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있어 줌으로써 줄 수 있는 행복은 그 어떤 행복 보다도 큰 거야.
"너희들이 그저 있어 줌으로써 줄 수 있는 행복은 그 어떤 행복 보다도 큰 거야."
안타깝게도, 코로나 상황이 생각보다 오래 지속되는 가운데, 거리두기와 마스크가 일상화가 되어버린 요즈음,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아이들과 대화하는 시간도 많아지게 되었다. 크리스마스이브였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다들 둘러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아이들이 전혀 생각지도 못하게 아내와 나를 위한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비했다 하면서 주는 것이었다. 아이들 생각에는 아내와 내가 잠든 후 새벽에 가져다 놓으려 했던 모양이었다. 아직도 굴뚝을 타고 들어오는 산타할아버지가 있다고 믿는 아빠를 위해서. 그러다 일견 엄마, 아빠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싶기도 했던 모양이었는지, 아이들은 크리스마스이브 저녁에 선물을 건네주었다. 물론 기뻤다. 아이들에게 고마웠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모여서 앉아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아이들은 엄마, 아빠에게 미안한 감을 느낀다는 뉘앙스의 말을 비치기도 하였다. 나는 아이들에게 "너희들은 이미 엄마나 아빠가 평생을 살면서 가장 행복한 나날들을 선물해 주었어."라는 말을 해 주었다. "너희들이 그저 있어 줌으로써 줄 수 있는 행복은 그 어떤 행복 보다도 큰 거야."
아이들은 이 말의 의미가 어떤 것인지 모른다. 아이들도 그렇게 이야기했다. "도대체 이렇게 속 썪이는(?) 우리들이 엄마, 아빠를 어떻게 행복하게 한다는 것인지 우리는 몰라요." 모르는 게 당연하다. 아직 자식을 가져 보질 못했으니 말이다. 나 역시 그랬다. 해마다 크리스마스이브가 되면 어머니는 문을 조금 열어놓으셨다. 산타 할아버지가 다녀가셔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마도 내가 잠든 후에는 문을 닫으셨을 것이다. 그리곤 아침에 일어나 보면 당시에 제법 가격이 나갔던(?) 젤리나 과자 세트 등이 머리맡에 놓여있었다. 이후 나는 아주 오랫동안, 지금도 굴뚝을 타고 들어오시는 산타할아버지의 존재를 믿는다.
왜 사람들은 겪어보지 않으면 모르게 되어 있을까? 내가 자식들을 낳아서 길러보니 당시 우리 부모님의 마음을 알 수 있다. 아이들도 같은 이야길 하는 것이다. 그런 경험이 없으니 아직은 자신들이 부모를 어떻게 행복하게 해 주었다는 것인지 모르는 것이다.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겪어보지 않고도 알 수 있다면 어떨까? 그렇게 되면 후회도 덜하게 될까?
도대체 겪어보지 않고 안다는 게 가능하기는 한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