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전히 종이가 좋다.

by 구자룡

나는 직장생활을 오랫동안 해왔다. 대부분을 마케팅 부서에서 해왔고, 해외근무도 오래 했다. 그러다 보니 컴퓨터라던가, 새로운 마케팅 환경 등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일을 할 수밖에 없었고, 나 역시 그런 변화를 받아들이고 적응해 왔다. '4차 산업혁명'이란 책이 서점가에 자리 잡았을 때도 누구보다 먼저 그 책을 집어 들어 읽었고, 인공지능에 대해서도 여기저기 찾아서 학습하는 의욕도 보였다. 새로운 세대, 나의 자식들, 에서의 SNS를 즐기는 모습을 보고, 이를 알고 싶어서 학원엘 다니기도 하였다. 페이스북, 인스타, 블로그, 유튜브 제작 및 편집 방법 등을 굳이 배웠고, 포토샵과 일러스트도 배웠다. 수박 겉핥기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사용하고, 활용하는 방법은 알고 있다는 의미이다.


일정관리, 책 읽기, 대화, 메모, 생각정리, 영화감상, 음악 듣기, 사진 찍기, 업무, 은행, 증권사, 관공서 일, 음식 주문 등 나의 일상에 대한 거의 모든 걸 내가 가진 스마트 폰 하나면 내가 앉은자리를 옮기지 않고 다 할 수 있다. 게다가 어떤 것은 소위 앱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경우도 많다. 내 이름으로 등록된 전화번호 하나만 가지면 거의 모든 일상을 커버한다. 주머니에 스마트폰 하나만 가지고 다니면 된다는 의미이다.


실제로 복귀 후에 일정기간 이런 시스템적 환경에 다소 혼란을 겪었었다. 우리나라와 멕시코는 너무나 다른 환경을 보이고 있었다. 인터넷 속도, 활용 등의 측면에서 너무나 달랐다. 복귀 후 어느 정도의 기간이 흐르고, 시스템적 환경에 익숙해진 후에 나는 나 스스로를 시험해 보았다. 종이 활용을 거의 없애 본 것이다. 불편함은 없었다. 모든 일상을 스마트폰 하나로 해결해 갈 수 있었다. 아이디어나 생각의 기록 역시 엄지손가락으로 해결할 수 있었고, 일정관리는 말할 것도 없었다. 알림 기능은 내가 생각할 필요조차 없게 하는 편리함도 주었다. 책이야 e-book을 읽는 것도 익숙해져 있었던 것이니 문제는 없었다. 스마트폰 하나만 가지고도 나의 일상은 문제없이 흘러갈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종이가 나에게 주는 즐거움이 너무나 컸다. 그걸 포기하려면 나는 내가 가진 삶의 즐거움 중 약간은 뒤로 밀어 놓아야 한다. 그걸 밀어 놓고 싶지가 않았다. 노트 하나를 눈 앞에 펼쳐 놓고, 그 순간에 필요로 하는 아주 탁월한 아이디어 하나를 얻기 위해서 제목만을 적어놓고, 제목에 집중하면서 머리에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그저 적어가면서 행복해하는 모습의 내가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나는 가방 하나를 들고 다닌다. 때론 백팩을 가지고 다니기도 한다. 코로나 전에는 주중 회사 출근 시에는 서류가방, 주말엔 카페로 백팩을 메고 다니곤 했다. 가방에는 일정관리용 캘린더, 아이디어 기록용 노트, 그 기간에 읽고 있는 책, 생각 정리 노트 등을 넣고 다닌다. 게다가 아이패드도 넣고 다닌다. 나는 습관상 아이디어가 많다. 그렇다고 쌈박하고 대박 나는 아이디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언제나 새로운 생각이 나면 적어둔다. 그러다 보니 나중에 그 노트를 읽어보면 아이디어가 중복되는 경우가 많다. 아마도 그 아이디어는 내내 내 머릿속에 있었다는 의미인 듯하다. 스마트폰이라면 한 번만 적어두고, 알림도 설정하고 하면 될 것을 굳이 또 손으로 적어둔다. 오랜 직장 생활 습성상 주변에 기록을 한 만한 수첩이나 노트가 없거나, 언제라도 사용할 수 있는 펜이 없으면 불안하다. 노트가 아닌 그냥 낱장의 백지에 적는 경우도 많다. 그럴 땐 나중에 사진을 찍어서 메모 앱에 사진을 제목과 같이 저장을 해두고, 알림을 설정해 둔다. 병행이라고 할까..


책도 그렇다. 멕시코에서 근무 시에는 한글로 된 책을 구입하기 어려운 상황이어서 e-book으로 읽기도 하였다. 그러다 보니 익숙해지기도 했는데, 복귀한 후에는 e-book은 거의 보는 경우가 없다. 역시나 손에 들고, 손으로 직접 종이를 넘겨가는 즐거움을 포기할 순 없었다. 뉴스도 실시간으로 나온다. 정리도 잘해주고, 사람들이 많이 보는 기사도 명확하게 보여주니, 세상의 흐름에 뒤처지지 않을 장치도 마련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또 신문을 찾아 읽는다. 우리나라에 와보니 모 일간지는 신문의 크기를 줄였던 모양이다. 그런 신문에는 손이 덜 간다. 예전의 신문 넘기는 손 맛과 소리가 잊히지 않는 모양이다.


실은 우리 세대는 이 둘을 병행해서 지혜롭게 선별해서 살아갈 수 밖에는 없다. 어느 한쪽으로만 치우치기엔 앞으로의 삶이 힘들어질 수 있다. 만에 하나 종이만을 고집해야 한다고 한다면, 나는 조심스럽게 그러지 말라고 말리고 싶다. 아마도 우리 세대는 둘다를 해 갈 수 밖에는 없는 세대일 것이다. 이를 인정하고 모르면 배워서라도 활용해 가야 한다. 그렇다고 종이를 버리라는 말이 아니다. 나는 종이를 버릴 생각 자체가 없다. 종이를 버린다는 건 내 삶의 즐거움 반 이상을 포기하라는 것과 같다. 역시나 삶의 행복은 조화로움에서 오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