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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봄 Feb 09. 2022

102. 작은 것을 보는 마음

사무실 인근, 작은 컨테이너 박스에서 구두 수선을 하던 아저씨가 어느 날인가 문을 닫고 보이지 않습니다. 평소 건강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아는지라 닫힌 문을 보니 별의 별 생각이 다 듭니다. 건강이 나빠서 문을 닫은 건 아니기를, 그냥 쉬고 싶었다거나 또는 집에 급히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 잠시 문을 닫은 것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잠시 그 앞에 머물다 발길을 돌립니다.     


언제부터인지 주변 사람들의 소소한 안부가 궁금해지곤 합니다.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친구의 안부와 매일 박스를 거둬 가던 할아버지의 안부가 궁금해지고, 이웃집 마당을 휘젓고 돌아다니던 개의 근황도 문득 궁금해집니다. 친구가 새로 심었다는 천혜향은 잘 크고 있는지, 아침마다 일찍 일어나 학교에 가야 하는 친구 딸은 힘들지 않을지도 문득 궁금합니다.     


오년 전만 해도 친정엄마가 매일 “너도 꼭 너 같은 딸 낳아라”라는 말로 전화하지 않는 딸에게 서운함을 표현하곤 하셨는데 지금은 이틀만 지나도 친정 부모님의 안부가 궁금해서 내가 먼저 수화기를 들게 됩니다. 밥은 드셨는지, 오늘은 무얼 하며 소일 하시는지도 궁금합니다.     


예전에는 좀 더 큰일, 이를 테면 세계적인 이슈나 국가적인 사안에 관심을 두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고 미래를 지향하며 사는 것이 더 나은 삶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거창한 세계나 이념, 원대한 포부 보다는 작은 것들이 눈에 들어오고 사람들이 외면하는 곳에 오히려 시선이 머무는 것을 보니 아마도 시간은 많은 것들을 변화시키는 것 같습니다.     


봄이 되자 주변에 하나 둘 꽃이 피기 시작했습니다. 모처럼 차를 두고 밖으로 나오니 곳곳에서 걸음을 멈추게 됩니다. 길가에 핀 산수유, 매화꽃이 가장 먼저 눈길을 사로잡고 그 나뭇가지 사이에 앉은 작은 박새 한 마리가 눈에 들어옵니다. 여간해서 눈에 띄지 않았던 작은 박새를 보는 순간 저 작고 예쁜 새를 그동안은 왜 보지 못했을까요. 아마도 그렇게 작은 것에는 마음이 가지 않았기 때문일 테지요. 내 마음이 머무는 곳에 시선도 머무는 법이니까요.     


나이가 들면서 눈이 침침해지는 것은 필요 없는 것은 보지 말고 필요한 것만을 보라는 신의 의미라고 합니다. 또 귀가 잘 안 들리는 것은 필요 없는 말은 듣지 말고 꼭 필요한 말만 들으라는 의미라고 하지요. 이가 나빠지는 것은 신체의 변화에 따라 위에 부담이 없는 음식만 먹으라는 신의 뜻이고, 걸음걸이가 부자연스러워지는 것 또한 매사에 조심하라는 신의 뜻이라고 합니다.     


머리가 하얗게 되는 것은 멀리 있어도 나이 든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보게 하기 위함이고, 정신이 깜빡깜빡 하는 것은 지난 세월을 다 기억하지 말고 좋은 추억만 간직하라는 신의 배려라고 합니다. 나이가 들어가는 것이 조물주의 배려라는 것을 강조한 말이겠지만 그 나름대로 깊은 의미를 담고 있는 말입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내 마음이 작고 소소한 것에 머무는 것도 이런 조물주의 배려라고 생각한다면 나이가 들수록 어떤 것에 더 가치를 두고 살아야 하는지도 이제야 조금은 명확해 지는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옆 가게 아저씨는 내일이면 다시 문을 열고 신발 수선을 하고 계시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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