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즘 일러스트를 배우고 있다.
50대가 되어 보니 배움의 의미는 새롭게 다가왔다.
나의 나이에서 뭔가를 새롭게 배워 간다는 건 재미있다. 나는 누군가에게 뭔가를 배운다는 게 익숙하지 않다. 학교를 다니면서 선생님께 배우는 걸 제외하고 다른 사람에게 무엇인가를 배운다는 게 낯설다. 나이가 들어서도 그랬다. 언제나 내가 뭔가를 잘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면 그건 내가 장기간 동안의 독학을 통해서 잘하게 되어 일정 수준까지 왔다는 걸 의미했다. 단체로 강습을 듣는다던가 하는 데는 낯섦이 덜했지만, 작은 소그룹이나 개인 교습과 같은 건 너무나 어색했다. 그러다 보니 잘하는 게 별로 없다. 독학을 하게 되면 무엇보다도 시간 소모가 많다. 요즘엔 유튜브가 있어서 내가 배우고자 하는 걸 검색해서 꾸준하게 해 간다면, 내가 독학으로 해서 일정 수준까지 올라온 기간을 상당히 단축할 수 있을 걸로 보인다.
50대가 되어 보니 배움의 의미는 새롭게 다가왔다.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직무교육과 같은 업무 관련 배움을 제외하고 보면, 누군가에게 뭔가를 배워본 적이 잘 없다. 이번에 나는 일러스트라는 과정을 등록해서 밤 시간에 배우고 있다. 최근의 상황으로 휴강이 지속되고 해서, 기간이 늘어지고는 있지만 몇 번 강좌가 진행되었다. 이 과정을 등록한 이유는 내가 뭔가를 해보고 싶어서이다. 이는 언젠가 기회가 되면 이야기될 수 있겠지만, 오늘은 본 과정을 수강하면서의 느낌만을 적어가려 한다. 어떻게 보면 정말 오랜만에 누군가에게 뭔가를 배우고 있다. 멕시코로 발령을 받아가서는 어떤 과정이나 새로운 걸 배운 적은 없었다. 굳이 따지자면 스페인어를 현지인에게 한 달 정도 들었었는데, 그것도 일주일에 한 번으로 해서 배웠으나, 출장 등의 일정으로 지속할 수가 없었고, 그나마 일주일에 한 번이었음에도, 배우는 날이 되면 하루 종일 신경이 쓰였다. 스페인어 선생님 앞에서 더듬대는 것도 나에겐 커다란 스트레스의 요인이었다.
학원 안에서도 내가 들으려는 과정 수강생들 중에서도 내가 제일 나이가 많았다.
이번에 나름 용기를 내서 일러스트 과정을 등록하고, 첫 번째 출석일이 되어 출석을 하게 되었다. 학원이 강남역 근처여서 퇴근 후에 강남역으로 이동해서 저녁을 먹어야 했다. 멕시코에서 강산도 변할 만큼의 기간 동안 있어서 인지, 최근의 강남역 주변이 나에겐 새로운 동네라는 느낌이 들었다. 첫날 나는 이상하게도 긴장이 되었다. 실은 긴장할 이유는 전혀 없었는데 그저 긴장이 되었다. 강남역에서 내려서 출구를 찾아 나오니 커다란 건물들이 양 길 옆으로 뻗어 있었다. 건물 자체로만 보면 나의 직장이 있는 테헤란로 역시 양옆으로 고층의 빌딩들이 늘어서 있으니 다를 건 없다. 다만 내가 어색했던 건 젊은 사람들만 보인다는 것이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 생활에 들어서면서 이렇게 거의 한세대의 사람들만 거리에 보이는 상황은 나에겐 익숙하지 않다. 직장에서도 집에서도 세대는 섞여 있었고, 멕시코는 가족이나 사람 간의 유대를 너무나 중요시 여기는 문화라서 한 세대만 있는 장소에 있기는 쉽지 않은 곳이다. 그런데 강남역을 내려서 저녁식사를 할 식당을 찾아가면서 보니 거의 한 세대의 사람들만 보였다. 이게 내가 이번에 새로운 걸 배우는 데 있어서 느꼈던 처음의 낯설음이었다. 젊은 사람들의 언어로만 이야기되는 말들이 들려왔다. 주변을 보니 내가 나이가 제일 많아 보였다. 식당을 찾아 들어갔는데, 식당을 운영하시는 분을 제외하곤 역시나 내가 나이가 많다. 학원에 들어가서도 마찬가지였다. 학원 안에서도 내가 들으려는 과정 수강생들 중에서도 내가 제일 나이가 많았다. 그 속에 있으니 내가 젊어지는 것도 아닌데, 힘이 솓는다. 젊음이란 보기만 해도 좋은 것인가 보다. 집에 와서 우리 큰애에게 오늘 내가 느꼈던 걸 이야기해 주었다. 재미있다.
이상하게도 나는 들려오는 젊은 사람들의 말에서 급함이 보였다. 내용이야 모르겠으나, 말의 톤이나 분위기에서 급함이 보였다. 나의 느낌이었을 것이나, 나에겐 그렇게 들렸다. 냉정하게 그건 내 알바가 아니었을지라도, 이 낯섦을 극복해야 했다. 그래야 내가 배우려 했던 과정을 부드럽게 배워 나갈 수 있다. 출석 확인을 마치고 드디어 첫 강의가 시작되었다. 컴퓨터야 직장생활을 하면서 언제나 곁에 있었던 것이니 켜고 작동하는데 문제는 없다. 강의가 시작되고 일러스트 과정을 들으면서 나에겐 너무나 빠르게 진행되었다. 그동안 내가 그렇게 동작이 굼뜨거나 하지는 않아서 나는 아무리 못해도 평균은 간다라고 생각을 하고 살아왔었으니, 이게 나에게만 빠른 건 아니다고 자신하고 주변을 보니, 주변의 청년(?)들은 강사분의 말하는 바를 충실하게 따라가고 있었다. 나는 반도 못 따라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건가? 이런 차이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많은 복습이 필요해 보였다. 어떤 건 아예 못 따라갔고, 설사 따라갔다 해도 강의를 마치고, 지하철에 몸을 실음과 동시에 잊혀졌다. 시간을 만들어야 한다. 나는 그저 강의 시간에만 충실하면 된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게 아니었다. 나는 복습이 필요하다.
배움에는 때가 있다. 정말로 맞는 말이다. 절실하게 느낀다.
배움에는 때가 있다. 정말로 맞는 말이다. 절실하게 느낀다. 지금 나는 뭔가를 누군가에게 가르쳐야 할 나이다. 내가 전문으로 알고 있는 분야라면 충분히 가르칠 수도 있다. 하지만 난 지금 배움에 빠져 있다. 때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주저앉지는 않는다. 그건 내가 너무나 잘 안다. 그렇다고 그냥 주저앉을 사람은 아니다. 학교에서도 직장에서도 지각이나 결석은 나에겐 아니다. 나는 이 과정을 모두 출석하게 된다는 걸 나 스스로가 너무나 잘 안다. 이 과정을 마치면 포토샵 과정을 듣게 된다. 나는 아직도 낯설다. 이 낯섦은 조만간 없어지게 되겠지. 그렇더라도 누군가에게 뭔가를 배우는 건 힘이 든다. 끝나게 되면 나는 나를 무지 칭찬해 주려 한다.
내 세대 정도가 되면 경제적으로도 그렇고, 특히나 심적으로도 그렇고 안정되는 시기다. 누구와도 충분히 인생을 논할 수도 있고, 일정 분야에서는 전문가고, 전문가로서 인정을 받는다. 물론 상황이나 살아온 과정에 따라 많이 달라질 수 있다. 나의 상황만을 놓고 본다면, 뭔가를 새롭게 배울 필요가 있을까?라는 물음이 들어온다고 하면 쉽게 그렇다고 답하지 못한다. 만약 20-30대, 지금으로 보면 40대도, 뭔가를 새롭게 배우고 그걸 활용한다고 하면 인생의 큰 변곡점이 될 수도 있고, 변곡점은 안되더라도, 인생에 어느 정도의 변화를 가져 올 수도 있다. 이게 50대 이후라면 새롭게 배운다고 해서 얼마나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겠는가? 나 역시 마찬가지다. 인생에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서 새로운 뭔가를 배우진 않는다. 설사 원한다 해도 변화가 크지 않을 거란 건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배우고 있다. 배우고 싶어서 배운다. 그리고 이 배움으로 난 조그마한, 아주 조그마한 이룸도 맛보게 됨을 안다. 그래서 배운다.
배움은 나의 심적 나이를 청춘으로 만든다. 나는 지금 그렇다. 청춘이다. 퇴근 후 일주일에 2~3회 3시간 정도 밤늦게까지 강의를 듣고, 그것도 잘 못 따라가는 과정을 들으면서도 나는 피곤하지 않다. 강의가 기다려진다. 3시간이라는 시간이 금방 간다. 나는 지금 배움에 취해 있다. 지금 강의 시간 중에 반도 못 따라가는 형편이지만, 과정이 끝나고 일정기간이 지난 다음에 보면 나도 상당한 수준이 되어있을 것이다. 그런 각오로 임한다. 그 각오 조차도 용기다. 그러다 보니 배움도 용기다. 나는 이 용기를, 이 배움을 당분간은 지속해 보려 한다. 이 배움을 본격적으로 써먹을 즈음에 또 다른 글로 써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