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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봄 Feb 10. 2022

289. 계란의 추억

사무실 근처에 있는 밥집 사장님은 조금 한가한 저녁시간에 찾아가면 서비스로 계란프라이를 밥상에 슬쩍 올려주십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주는 건 아니니 조금 특별한 대우를 받는 것이지요. 이따금 다른 테이블에 있는 손님들의 눈치가 보이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정이 담뿍 담긴 사장님의 계란프라이를 놓칠 수는 없습니다.

계란은 가격도 싸고 흔한 식재료지만 내게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 중 하나입니다. 금방 삶은 따뜻한 계란을 소금에 찍어 먹는 것도 좋아하지만 당근이나 양파 등을 잘게 다져 넣고 둘둘 말아 부친 계란말이도 무척 좋아하는 음식입니다. 

들기름을 살짝 두르고 부쳐낸 계란프라이는 반드시 반숙으로 익혀야 제 맛입니다. 제대로 먹으려면 노른자를 뜨거운 밥에 쓱쓱 비벼 먹어야 하니까요. 노른자에 잘 비빈 밥 한 숟가락에 김치 한 조각은 그야말로 환상의 궁합입니다. 매운 비빔국수와 가장 잘 어울리는 계란탕은 소금과 파만 송송 썰어 넣어도 시원한 맛이 일품이지요.

닭이 금방 낳은 계란은 양쪽에 구멍을 뚫고 입에 넣어 쏙 빨아 당기면 고소한 날계란의 맛을 즐길 수 있습니다. 밀가루 반죽에 섞기도 하고, 다양한 전을 부칠 때는 밀가루 다음에 계란물을 입혀 부쳐야 색도 맛도 풍성해지지요. 다양한 음식과 어우러지는 계란은 어떤 식재료와도 잘 어울리는 천개의 얼굴을 가졌습니다. 

‘계란’ 하면 떠오르는 아주 오래된 기억이 하나 있습니다. 먹을 것이 귀했던 시절, 매일 김치와 젓갈로 밥을 먹어야 했던 아이들에게 계란은 정말이지 꿈도 꾸지 못하는 음식이었습니다. 물론 중학교나 고등학교에 다닐 때도 도시락에 계란을 싸가지고 가는 것은 생각도 못했으니 그보다 더 어린 시절이야 말해 무엇 할까요. 

어린 자식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며 장사를 해야 했던 엄마는 어느 날 우리에게 가장 먹고 싶은 게 무엇이냐고 물어보셨습니다.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의 어린 여자 아이들의 입에서는 ‘계란’이라는 답이 나왔고 엄마는 우리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계란 두 판을 사오더니 모두 삶아서 방바닥에 소쿠리 채로 놓아주셨지요. 물 만난 고기처럼 나와 내 동생은 앉은 자리에서 계란 60개를 뚝딱 해치웠고 그 일화는 지금도 가족들 사이에 두고두고 회자되는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엄마는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의 여자아이 둘이서 계란 두 판을 다 먹을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지만 원이라도 없게 맘껏 먹게 해주자는 생각이셨다고 후일담을 들려주시곤 합니다. 그렇게 소원은 풀었지만, 도시락에 계란 한번 싸가는 게 소원이었던 시절이었던 만큼 계란은 내 기억 속에서 항상 부잣집과 연계되어 떠오르는 귀한 식품이었습니다. 

지금도 계란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입니다. 김치찌개를 잘 하는 집에 가면 김치찌개보다 두툼한 계란말이 먹는 것이 더 좋아서 가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요즘은 한 술 더 떠서 사무실에 계란 삶는 기계를 사다 놓고 매일 아침 계란을 삶아 직원들과 나눠 먹습니다. 아침을 먹고 오지 않는 사람이 많아진 탓인지, 아침에 금방 삶은 계란은 인기가 아주 좋습니다. 

오늘 저녁엔 고소한 들기름에 부친 반숙 계란이 먹고 싶어집니다. 밥집 사장님의 따뜻한 정이 함께 담긴다면 오늘 저녁 밥상은 그야말로 환상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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