구"로 묘사되며 현대 미술계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에버하르트 하페코스트 (Eberhard Havekost): 독일 드레스덴 출신 화가로, 디지털 이미지와 사진에서 영감을 받아 사실적이면서도 고도로 구성된 회화를 창조했다. 그의 작품은 일상적 사물과 풍경을 디지털 이미지처럼 왜곡하거나 단순화시키며, 이미지 소비 방식과 시각적 경험의 본질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토마스 샤이비츠 (Thomas Scheibitz): 드레스덴 출신의 독일 현대미술가로, 기하학적 추상과 일상적인 이미지를 혼합한 회화와 조각 작업으로 유명하다. 현대 시각 문화, 대중매체, 건축 등에서 영감을 받은 형태와 색채를 통해 정체성과 지각의 경계를 탐구하며, 평면적 이미지를 입체적 차원으로 재구성하는 독창적 조각으로도 주목받는다.
********피니사제 (Finissage) - 전시회의 마지막 날이나 폐막을 기념하는 행사로, 종종 특별 프로그램이나 모임으로 구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