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가라앉은 앙금은 때때로 대인관계를 힘들게 만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평소에는 잊고 지내던 감정의 찌꺼기들이 그 사람을 만날 때마다 새록새록 떠올라 관계를 어렵게 하는 것이지요. 그럴 때마다 쌓인 감정을 풀어버리고 싶지만 그것도 마음처럼 쉽지만은 않습니다.
마음 속 앙금이 되는 것은 상대방에 의한 서운함이 대부분입니다. 평소에는 나에게 친절하게 대해줬던 사람이 갑자기 차갑게 대할 때, 혹은 제3자에게 내 험담을 했다는 말을 전해 들었을 때 그 사람에 대한 서운한 감정은 앙금이 되어 마음에 오래 남게 됩니다.
앙금의 대표적인 것이 바로 ‘화병火病’입니다. 울화병이라고 알려진 ‘화병’은 갑자기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막히고, 뛰쳐나가고 싶고, 뜨거운 덩어리가 치밀어 오르고, 불안과 절망, 우울과 분노가 한꺼번에 일어나는 증세를 겪는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옛 어른들은 이런 화병에는 약도 없다고 말하셨지요.
조선시대 정조의 모친이자 사도세자의 부인이던 혜경궁 홍씨가 쓴 ‘한중록’에도 사도세자의 병세를 언급할 때 ‘화증火症’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세자 자신은 이러한 병증을 ‘화병’이라 했다고 전해집니다. 참 뿌리가 깊은 병이지요. 화증이나 울화나 화병이나 모두 ‘화火’로 표현됐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화를 표출하지 못하고 내면으로 삭힐 때 응어리진 것들이 결국 병이 되어 밖으로 표출되는 것이 ‘화병’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예전부터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사람은 경솔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많았습니다. 반면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했는데 이런 생각으로 인해 우리 속담에는 ‘모난 돌이 정 맞는다’ ‘나서지 마라’ ‘화를 내면 지는 거다’ ‘남자는 세 번 운다’ 등 감정의 억제를 강요하는 속담도 많았습니다.
현대인들은 점점 더 자신의 감정을 표출하는데 어려움을 느낍니다. 남들과의 경쟁에서 이겨야 하고, 남들보다 더 강해져야 한다는 생각들이 점점 자신의 감정을 드러낼 수 없게 만드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 어쩌면 경쟁사회에서 억눌려 살다보니 감정을 표출할 수 있는 기회마저 차단된 것인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그것은 결국 나 자신을 병들게 하는 지름길이 될 수 있어 주의해야 합니다. 타인의 감정을 헤아리기 이전에 내 감정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상대방을 대할 때 서운한 마음이 든다거나 상대방을 공격하고 싶어질 때, 나도 모르게 울화가 치밀 때, 울고 싶어질 때, 그럴 때는 내 마음이 무슨 말이든 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아채고 그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만일 그것이 타인으로 인한 것이라면 두려워하지 말고 내 감정을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내가 나쁜 사람으로 보이거나 악한 사람으로 보이게 될까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만일 말로 전하지 못하겠다면 차분히 글로 써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내 마음이 왜 그런지, 천천히 스스로에게 질문하면서 답을 하나씩 써내려가다 보면 어느새 내 마음에 쌓인 앙금의 근원에 닿을 수도 있으니까요. 오늘은 내 마음의 앙금이 전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