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어느 마을에 ‘어니스트’라는 이름을 가진 한 소년이 살았습니다. 그 마을에는 얼굴 모양을 한 큰 바위가 있었고 예로부터 그 마을 출신 사람 중 큰 바위 얼굴을 닮은 위대한 사람이 나타날 거라는 전설이 있었습니다.
소년은 항상 큰 바위 얼굴이 마을에 나타날 순간을 기다리며 청년이 되고 중년이 되고 노년이 되어 갑니다. 어니스트에게 큰 바위 얼굴은 꼭 만나고 싶은 인물이자 자신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쳐주는 스승이기도 했습니다. 큰 바위 얼굴을 닮고 싶었던 어니스트는 그 얼굴을 닮기 위해 항상 진실하고 겸손하게 살아갔고 마을에서도 차츰 명성을 얻게 됩니다.
그동안 그 마을에는 돈 많은 부자나 싸움을 잘 하는 장군, 말을 잘 하는 정치인들이 외지에 갔다가 돌아오게 되고 사람들은 저마다 그 사람들이 큰 바위 얼굴을 닮았다고 말하지만 어니스트는 그들이 그다지 훌륭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마을에 뛰어난 영감을 가진 시인이 나타납니다. 어니스트는 시인의 시를 읽고 그가 큰 바위 얼굴이기를 바랐지만 시인 역시도 큰 바위 얼굴과 닮지 않았음에 실망하게 됩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시인은 어니스트가 하는 연설을 들으며 어니스트야 말로 큰 바위 얼굴을 닮았다고 큰 소리로 외칩니다. 어니스트는 어려서부터 큰 바위 얼굴을 보며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는 꿈을 꾸었고 결국 사람들로부터 존경받는 큰 바위 얼굴을 갖게 되었던 것입니다.
미국 소설가 너새니얼 호손의 작품 <큰 바위 얼굴>은 미국 소설의 고전이지만 지금도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생각해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우리가 어릴 때에는 모두 꿈이 있었습니다. 대통령이나 선생님, 화가나 소설가가 되고 싶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꿈의 이면에는 반드시 닮아가고 싶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때론 친한 선배나 학교 선생님이 멘토가 되기도 했고 때로는 가족을 위해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희생하신 부모님이 멘토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분들은 바로 우리의 큰 바위 얼굴이었던 셈이지요.
그러나 어린 시절을 벗어난 지금의 나는 과연 어떤 얼굴을 닮아가고 있을까요. 연습도 없고 복습도 없는 우리의 인생길에 작은 등대가 될 수 있을 큰 바위 얼굴을 우리는 점점 잊고 지내는 것은 아닌지.
만일 당신의 마음속에 닮아가고 싶은 큰 바위 얼굴을 생각을 하고 있다면 그 대상이 부디 따뜻한 사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소설 속에서처럼 돈이나 명예로 세상을 휘두르는 사람이 아니라 타인의 압박에 굴하지 않는, 사회의 불합리에 작은 목소리 하나 보탤 수 있는, 이웃을 위해 선한 손을 내밀 수 있는 그런 사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내 마음에 큰 바위 얼굴을 품고 사는 것, 그리고 그렇게 살다보면 어느 순간 나도 그와 비슷한 모습을 하게 될 거라는 기대를 갖는 것도 참 행복한 일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