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를 하려면 전시 공간에 대한 공부를 해야 합니다. / 이남주
3.
공간을 운영하는 말렌에게 이메일로 포트폴리오를 보내고 전시를 해도 좋다는 답장을 받은 뒤 일정과 금액에 대한 조율을 마쳤다. 그녀는 노디프레션룸 아틀리에와 갤러리 운영가운데 갤러리를 담당하고 있었는데 김나지움*에서 미술선생님으로도 일을 했기 때문에 바이에른 지역의 다른 도시와 뮌헨을 왔다 갔다 해야 하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그녀도 나름대로 작업과 생업사이의 줄다리기를 하는 것 같아 보였다. 공간이 어떤 식으로 운영되는지 궁금해서 전시 확정메일을 받은 후 갤러리에서 진행되는 전시의 오프닝에 갔다.
근사한 사진전이었다. 프라하에 위치한 히든갤러리 (Hidden Gallery)가 독일과 체코의 문화기관에서 두 국가 간의 문화교류에 관한 지원을 받아서 마련한 전시였다. 젊은 갤러리스트 필립은 동료와 그래픽디자이너와 함께 맥주를 마시면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전시 설치는 나무 구조물을 세우고 구조물 사이사이에 독일과 체코의 사진작가들의 작품들을 배치한 형태였다. 시간을 들여서 기획하고 짧은 시간이지만 효율적이게 설치해 냈다는 것이 느껴졌다.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건네받은 맥주 한 병을 마시면서 전시를 관람하고 설명을 들었다. 전시공간은 작지도 크지도 않은 적당한 크기였다. 히든 갤러리의 전시의 결과 질에 대한 인상과는 별개로 깜짝 놀랐던 부분은 노디프레션룸 측에서 온 손님이 아무도 없었다는 것이다. 이를 몰랐던 히든갤러리는 꽤나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덕분에 아틀리에와 갤러리가 완전히 별개로 운영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특히 뮌헨에 아는 사람이 없는 경우에는 이 공간에서 전시를 기획하고 사진이나 글의 형태로 기록하는 것 이외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겠지만 내게 있어 전시란 미술계 안의 그리고 밖의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새롭고 다양한 생각과 실험을 미술의 형식으로 짜임새 있게 구성하여 내보이는 자리이다. 물론 작품과 작가에 대한 소개 또한 병행되며 작품의 판매를 통해 앞으로의 작업을 해 나갈 수 있는 동력이 되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전시란 작업실에 있던 작업들을 가지고 나와서 아무 맥락 없이 다 때려 넣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이전에 어떤 역사가 있었고 현재를 살고 있는 지금의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하며 기획자 혹은 작업자 개개인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가 고려되어야 한다. 또한 전시라는 큰 틀은 다층적인 의미들 그리고 그것들의 맥락이 연결되어야 한다. 무의미에 대한 이야기 혹은 아무 맥락 없이 던져진 것들의 연속인 전시라면 의미 없음과 맥락 없음에 대한 설득력 있는 이유가 당연히 필요할 것이다. 동시에 전시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자리여야 한다. 미술과 문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동료작가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미술계의 다양한 사람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또한 이런 작가와 작업이 존재한다는 것을 세상에 알릴 수 있는 시간이며 앞으로의 전시 기회 혹은 협업에 대한 이야기 또한 나누어 볼 수 있는 플랫폼이다. 그렇게 때문에 전시가 이루어지는 공간이 가진 특성을 알고 작업자로서의 우리는 어떠한 태도로 그곳을 마주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충분히 이루어져야 했다.
4.
첫 전시는 듀오 전시 (Duo-Exhibition)로 하고 싶었다. 미술작가로서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내 작업세계를 조망하는 전시는 아직 설익은 형태로 나올 것이 뻔했고 다른 사람들은 어떤 방식으로 작업을 하는지 궁금했다. 협업을 통한 어려움과 시너지 또한 느껴보고 싶었다. 머릿속에 떠오른 사람은 드레스덴 예술학교에서 크리스티안 마케탄츠 (Christian Macketanz) 교수 아래 수학 중이던 이남주 작가다. 나와는 고등학교 동창이기도 하고 판데믹동안 독일에서 다시 연이 닿아 종종 같이 시간을 보냈다. 크리스마스 연휴를 함께 보내거나 라이프치히 근처의 호숫가에 수영을 가거나 캠니츠와 근교의 숲길을 같이 산책하기도 했다. 물론 작업얘기 그리고 작가로 사는 것에 대한 이야기들은 빼놓을 수 없다. 문득 그가 바라보는 평면 안의 세계가 어떤 방향으로 발전했는지 궁금했다. 이남주 작가는 작업이든 생업을 위한 일이든 간에 무언가 몰두할 만한 것이 있으면 연락이 잘 닿지 않았는데 그날따라 전화를 받았다.
남주: 여보세요.
지수: 안녕, 남주! 잘 지내고 있지?
남주: 응, 난 잘 지내지. 너는?
지수: (너털웃음) 나도 잘 지내고 있지. 얼마 전에 퇴사하고 그림 그리면서 지낸다. 요즘 많이 바빠? 요즘 전시일정은 어때?
남주: 바쁘지. 곧 전시가 있어서 매일 작업실 가서 작업하고 있어. 왜?
지수: 뮌헨의 한 오프 스페이스 갤러리에서 내년 3월 즈음에 전시를 할 생각인데 혹시 관심 있으면 같이 할래?
남주: 나야 너무 좋지.
남주의 승낙에 뛸 듯이 기뻤다. 남주에게는 내가 아는 한 공간에 대한 설명을 해주고 또 앞으로 어떤 정보가 필요한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또한 남주의 최근 작업을 보고 싶었다. 사진이 아니라 실물을 마주했을 때의 경험이 무엇보다도 궁금했기 때문에 곧 드레스덴에서 열릴 전시에 방문하기로 했다. 통화를 끊고 남편에게 달려가 함박웃음을 띄며 얘기했다.
"다니엘, 남주랑 나랑 같이 전시하기로 했어!"
사진 = Hiddengallery Instagram, Gallerie Kellerma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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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지움: 독일의 전통적 중등 교육 기관. 수업 연한은 9년으로, 16세기 초에는 고전적 교양을 목적으로 한 학교였으나 19세기 초에 대학 준비 교육 기관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