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모습이 유난히 슬프고 쓸쓸해 보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앞모습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느낌은 그 사람에게서 한 번도 듣지 못했던 색다른 목소리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그것은 어쩌면 그 사람과 객관적 거리를 두었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감정일지 모릅니다.
부모님이 저만치 걸어가는 뒷모습, 마치 처음 본 것처럼 눈에 확 들어오는 굽은 허리와 힘없는 걸음걸이에서는 삶의 고단함이 느껴집니다. 남편의 뒷모습이 왠지 젊을 때와 달리 어깨가 쳐진 것처럼 느껴질 때, 가족을 위해 고생했던 삶의 고단함은 한없이 애잔하기만 합니다.
상대방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순간은 그 사람의 뒷모습이 보일 때라고 합니다. 부부도 그 사람의 뒷모습이 보일 때 비로소 진정한 부부가 되는 것이고, 부모의 뒷모습이 보이기 시작할 때 자식은 비로소 자식으로 거듭나게 된다는 것이지요.
뒷모습은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만 열려있는 또 다른 ‘나’입니다. 그만큼 한 사람의 뒷모습에서는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놓치고 살았던 많은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이 미처 전하지 못했던 이야기,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고 가슴 속에 담아 두었던 이야기들은 아무도 모르게 차곡차곡 쌓였다가 어느 날 우연히 뒷모습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지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세계적인 프랑스 소설가 미셀 투르니에는 <뒷모습>이라는 책에서 ‘등은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고 말합니다. 화장으로 꾸미거나 표정으로 마음을 가린 화려한 앞모습에 비해 등은 너무 밋밋해서 무슨 말을 할까 싶은데도 그런 등이 가장 진솔한 말을 하고 있다고 작가는 말합니다.
안간힘을 쓰고 있는 사람의 뒷모습, 기도하는 뒷모습, 아이를 안고 있는 뒷모습, 발레리나의 뒷모습, 무대에 나가기 전 속옷만 입은 패션모델의 뒷모습을 담은 사진에서는 앞에서 보지 못했던 많은 목소리들이 전해집니다.
언젠가 앞서서 걸어가던 사람의 뒷모습을 오랫동안 바라본 일이 있습니다. 오른쪽 어깨가 심하게 기울어 있고 등은 휘어져 있었습니다. 꽤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던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 사람의 삶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것 같았습니다. 한 번도 자신의 삶을 드러내 말한 적이 없었음에도 말이지요.
길을 걸어가는 젊은 여인의 뒷모습과 노인의 뒷모습은 다릅니다. 화장을 하고 예쁘게 가꾼 젊은 여인의 앞모습은 우리에게 많은 말을 전할 수 있겠지만 뒷모습만큼은 노인이 우리에게 훨씬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것이 뒷모습이 전하는 생의 진솔함입니다.
뒷모습을 통해 그 사람의 진솔한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일, 뒷모습에서 그가 살아온 내력을 더듬고 애처로움을 느끼는 일, 그것은 의도된 세계가 아니기에 상대방을 더 깊이 이해하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많은 것들을 생략했지만 내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당신의 뒷모습은 어떤 진실보다 더 크게 다가옵니다.
오늘 저 만치 걸어가는 당신의 뒷모습이 쓸쓸해 보이는 건 화사한 봄날, 당신이 굳이 숨기고 싶었던 삶의 전언이 아닌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