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음식 단상(斷想)

그랬다고 한다....

by 귀연

지난했던 1년이 막바지를 향해 달려간다.

지난했던 나의 싸움도, 회복 중이라는 고지에 승리의 깃발을 꽂으며 끝이 났고

가려야 할 것 많고 금지해야 할 먹거리에서 오는 스트레스에 먹는 즐거움 대신 짜증만 남았다.

오래, 글쓰기 작업을 하지 못했고

오래, 사색과 상상 공상의 시간을 갖지 못한 채

나의 뇌는 잔뜩 늘어나버린 고무줄처럼 탄성 잃어 축 쳐진 주름들로 가득해진 느낌이다.


암.

아무런 전조증상 없이 불쑥 찾아온 신장암이라는 절벽과 마주했던 지난 시간

당황스러움과 곤혹스러운 감정 속에서도

모든 일들은 순서대로 흘러갔고

수술과 입원, 요양과 치유를 마치고 집으로 왔다.


그토록 맛없고 질리던 네 끼의 병원 밥이(보기에만 먹음직스러울 뿐, 신장애 환자식이라 간이 거의 되어 있지 않아 매 끼니 참으로 곤혹스러웠다.) 이토록 그리울 줄이야.

시퍼런 멍으로 뒤덮여 있던 팔뚝과 손등도 이제는 뽀얀색으로 바뀌어 통통? 해졌건만, 눈 밑은 병원에 있을 때보다 더 푹 꺼져 5년은 늙어 보인다.

엉엉

그래도 무사히 가족들의 곁으로 돌아왔음에 감사하며,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온정을 베풀어준 지인들의 마음에 행복하다 웃어본다.

이제 내가 좋아했고 또 좋아하는 일을

다시 시작할 시간.


진작에 넘겼어야 했지만 그리하지 못했던 원고를 다시 진행하기 위해 노트북을 연다.

까탈스러운 일러 작가의 비위?를 맞추며 원고보다 먼저 완성된 작품표지가 무색하리만치 엉성한 작업상태에 피식하는 헛웃음이 난다.

갑자기 암환자가 되어버린 내게 글 독촉도 못하던 우리 편집자님은 얼마나 또 답답하셨을까.

새해에는 바짝 힘내서 잘 시작하고 잘 마무리하자고 다짐하는 크리스마스 저녁.

어른들을 위한 산타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허무맹랑한 생각을 하며 고개를 주억거린다.

그래, 그랬다고 한다.

암이었다고

그게 올해 내게 생겼던 아니 내가 살아왔던 시간 속

가장 큰 이벤트였고

잘 지나가고 있다고.

그래, 그랬다고 한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