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의 수필집 <랑겔한스 섬의 오후>에 등장하는 ‘소확행’이 여러 사람에게 회자되고 있습니다.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뜻하는 소확행은 어쩌면 손에 잡히지 않는 먼 행복보다 내 가까이에 있는 행복을 느끼고 싶은 현대인들의 소망이 그대로 투영된 것이겠지요. 하루키에게 있어 소확행은 갓 구운 빵을 손으로 찢어 먹는 것, 서랍 안에 반듯하게 접어 돌돌 만 속옷이 잔뜩 쌓여 있는 것, 새로 산 정결한 면 냄새가 풍기는 하얀 셔츠를 머리에서부터 뒤집어 쓸 때의 기분이라고 했습니다.
문득, 내게 있어 소확행은 어떤 것일까 생각해 봅니다.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은 대부분 고요함에서 비롯됩니다. 새봄에 피어난 연초록 잎들을 보는 일, 새가 앉았다가 날아간 후 저 혼자 오래 아파하며 떨고 있는 나뭇가지를 지켜보는 일, 풀밭에 엎드려 하늘색 꽃마리꽃의 작은 잎과 노란 수술을 세는 일, 저수지가 바라다 보이는 벤치에 앉아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수면을 오래 바라보는 일, 길을 가다 선물처럼 까르르 웃는 아이의 얼굴과 마주치는 일, 가만히 누워서 흰 뭉게구름이나 쏟아질 것 같은 별을 바라보는 일, 세차게 내리는 비와 그 비를 머금은 세상을 음미하는 일, 햇볕에 바싹 마른 빨래를 갤 때 빨래에서 느껴지는 바람의 냄새를 맡는 일, 일주일이면 서너 권씩 도착하는 많은 시집 중에서 절제되고 정제된 언어로 세상을 따뜻하게 껴안은 보석같은 시를 발견하는 일…, 이 모든 것들은 내게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전해줍니다.
그러나 요즘 내게 가장 큰 소확행은 바로 ‘사람’입니다. 평면적으로 보았던 사람에게서 그 사람의 아픈 역사를 발견하고, 그로 인한 삶의 깊이를 발견하고, 진솔함으로 세상을 대하는 그 사람을 발견할 때, 나는 그 사람과 마시는 차 한 잔에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을 느낍니다.
자작나무의 흰 빛을 오래 바라보다 문득 흰 표피의 벌어진 상처에 가만히 손을 대보고 싶어지는 것처럼, 비록 흉터는 남았지만 잘 아문 그 사람의 상처에도 가만히 손을 갖다 대고 싶어집니다. 그 사람의 깊은 눈빛을 보는 것만으로도, 긴 수다가 아닌 몇 마디의 말을 주고받는 것만으로도 이미 내 안 어딘가에서 뭉클한 감동과 행복이 솟구침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한 시인이 붉게 익은 대추를 바라보며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번개 몇 개”라는 시어로 생의 이치를 전한 것처럼 모든 생명이 익어가기 위해서는 눈에 보이는 풍요로움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이제는 어렴풋이 알게 되는 나이…, 대추 한 알이 익기 위해서는 밤새 몰아치던 태풍의 시간을 견뎌내야 하고, 천둥과 번개를 견뎌내야 하듯 우리들의 삶도 잘 익기 위해서는 그런 고난의 시간들이 필요하겠지요.
곱게 나이 든다는 것이 주름없이 고운 외모만을 의미하지 않듯이 잘 익은 우리들의 삶 역시 그저 별 탈 없이 지나온 시간만을 의미하는 것만은 아닐 겁니다. 지난 시간의 상처들을 잘 보듬어 안은 사람, 그래서 삶의 깊이를 가진 그 사람과 마주하며 느끼는 풍요로움은 내게 작지만 큰 행복을 안겨주는 소중한 ‘소확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