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덟의 순간, 어느 자퇴생의 이야기

by 백일





꿈. 아주 어릴 적에는 이 글자 하나에 온갖 상상을 하며 가슴 설레어했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짐이라는 뜻으로 바뀌고 말았지만.


그래, 어쩌면 난 그 빌어먹을 환경 탓 하면서 그저 포기하는 법부터 배운 걸지도 모른다. 남들은 다 "포기가 뭐죠? 배추 셀 때나 쓰는 말 아닌가요?" 하면서 열심히 사는 것 같은데. 시도도 안 하고 알아보지도 않아서 결국 지금 내가 아무것도 아닌 건데.. 나는 내가 뭐든 하면 다 될 것처럼 막연하게 믿는 게 전부라고 생각했었고 그래서 제자리걸음이나 하고 있다. 병신같이 자책이나 하면서.


빌어먹을. 그래, 남들 다 외쳐대는 그 꿈이란 대체 뭔데? 진지하고 삭막한 것을 싫어하는 나에게 이렇듯 깊이 고찰해야 하는 문제는 무거운 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성향 때문에 어두워진 내면을 마주하곤 하지만 말이다. 결국 미루고 미뤄 훨씬 더 곪아버리고 말았다. 꿈같은 거 생각하기엔 그럴 틈조차 주지 않는 잔혹한 현실 탓이라고 하고 싶지만 사실은 알고 있다. 그냥 답을 찾지 못할까 봐 두려워서 묻어버린 게 나인 걸 누굴 탓하겠는가. 뭘 좋아하는지, 뭘 잘하는지, 어떤 게 적성에 맞는지, 어떤 직업을 가져야 하는지. 어떻게 하면 내가 의미 있는 무언가가 될 수는 있는지.


사실 끈기 있게 스스로 무언가 계속했던 기억이 별로 없다. 상황이 여의치 않다며 혼자 온갖 핑계를 둘러댔지만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그에 맞는 최선의 노력은 하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한국 사회가 꿈을 꾸고 그것을 지키며 이루기에는 더럽게 힘들다는 것을 알지만, 무엇이 되든 뭔가 이루려면 그에 상응하는 엄청난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나는 간과하고 있었다. 상상만 해대며 '저렇게 되고 싶다' 하는 게 아니라 매일의 작은 발걸음과 끈기가 필요했다. 물론 내가 항상 아무것도 하지 않는 멍청이는 아니었다. 무언가 해야 하면 반드시 했다. 미친 듯이 빠져들 만큼 재밌었던 건 아직 찾지 못했지만(물론 시간을 어느 정도 할애할 만큼 좋아하는 취미는 있다. 이렇게 감정과 생각을 글로 쓰는 것과 창작활동, 그리고 그림 그리는 것 정도.) 그 외의 다른 것에는 흥미가 없어도 어느 정도의 노력은 했다. 다만 스스로 무언가 목표를 정하고 그에 따라 노력하여 성취감을 얻는 것에 너무나 서툴렀다.


사실 솔직히 말하면 그냥 가만히 남은 시간들을 버텼으면 취직에 대한 걱정은 딱히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굳이 적성에 맞지 않는 길을 가며 불행하고 싶지 않다며 고등학교를 자퇴했다. 그냥, 너무 싫었다. 내 안의 무언가가 속박된 삶은 나를 너무도 지치게 만든다. 나는 내가 싫어하는 일에 억지로 익숙해지고 기계적으로 일해서 돈 벌어먹고 사는 건 싫다. 그래, 아직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애의 투정이라 생각해도 좋을 것 같다. 하지만 어느 누구라도 그 결정이 쉬웠을 거라고 단정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다소 표현이 격하 긴 한데 진짜 우울해 뒤질 뻔했다. 나말고는 아무도 이해하지 못한다. 이 삶을 살고 이 상황들을 겪으며 자라 내 가치관을 가진 인간은 나뿐이니까. 아무튼 자퇴까지 하고 이제 와서 이런 결론에 도달한 게 참 우습고 한심하지만 어쩌겠는가. 그냥 작은 거 하나하나 실천하면서 뭐든 도전하다 보면 나중엔 뭐라도 되어있겠지. 내가 적어도 아무것도 아닌 한심한 인간이 아니라 뭐라도 할 줄 아는 인간이면 그걸로 족하다. 지금도 할 줄 아는 게 있긴 한데 스스로의 생계를 책임질 수 있는 것을 배우고 싶다는 뜻이다. 난 위대해지는 걸 바라는 건 아니니까.


그 시작으로 검정고시 공부든 운동이든 하루에 아주 조금이라도 꾸준히 하며 뭐부터 도전해 볼지 생각해 볼 참이다. 애석하게도, 이따금씩 나만 멈춰있는 것 같다고 느껴질 때가 있긴 한데 사실 생각해 보면 나는 늦은 게 아니다. 고작 열여덟. 객관적으로 보면 아직 새파랗게 어린 나이다. 그게 뭐가 되었든 도전할 기회가 얼마나 많을까. 물론, 사회적 시선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자퇴했다는 것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 있을 거고 아직 어린아이의 어리석고 무모한 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어쩌면 후자는 사실일지도. 그래, 모두가 말리는 일이었다. "니가? 자퇴를? 왜?"라고 다들 그랬었나. 심할 땐 하루에 3번 정도 말리는 걸 경청해야 했던 듯싶다. 이렇듯 현실이 좀 차갑더라도 이미 난 그에 대한 각오를 오래전에 한 상태다. 어느 정도 익숙해졌고, 앞으로 더 무뎌질 생각이다. 비록 위대한 무언가가 되고 싶은 것도 아니고 아직 갈 길을 정한 것도 아니지만 적어도 스스로 자신이 떳떳하도록 그렇게 나를 만들어 나갈 거다. 행복해지기 위해 선택한 길이니까 부끄럽게 만들지 않을 것이다. 도전하기에 늦은 때 같은 건 없고 상황이 여의치 않아도 그 선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이 만들어 줄 거니까. 이제 나는 그걸 몸소 깨달은 만큼 그에 따라 행동해야겠지. 힘들더라도 그렇게 하는 게 행복해지는 길일테니까. 불행은 싫다. 그러니까 그냥 해볼 거다. 힘내자 나 자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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