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도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 정현종 <방문객> 중에서
한 사람의 인생에는 다양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철없는 10대, 방황하는 20대, 세상을 알아가는 30대, 세상에 적응하는 40대, 어느 정도 삶의 방향이 정해진 50대 등 살아가면서 좌충우돌하고, 고민하고, 변화하는 과정들이 하나 둘 모여 한 사람의 인생을 만들어 갑니다. 그것은 과거의 모습이자 현재의 모습이며, 그 현재들이 모여 만들어지는 미래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 가운데 어느 하나의 모습이 그 사람의 모습이라고 단정 짓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한 사람을 형성한 수많은 과정의 하나일 뿐입니다. 중요한 것은 현재의 내가 어떤 생각과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혹여 과거의 잘못이 있었다면 그것이 어떻게 현재 속에 녹여있는가도 중요합니다. 그 사람의 미래는 그런 모습들이 모여 결정될 테니까요.
정현종 시인은 <방문객>이라는 시에서 한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일이라고 말합니다. 수많은 굴곡의 시간들을 품어 안은 모습으로 우리는 만납니다. 그 모습 안에는 눈물겨운 과정도 있었을 것이고, 가슴 아픈 과정도 있었을 것입니다. 모든 과정을 일일이 물어볼 수는 없지만 우리는 어느 정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돈이 많고 행복해 보이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미처 보지 못했던 굴곡지고 눈물겨운 삶과 만날 수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타인을 평가할 수 있으려면 그 사람의 생이 마무리된 이후여야 합니다. 그리고 출생에서부터 성장 과정, 그 사람이 해온 일들을 모두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는 이상, 다른 사람을 평가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설령 타인의 생이 이미 마감되고 출생부터 되짚어보는 신중한 과정을 거쳤다 해도 시대적인 상황이나 사람들의 판단 기준은 달라질 수 있으므로 그 또한 시간이 지나면 오류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한 사람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단편적인 사실뿐입니다. 하나의 사실에 대한 하나의 문제, 그 문제에 대한 것도 지극히 개인적이고 오류의 가능성이 있는 판단뿐입니다. 그러니 하나의 문제가 한 사람의 전부인 것처럼 호도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입니다.
SNS가 발달하면서 사람에 대해 새롭게 배우는 것이 참 많습니다. 범죄를 옹호할 생각은 없지만, 범죄를 저지른 한 사람의 생애에 대해서도 경우에 따라 마음이 아플 때가 많습니다. 무엇이 그 사람을 그렇게 만들었을까 하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면 그 사람의 문제는 결코 개인의 문제로만 치부할 수 없는 일이 되면서 우리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도 깨닫게 됩니다.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을 지구라는 별에 떨어진 우리들의 모습으로 치환해서 읽어봅니다. 낯선 지구라는 별에 방문한 이방인, 그리고 나와 똑같이 지구라는 별에 방문한 또 다른 이방인이 만나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한 사람의 생이 통째로 낯설어질 때, 낯선 이 별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타인의 눈물겨운 생에 대해서도 잠시 귀를 기울여주고, 서로 가만히 등을 쓸어주는 마음이 필요하지 않을까 잠시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