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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봄 Feb 10. 2022

279. 건축은 얼려진 음악

누군가의 집을 방문하면 그 집에서만 느껴지는 독특한 분위기가 있습니다. 똑같은 아파트라 해도 어떤 집은 밝고 경쾌한 분위기가 전해지는데, 또 어떤 집은 무겁게 가라앉은 분위기가 전해지기도 합니다. 또 어떤 집은 살얼음판 같이 쨍한 분위기가 전해지기도 하고, 어떤 집은 소탈하고 가벼운 분위기가 전해지기도 합니다. 그것은 그 공간을 채우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분위기입니다. 주인의 성격이나 취향, 그 집과 총체적으로 어우러지는 것들이 그 집의 분위기를 만들어내니까요. 말 그대로 그곳에 사는 사람이 집을 규정하는 것이지요.      

반대로 집의 형태가 달라지면 사람도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 아파트에서만 오랫동안 살았던 사람이 시골 주택으로 이사를 한다면 삶의 형태나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일반적으로 아파트가 사방에서 콘크리트를 접하게 되는 것과는 달리 시골 주택에서는 사방이 자연과 벗하고 있고, 집도 수시로 손봐야 하고, 눈이 오면 마당의 눈도 치워야 합니다. 집만 바꿨을 뿐인데도 아파트에 살던 때와는 전혀 다른 삶의 형태를 만들어내는 것이지요. 이 경우는 집이 사람을 규정하는 셈입니다.      

사람이라는 유기체와 집이라는 유기체는 함께 공존하면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규정하면서 삶의 일부가 되기에 어떤 건축이 필요한가를 고민하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건축이 우리에게 던지는 화두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건축가 유현준은 아무것도 없던 곳에 건축이 들어서게 되면 사람은 비로소 편안한 안식을 취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공간감을 느낄 수 없는 막막한 사막이나 광활한 우주에서는 편안하게 휴식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막막한 공간에 벽을 세우면 비로소 공간이 보이기 시작하고 처마를 만들면 그 처마 밑 공간이 우리에게 편안한 휴식을 안겨주는 것이지요. 그러한 벽과 벽이 만나 공간을 만들어낸 것의 집합체가 바로 건축입니다. 어떤 곳에 어떤 공간을 만들어내느냐에 따라 사람의 삶의 방식이나 질이 달라질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태어나고, 성장하고, 늙고, 죽어서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건축도 태어나고, 성장하고, 늙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순환을 이어갑니다. 그런 의미에서 집도 하나의 유기체로 보는 건축가들이 많습니다.      

괴테는 ‘건축은 얼려진 음악’이라고 말했다지요. 건축가 유현준은 괴테의 말처럼 건축에서 리듬, 멜로디, 화음, 가사를 찾아냅니다. 고딕 성당 안을 걷다 보면 도열해 있는 열주들이 음악의 박자처럼 느껴지고 스테인드글라스의 그림 이야기는 노래 가사처럼 우리에게 말을 건네는 것을 듣습니다. 나는 그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편입니다. 아마도 현관 입구를 따라 옛날 사진들이라도 놓여 있다면 그것은 현재 살아가는 후손들과 어우러진 화음을 내며 우리가 알지 못하는 좀 더 내밀한 가사를 전달하겠지요.      

인문학을 전공한 내가 전공분야도 아닌 건축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꽤 오래 전의 일입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전혀 생뚱맞은 것만은 아닙니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사람을 연구하는 학문이 인문학이지만 그 사람을 규정하는 또 하나의 존재가 바로 건축이니 말입니다.     

한 사람의 삶이 건축의 영향을 받는다는 생각, 도시의 모든 건축이 들어서기 전에 이러한 생각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내가 사는 도시도 조금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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