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봄 Feb 10. 2022

195. 수레 만드는 자의 지혜

중국 제나라 환공이 어느 날 방에서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날 마침 수레를 만드는 윤편이라는 사람이 뜰에서 수레바퀴를 깎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망치와 끌을 내려놓고 일어나 감히 환공에게 다가와 물었습니다. “왕께서 지금 읽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환공이 대답했습니다. “성인들의 말씀이다” 윤편이 다시 물었습니다. “그 성인들은 죽었습니까, 살았습니까?” 환공이 대답했습니다. “오래전에 죽었다.” 그러자 윤편이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왕께서 읽는 것은 옛 사람들이 남긴 찌꺼기군요.” 성인들을 비하하는 말을 들은 왕이 불쾌해하며 말했습니다. “그렇게 말한 이유가 무엇이냐? 논리적으로 설명하지 못하면 목을 베겠다.”     

그러자 윤편이 말했습니다. “그것은 제 경험에서 나온 말입니다. 수레바퀴를 깎을 때 너무 깎으면 헐렁해서 쉽게 빠지고 덜 깎으면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적당히 손을 놀려야 하는데 그 기술은 손으로 익혀 마음으로 짐작할 뿐 말로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제 자식 놈에게 기술을 가르쳐주고 싶으나 아무리해도 가르쳐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일흔이 넘은 나이에 아직도 제 손으로 수레바퀴를 깎고 있는 것입니다. 옛 성인들도 자신들이 진정으로 깨우친 사실은 아무에게도 전하지 못한 채 죽어갔을 것입니다. 그러니 왕께서 지금 읽으시는 그 글은 뒤에 남기고 간 찌꺼기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출근길에 중국 고전에 대한 강의를 듣다가 <장자> 외편에 실린 이 이야기를 듣고 다시 책을 꺼내 읽습니다. 어렸을 때도 분명 읽은 적이 있는데, 그때의 느낌과 지금의 느낌은 확연히 다르게 다가옵니다. 아마도 그것이 고전이 가진 매력이겠지요.     

우리는 많은 것들을 배우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단순히 배우는 것만으로는 배움의 핵심을 꿰뚫었다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장자의 말처럼 그것은 단지 나보다 앞서간 성인들의 찌꺼기를 헤집는 것에 불과할지도 모르니까요. 우리가 정말로 배워야 할 것은 그 찌꺼기들 속에서 앞서간 사람들이 진실로 전하고 싶었던 것을 찾아내는 일입니다.      

수레바퀴를 만드는 노인이 자식에게 정말로 가르쳐주고 싶었던 것은 수레 만드는 과정을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 현실에 맞게 대처하는 것이었습니다. 현실 속에 있는 나무는 단단함이나 결 등이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만큼 습득한 지식이 그대로 적용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노인의 가르침을 제대로 깨닫기 위해서는 오랜 동안 연마해서 몸으로 체득해야만 하는 것이지요.     

우리의 삶도 정작 알아야 할 것은 놓치고 찌꺼기만 가득 담은 채 살아가는 것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장자는 우리가 정말로 배워야 할 것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속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참된 가르침을 깨닫기 위해서는 그것이 반드시 나의 삶에서부터 비롯되어야 합니다. 지식을 배웠다면 그것을 현실에 적용하고 체득하는 지혜가 필요한 것이지요. 아무리 훌륭한 지식을 가졌다 해도 그것이 내 삶과 어우러져 지혜로 체득되지 않으면 그것은 아무런 쓸모없는 찌꺼기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것, 오늘 내 자신을 돌아보며 새삼 되새긴 것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이전 01화 206. 영혼이 따라오는 시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