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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봄 Feb 09. 2022

99. 발효와 부패

어느새 봄이 성큼 다가온 것 같습니다. 이제 얼마 지나지 않아 매화꽃이 만발하면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이들의 마음도 분주해지겠지요. 그리고 어머니는 작년처럼 매실을 발효시키기 위해 매실 열매를 항아리에 꼭꼭 눌러 담고 설탕을 부어 발효시키면서 하루 빨리 체에 걸러 자식들에게 가져다 줄 날만 손꼽아 기다리실 겁니다.     

배가 아플 때나 소화에 큰 도움이 된다는 말에 지난해에는 어머니가 가져다주신 매실 액 한 통을 모조리 먹어 치웠습니다. 인체에 들어가면 생명을 유지하는 영양소를 만들어내는 것이 발효식품이라니 내 건강지킴이는 아마도 어머니가 가져다주시는 매실 액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우리나라에는 숙성된 발효식품이 참 많습니다. 매일 먹는 김치를 비롯해 간장, 된장, 고추장이 대표적인 발효식품으로 꼽히고 식초와 포도주도 좋은 발효식품입니다. 자연발효의 원조는 원숭이가 새끼에게 먹일 먹이를 땅 속에 묻어두었다 부드럽게 변한 뒤 꺼내서 먹인 것이라고 하지요. 인류는 기원전 1만 년 전부터 포도주와 식초를 만들었습니다. 곰팡이와 젖산균을 이용한 효모로 맥주를 제조한 것도 발효라는 단어가 생기기 이전인 기원전 6천 년 전부터라니 발효음식의 역사는 생각보다 훨씬 긴 것 같습니다.     


발효와 부패는 모두 멀쩡한 음식에 시간이 가미되면서 서서히 변해가는 현상이지만 그 둘의 변한 형태는 완전히 다릅니다. 부패가 썩고 산화되면서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것으로 변해가는 것이라면 발효는 오히려 유용하게 변화되면서 인간을 이롭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그 음식에 어떤 균이 가미되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만일 부패균이 가미된다면 악취와 병원성 물질이 생기며 발암물질이 만들어집니다. 이런 현상은 우리 장에서도 똑같이 발생합니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만일 변에서 악취가 나거나 방귀냄새가 지독하다면 장내 균이 좋지 않다는 것을 의심해야 한다고 조언하기도 합니다.     

반대로 효모나 유산균 등 유용한 균이 가미된다면 인체에 유익한 효소나 비타민, 호르몬, 면역물질을 만들어 냅니다. 인체의 장에서도 이런 좋은 균이 활동하게 될 때 인간이 더 건강해지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같은 것처럼 보이지만 전혀 다른 결과로 나타나는 발효나 부패는 인간들의 모습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살아온 삶의 연륜들을 잘 버무려 사회에 가르침을 주거나 타인에게 이로운 일들을 하는 반면 다른 어떤 사람들은 삶의 연륜만 내세우며 아집을 부리거나 오히려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행동을 하기도 하니까요.     


음식의 발효는 균에 의해 비롯되지만 인간의 발효는 타인을 생각하는 이타적인 마음과 자기성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살아오면서 경험하게 된 아픔이나 좌절을 타인에 대한 공감으로 활용하는 일, 아름다움 뒤에 고뇌와 방황이 드리워진 젊은이들을 바라보면서 그들을 응원하거나 함께 안타까워하는 일, 부패가 아니라 발효되어가는 나이 듦은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완성이자 보다 성숙한 인간으로 익어가는 과정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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