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도 없는데 맞닿으면 너무 아파 숨쉬기도 어려운 것이 있습니다. 스치고 지나가는데 지나간 그 자리가 불에 덴 것처럼 오랫동안 흉터로 남는 것이 있습니다. 쉽게 바람처럼 사라질 것 같은데도 마치 발이 달린 것처럼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붉은 인장을 찍어대고, 형체도 없는데 기어이 산처럼 거대해지는 것이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 안 어디에선가 은밀하게 생겨난 이것은 좁디좁은 목구멍을 거침없이 통과하고, 뼈를 갖지 못한 부드러운 혀를 거쳐, 작은 입술을 뚫고 강철 같은 형체로 세상에 태어납니다. 한번 뱉고 나면 주워 담을 수 없는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그것의 이름은 바로 ‘말’입니다.
탈무드에는 “새장에서 도망친 새는 잡을 수 있으나 입에서 나간 말은 붙잡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셰익스피어는 “어리석은 자는 자기 마음을 혓바닥에 두고 현명한 자는 자기의 혀를 마음속에 둔다”고 했습니다. 모두 말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입니다.
우리는 때로 상대방에게 확인되지 않은 말을 전할 때가 있습니다. ‘아니면 말고’ 식의 이 말은 정작 본인은 책임을 면피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 말을 듣게 되는 당사자에게는 무엇보다도 무서운 비수가 될 수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인터넷에서 떠도는 ‘악플’입니다. 확인되지 않은 말, 그럴 거라는 추측성의 말이 한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벌써 여러 차례 현실에서 목격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말이 사람들 사이에서 떠돌고 있어서 알려주는 거야”라며 마치 상대방을 위하는 척 하며 하는 말, 그 말이 지나간 자리에는 상처만 있을 뿐 말에 대한 진위나 책임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상처는 오롯이 그 말을 전해 들었으되 어디에도 물어보거나 하소연할 곳이 없는 그 사람의 몫입니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말에도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이 있습니다. ‘아니면 말고 식의 말’이나 ‘책임지지 않는 말’은 우리 사회에서 반드시 사라져야 할 것 중 하나입니다. 내가 내 말에 대해 책임질 수 있을 때 말의 품격은 되살아나고 그것이 신뢰할 수 있는 인간관계를 만들어 좋은 지역사회를 만드는 바탕이 될 수 있습니다.
‘감언이설甘言利說’이나 ‘호언장담好言壯談’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달콤한 말로 이익을 약속하며 상대방을 꾀거나, 주위상황은 고려하지 않고 자신이 다 할 수 있다는 듯이 큰소리치는 것은 반드시 조심해야 할 부분입니다. 이 역시 말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 자세에서 비롯되는 것이니까요.
말도 내 안에서 오래 갈고 다듬으면 보석이 될 수 있습니다. 아는 것보다 적게 말하고, 같은 말이라도 때와 장소를 가려서 하는 일, 세상에 탄생했을 때 소음이나 해코지가 아닌 보석이 되는 말이어야 합니다. 입에서 나오는 대로 내뱉는 것이 아니라 한번, 두 번 생각하고 잘 다듬어서 세상에 내 놓는 ‘나의 인격’이어야 합니다. 대화를 해 보면 그 사람의 인격과 만날 수 있다고 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내 안에서 말을 갈고 다듬는 것이 어렵다면 차라리 침묵을 택하는 것도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