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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봄 Feb 10. 2022

259. 오래된 기록

올해는 몇몇 단체의 역사를 책으로 기록할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아무래도 역사를 기록하는 일이고 보니 그것을 뒷받침할 자료를 수집하는 것은 가장 먼저 해야 할 과제입니다. 먼지 쌓인 해묵은 자료들 속에서 원하는 자료를 찾아 분류하는 것은 지난한 과정이지만 그것이 선행되어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오래된 자료 속에서 우연히 닮은 얼굴이나 아는 이름을 발견하는 것은 꽤나 신기한 경험입니다. 사진 속 앳된 얼굴과 굳게 다문 입술은 지금과 사뭇 다른 느낌이지만 이름과 대조해 보면 내가 아는 그 사람이 분명합니다. 사진과 함께 실린 이야기는 때론 음악으로, 때론 봉사로, 때론 작품으로 남아있습니다. 그때의 그분은 어떤 생각을 하며 지냈을까, 잠시 자료를 분류해야 한다는 목적도 잊은 채 주저앉아 뒤적이다보면 시간은 어느새 훌쩍 지나버립니다.     

이곳에서 어린 시절 학교를 다니고, 청년 시절을 보내고, 결혼을 해서 가정을 이루면서 살았던 사람들…, 문화가 턱없이 부족했던 그 시절에도 문화에 대한 욕구는 많아서 함께 척박한 지역을 일구로 가꾸어갔던 사람들입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지역을 위해 무엇인가를 했고, 기록으로 남겨졌고, 현재도 그 일들의 연장선상에서 여전히 일하고 있는 분들의 역사를 되짚어 보니 그동안 잘 몰랐던 부분에 대한 미안함과 함께 존경의 마음이 저절로 듭니다.     

사진 분야에 몸담았던 어떤 분은 지금이야 경험과 연륜으로 사진에 담긴 의미도 한층 깊어졌지만 젊은 시절 자신이 추구하는 일들을 위해 노력했던 흔적을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미술 분야에 몸담은 어떤 분은 세계무대를 돌아다니며 자신의 작품을 전시했고 지역에도 수준 높은 문화를 끌어들여 많은 행사와 전시들을 하는데 앞장섰습니다.      

새로운 문화에 관심을 가진 여성들이나 남성들이 주축이 된 단체에서는 지역 사람들과 문화예술을 향유하기 위해 남들보다 앞장서서 다른 나라 예술단체들을 지역에 초청해 공연을 성공적으로 치러냈습니다. 지금은 새로운 세대가 지역문화를 이끌고 있지만 그때 그 시절보다 부족하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요.     

송탄지역에는 일찍부터 미군기지가 자리 잡으면서 문화예술이 발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체육인을 후원하는 사람도 있었고, 개인의 사비를 털어 순수하게 지역의 문화예술 발전을 위해 헌신하신 분도 계셨지요. 지금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지만 그분들이 해 오신 일들은 오래된 책자나 자료집 속에서 변하지 않는 우리지역의 역사가 되어 남아 있습니다.     

오래된 자료들을 보며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는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많은 이들의 땀과 노력, 수고가 어우러져 남긴 결실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하는 일들 역시 미래의 이 땅에서 살아갈 누군가를 위한 초석이 될 것이라는 것을 확신하게 됩니다. 설령 시간이 지난 후 아무도 기억하는 사람이 없다 해도 역사가 사라지지 않는 이상 지금 지역 각계에서 수고하는 이들은 커다란 자양분이 되어 미래를 밝히는 초석이 될 것입니다. 지금 내가 지난 역사들을 기록하듯이 이다음에도 누군가는 현재를 이끌어간 이들의 수고를 기억하며 지금의 나처럼 고마운 마음을 기록하겠지요. 그분들이 지나온 역사에, 그분들이 만드신 지금의 모습에 오래 경의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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