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잠잠해지나 했더니 다시 확산되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를 상대로 싸우다보니 처음에는 무엇을 어떻게 대비하고 싸워야 하는지 모르겠더니 시간이 지나면서 이제 차츰 대비태세가 갖춰지는 것 같습니다. 위기상황에서도 우리나라가 세계 모범국으로 등극했다고 하니 왠지 어깨가 으쓱해지기도 합니다.
과학이 발전하면서 무엇이든 만들어내지 못하는 것이 없고, 하다못해 사람을 대신할 수 있는 인공지능 로봇까지 등장한 최첨단시대에 고작 눈에도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를 상대로 전 세계가 긴장하고, 수많은 사람이 죽어간다는 사실이 때로는 믿어지지 않습니다. 자본만 있으면 모든 것이 해결되리라고 생각하는 지금, 아무리 돈이 많아도 이걸 해결할 방법이 없으니 말입니다.
오래 전 우리 조상들은 눈에 보이는 것보다는 오히려 보이지 않는 것, 그리고 보이지 않는 것과 현재의 삶과의 관계를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도덕이나 윤리를 숭상했고, 조상을 받들어 제사를 지내는 것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자식은 묘 옆에 움막을 짓고 3년 동안 아침저녁으로 밥을 지어 올리며 묘소 옆을 지켰습니다. 그것은 비록 육신은 땅에 묻혔지만 영혼의 존재가 있음을 믿고 그 영혼을 잘 위로해서 좋은 곳으로 가실 수 있게 함으로써 현재의 자식들과의 관계를 평화롭게 이어가려는 의식적인 행위였지요.
아이가 열이 나면 약을 먹여 단시간에 열을 떨어뜨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두툼한 이불로 더 몸을 감싸고 밤새 땀을 내게 함으로써 아이의 몸이 스스로 열을 떨어뜨릴 수 있도록 기다려주었습니다. 아이의 몸 안을 들여다볼 수 없었지만 스스로 자신의 몸을 지킬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이 있었던 것이지요. 그 행위에는 기다림이 있었고, 육체와 보이지 않는 어떤 것과의 관계에 대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믿음은 몸에 자연스럽게 배어 그대로 삶이 되었기에 누구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서양의 과학문물이 유입되면서 우리의 삶은 달라졌습니다. 과학은 시간을 단축시키는 놀라운 결과물을 눈앞에 보여주었으니까요. 사람들은 더 이상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믿지 않았고, 오로지 눈에 보이는 결과만을 좇으며 시간을 조금이라도 단축시키는 것이 발전하는 것이라는 확고한 신념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위대하게 보였기에 무작정 서양의 문물을 동경하며 살아왔던 것이지요. 그러는 동안 우리 사회는 많이 변화되었습니다. 사람들 사이에서도 관계성에 기인한 믿음보다는 물질만능이 자리 잡았고 심지어는 부모 자식 간에도 신뢰와 사랑보다는 돈이나 물질이 우선시 되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전 세계적으로 확산된 이번 코로나19는 우리에게 또 한 번의 교훈을 일깨워주는 것 같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 앞에서 눈에 보이는 것이 얼마나 미약할 수 있는지,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잘 다스리고 관계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입니다.
코로나19에 맞서 대한민국이 세계의 모범국으로 등극할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우리의 국민성에서 기인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조상들로부터 우리의 피 속에 면면히 흐르는 보이지 않는 존재에 대한 믿음, 나아가 그것을 다스리고 관계를 회복하는 방법을 이미 터득한 우리 조상이 남긴 위대한 유산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