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의 육아

새벽의 상념

by 마흔아빠

요즘 새벽 수유 중 힘들 때면 두 가지 노래가 머릿속에 계속 맴돈다.

하나는 뮤지컬 Wicked의 OST “Dancing Through Life”,

또 하나는 소진영 인도의 “예수 늘 함께 하시네”다.


혹시 두 곡을 들어보지 않았다면 꼭 한 번 들어보기를 추천한다.

Dancing Through Life는 뮤지컬 특유의 오버액션스러운 창법과 구성이 새벽엔 다소 버겁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니 그나마 정신이 남아있고, 그나마 활기가 남아있는 낮 시간, 아기가 옹알옹알 놀고 있을 때 들어보면 좋겠다.

예수 늘 함께 하시네는 새벽에도 조용히 틀어놓기 참 좋은 곡이다.

화이트 노이즈처럼 잔잔하게 배경음악으로 틀어놓아도 자고 있는 가족의 잠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그 조용한 새벽의 순간을 온전히 지켜주는 노래다.


Dancing Through Life의 가사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Dancing through life, mindless and careless,

Make sure you’re where less trouble is rife...”

“생각 없이, 걱정 없이 춤추듯 살아가라.

문제와 번거로움이 덜한 곳에 머물도록 하라.”


그리고 예수 늘 함께 하시네의 후렴은 이렇게 반복된다.


“...믿음의 눈 들어 주를 보리, 이 또한 지나가리라...”


이 두 노래의 후렴구가, 새벽에 트림을 하지 않는 아기를 붙들고 졸며 토닥이는 내 머릿속에 끊임없이 맴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대충 감이 오지 않나?


“생각을 비우고, 머리를 비우고, 버티다 보면 —

이 시간은 반드시 지나간다.

어떻게 아냐고? 첫째 때가 그랬다.


첫째 밤톨이는 둘째 라라보다 훨씬 더 ‘매운맛’이었다.

나를 닮아서 장이 약했고, 유당불내증이 심했다.

모유만 먹어도 설사를 하고, 배앓이를 하고, 다 토하고, 다 개워내고, 배가 아프다고 울고, 배고프다고 울고, 졸리다고 울고...

끝도 없이 우는 밤낮의 연속이었다.


돌이 다 될 때까지 통잠이란 없었다(밤톨이는 생후 10개월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10시간을 잤다).

수유 간격은 길어야 한 시간 반.

우리의 미숙함도 있었겠지만, 매일 밤 울어대는 아이를 붙잡고 우리는 함께 울었다.

왜 우는지 모르겠다고, 어떻게 도와줘야 할지 모르겠다고, 그만 좀 울으라고, 나 좀 살려달라고..

그렇게 말도 못 하는 아기를 부둥켜안고 우리 둘은 매일 밤 울었다.


그랬던 아기가 이제는 씩씩하게 “할머니 할부지 집에서 자고 올래!” 하며 할머니를 따라 나가고,

어린이집에서 있었던 일을 재잘재잘 이야기 하기도 하고,

초코 케이크를 어른보다 더 크게 베어 물고는 신난다고 뛰어다닌다.

어느새 훌쩍 커버린 밤톨이를 바라보며 라라를 키우다 보면,

밤톨이의 신생아 시절과 함께 참 많은 상념이 떠오른다.


신생아는 그냥 그런 존재다.

아기가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건 ‘울음’ 하나뿐이다.


모든 게 새롭고 낯설고 두렵고 불안하다.

숨 쉬는 것도, 삼키는 것도, 소화하는 것도, 응가하는 것도 모두 처음이다.

바닥에 눕는 것도, 옷을 입는 것도, 세상의 모든 것이 처음이다.

그러니 아이가 울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 아기에게

"엄마, 아빠 제가 지금 많이 불안하고 배가 아프니. 제 배를 쓰다듬어 주시면 조금은 더 편해질 것 같습니다."

같이 성숙하게 얘기하는 걸 기대하는건 불가능하지 않나.

사실, 어른이라도 낯선 환경에서 불편한 시간이 이어진다면

그렇게 성숙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그러니 아이는 그냥 운다.


아기는 울기 위해 존재한다.

그것이 존재의 의미이자 목적이다.

우리가 뭘 잘못해서, 우리가 뭘 못 해줘서, 우리가 더 잘해주지 못해서 우는 게 아니다.

아기는 그저 태어났기에, 커가느라, 살아가느라 울고 있을 뿐이다.


부모가 된 우리는, 아마 그 울음보다 더 큰 압박감 속에 사는지도 모른다.

“내가 더 잘해줘야 해.”

"난 부모니까 뭐든지 더 잘해야 해"

“이 아이는 내가 제일 잘 알아야 해.”

“이 아기는 내가 제일 잘 돌봐야 해.”

하지만 사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을지도 모른다.


그저 울고 있는 아이를 안아주고,

“괜찮아, 엄마 아빠 여기 있어.”

"괜찮아, 엄마 아빠가 도와줄께"

"괜찮아, 지금 잘 크고 있어"

그렇게 말해주고 응원해 주는 것.

그게 부모가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 세상의 모든 엄마 아빠들,

그리고 신생아를 키우고 있는 모든 부모님들,

우리 조금은 생각을 비우고, 마음을 내려놓자.


우리는 이미 최선을 다하고 있고,

아이는 그만큼 열심히 크고 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말자.


이 시간 또한, 무조건, 반드시, 결단코, 기필코 — 지나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