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자룡 Apr 22. 2024

나는 당근(Carrot)이 싫어요.

나는 당근을 거의 안먹는다. 거의라는 표현을 쓴 것은 어쩌다 입안으로 당근이 들어가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어려서는 당근을 먹었었다. 언젠가 미국에 출장을 가서는 작은 당근을 봉지째 놓고 맥주를 마시면서 먹었던 기억도 있다. 그러다 언제부터인지 당근을 못(?) 먹는다. 못 먹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나는 오늘도 김밥에서 당근 조각을 꺼내 낸다.


실은 나는 김밥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김밥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두가지이다. 만약 지금 시대의 김밥이라하면 나는 김밥을 좋아했을 수도 있다. 아내가 아이들에게 해주는 김밥을 먹을 때 그 김밥의 맛은 정말 좋다. 그럼에도 나는 김밥을 거의 먹지 않는다. 하나는 내가 어려서는 김밥을 즉석에서 싸주지 않고, 이미 만들어 놓은 김밥을 파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밥이 말라서 까칠해 지는데 그 느낌이 싫었다. 다른 하나는 당근이다. 어느 순간 부터 이상하게 당근을 입에서 받질 않는다. 김밥에 당근이 들어가는 경우가 많은데 집에서는 당연하게 아내가 당근을 빼서 주니 별문제가 안되지만, 밖에서 김밥집에서 '당근 빼주세요.' 하기도 그렇고, 다 큰 어른이 깨작깨작 당근 빼는 것도 보기 좋은 꼴은 아니다.


나는 잡채는 싫어하지 않는다. 좋아한다는 표현이 맞을 수도 있다. 단, 집에서만 먹는다. 집에서는 잡채를 하면 당근은 아내가 골라 준다. 그렇다고 아내가 당근을 빼주기 싫은 걸 빼주는 건 아니다. 당근 빼면서 우리는 한바탕 웃음 꽃이 핀다. 아내의 놀림(?)에다 아이들의 거듬이 웃음으로 이어진다. 글을 쓰다보니 아이들의 웃음 소리가 듣고 싶어 진다. 세 아이는 한국에, 한 아이는 미국에, 아내와 나는 멕시코에 있다.


사실 당근하고 친하지 않으면 불편한 점이 한둘이 아니다. 우리 나라의 음식을 보면 당근이 들어가는 음식이 정말 많다. 오이를 못 드시는 분들이 있다고도 하는데, 가만히 보면 오이보다 당근이 들어가는 음식이 훨씬 많다. 경쟁하자는 건 아니다.


아내는 당근을 좋아한다. 매일 아침 날 당근을 일정량 먹는다. 당근이 좋다는 건 나도 안다. 그럼에도 나는 당근이 받아들여 지질 않는다.


멕시코에서 식당엘 가면 반드시 알레르기가 있는지, 가리는 음식이 있는지 묻는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멕시코에서 식당에 가서 당근을 넣은 음식은 많이 없는 것 같다.


아마 주변을 보면 이런 저런 음식을 싫어한다기 보다는 아예 못 먹는 사람도 있고, 나와 같이 일정 음식의 재료가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 한 마디로 인정하자는 말이다. 인정하고 이해 하자는 말이다. 문화에 대한 이해, 개인의 취향에 대한 이해, 상황에 대한 이해가 바탕이 되는 삶이 되었으면 좋겠다.


때로는 '까칠하다.'라는 시선을 보내는 경우를 종종 본다. 하지만 이는 '까칠함'이 아니다. 아니, 입에서 받질 않는데 어쩌란 말인가?

매거진의 이전글 할머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