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인 조르바>를 쓴 그리스의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자신의 묘비명에 이렇게 새겨두었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라고 말입니다.
이 짧은 묘비명에는 그가 살아온 일생이 압축되어 담겨 있습니다. 터키의 지배 아래 어린 시절을 보내는 동안 카잔차키스는 기독교인 박해사건과 독립전쟁을 겪어야 했습니다. 젊은 시절에도 자유와 해방을 위한 투쟁을 해야 했지요. 때문에 누구보다도 자유에 대한 동경이 컸던 인물입니다.
그의 작품 <그리스인 조르바>에는 이러한 작가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60대 노인임에도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조르바’는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마음 가는 대로 자유롭게 살아갑니다. 반면 젊은 지식인인 ‘나’는 모든 현실에 얽매여 살아가지만 어느새 그런 조르바의 삶을 동경하게 됩니다. 조르바에게는 모든 것들은 새로움의 연속입니다. 마치 죽음을 목전에 둔 사람처럼 매일 보는 풍경을 어제와 다르게 느끼고, 매일 지나치던 꽃을 새삼스레 감동으로 느끼며 매 순간을 경이롭게 맞이합니다.
작가인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평생 동경했던 것은 조르바가 느끼는 것 같은 진정한 자유였습니다. 그리고 그런 평생의 염원은 그의 묘비에 짧은 한 줄의 글귀로 남게 됩니다. ‘나는 자유다’라고 말이지요.
유명한 묘비명이 또 하나 있습니다. 바로 조지 버나드쇼의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는 묘비명입니다. 재미있는 묘비명으로 알려져 많이 인용되기도 하지만 정작 이 말에는 심오한 진리가 담겨 있습니다. 이 말을 해석하면 “이 세상에서 꽤 오랫동안 어슬렁거리며 살았지만 결국엔 죽는다는 걸 난 알고 있었다”라는 말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죽는다는 걸 알면서도 스스로 우물쭈물 했다는 자기반성이 담긴 셈이지요.
이 묘비명은 많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극작가로 크게 성공한 나도 결국은 죽음을 맞게 된 것처럼 당신들도 언젠가는 죽을 테니 현재의 삶에서 우물쭈물하지 말고 조금 더 행복하게 살아가라고 말입니다.
우리는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유한한 존재입니다. 유명한 사람이나 돈이 많은 사람도 죽음 앞에서는 예외가 없고 누구도 이 순환의 고리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다만 잊고 지낼 뿐이지요.
세상에서 가장 심오한 철학은 어쩌면 우리가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비석에는 평생의 삶을 간략하게 축소해서 보여줄 글귀가 적힐 것이고 그 글귀는 우리가 세상에 남길 마지막 흔적이 되겠지요.
새해가 오고 어느새 또 한 살 나이를 먹었습니다. 올해가 시작되는 즈음, 나는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현재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를 한번쯤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요. 내 삶은 내가 이 세상에 남길 마지막 한 문장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새해를 시작하는 큰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