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의 육아

내일의 태양 편

by 마흔아빠

1939년작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스칼렛(비비안 리)은 이렇게 되뇌인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꺼야"
5.png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1939년)] 의 마지막 장면

좌절과 절망의 끝자락에서 다시금 살아내고자 하는 삶에 대한 열정과 희망이 눌러담긴 한줄이다.


그래. 처절한 육아를 해내고 있는 우리에게도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 뜨긴 뜬다.

문제는 우는 애를 안고 달래다보면 뜨고있는게 문제다.


나는 퇴근한지 얼마 안된거 같은데,

좀아까 수유하고 눕혔던거 같은데,

아직 내 어께에 라라가 게워낸 자국이 마르지도 않았는데,

해는 뜨고 있다.


분명 예쁘게 감아놓았던 속싸개와 곱게 올려둔 손수건이 당췌 어떻게 된건지도 모르게 한 덩어리가 된채

애는 온 팔다리가 다 삐져나와 버둥버둥거리며 빽빽 거리는걸 안고서

눕지도, 서지도, 앉지도 못한채 집안을 방황하다 어스름이 밝아지는 창밖을 보면 뭔지 모를 허탈함이 몰려온다.

나는 아직 하루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는 절망감은 덤이다.


조금 있으면 첫째가 깰 시간인데...지금 당장 애가 잠들고 나도 바로 같이 잠든다 하더라도 기껏 1~2시간 자는게 최선일텐데...

이래서 오늘 하루를 어떻게 버티고 이겨낼 수 있을지 막막하기만 하다.


원래 디카페인 커피 한잔만 마셔도 손이 떨리고 눈이 흔들려서 글씨를 못읽을 정도의 카페인 민감성 체질이었던 나였는데

어느샌가 카페에서 무조건 샷추가를 외치고,

커피를 받아 카페 문턱을 돌아 나서기도 전에 이미 다 마셔버리는데도 눈이 감기는걸 막을수가 없다.


죄수에게서 자백을 받기 위해 정신을 무너뜨리는 가장 확실하고 간단한 방법이 잠을 재우지 않는 거라던데,

나는 왜 사서 고문을 받고 있나 싶다.

산후 우울증으로 아이와 함께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사회면의 뉴스가 절절히 이해가 되는 시점이기도 하다.


밤톨이 때도 이 시간이 유독 힘들었었다.

감정이 없어지고, 모든것이 사무적으로 일을 해나가기 시작한다.

가정은 삶의 쉼터가 아닌, 또다른 업무의 현장이 되어버린다.


그렇게 껍데기만 남아 살아있는것 같지도 않게 하루 하루 이겨내다 보면,

딛고 서있는 바닥이 한없이 무너져 다시 올라갈수 없을것만 같은 그때,

'그 순간'이 갑자기 찾아온다.


뺙뺙 우는 라라를 들어올렸을때,

어느샌가 아가가 나를 선명히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우리딸 이제 아빠가 잘 보여?"


말을 걸어보면, 빠안히 아빠를 보는 라라의 눈동자에서

알 수 없는 벅차오름이 밀려온다.


그리고 그렇게 또 얼마가 지나다 보면,

이번에도 우리 아기가 나를 알아봐 줄까 하는 희망으로 우는 아이를 새벽에 안아보면,

아빠를 보고 빵긋. 웃는다.

아기의 첫 미소. 우리 아기가 나를 보고 웃는다.

정말 순수한 행복 그 결정체라고해도 과언이 아닐 그 웃음.

그 순간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기가 오르듯 무언가가 훑고 지나간다.


"우리 딸 아빠가 와서 좋았어?"


웃으며 말을 걸어보지만, 야속하게도 아가는 다시금 배고프다고 울어대기 시작한다.

젖병을 물리고, 기절하듯 잠든 아가를 눕히며 속으로 기도한다.


"엄마 아빠한테 와줘서, 아빠보고 웃어줘서 고마워 우리딸. 우리 같이 많이 웃자"


그래.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