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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봄 Feb 10. 2022

280. 인생의 등대 '스승'

어렸을 때의 꿈은 국어선생님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어려서부터 가만히 앉아 책 읽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별명이 ‘책벌레’ ‘안방마님’이기도 했지만 나도 빨리 자라서 사춘기 소녀들에게 멋진 시나 훌륭한 소설 같은 것을 들려주며 문학의 세계로 인도하고 싶었습니다.      

중학교 때 내가 좋아했던 국어선생님은 가수 정수라를 닮은 여자 선생님이셨습니다. 선생님이 우리에게 들려주셨던 강신재의 소설 ‘젊은 느티나무’는 지금도 잊을 수 없는 내 소녀시절의 모든 것이었습니다. ‘그에게는 언제나 비누냄새가 난다’라는 소설의 첫 구절은 지금 생각해도 무작정 가슴이 뛰는 내 생에 최고의 문장이었으니까요. 선생님은 우리들 앞에서 그 문장을 읽은 후 눈을 감고 오래 서 계셨고, 덕분에 우리는, 아니 나는 오래오래 그 문장을 음미할 수 있었습니다.      

그 후로도 내게는 몇 분의 스승이 계셨고 나는 그분들에게서 많은 것들을 배웠습니다. 돌이켜 생각하면 내가 스승님들에게 배운 것은 시나 소설에 대한 지식이 아니라 삶을 이해하는 철학이라든가, 아니면 문학을 대하는 태도, 생명을 대하는 자세 등이었습니다. 정수라를 닮은 중학교 때 국어선생님이 지식이 아닌 침묵으로 우리에게 좋은 문학과 좋은 문장을 대하는 자세를 알려주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예전에는 대학 교수라고 하면 엄청난 권위를 가진 분으로 대우했습니다. 그 권위에는 지식뿐 아니라 인격적으로도 훌륭한 분이라는 무조건적인 인정이 담겨있었습니다. 그보다 더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면 마을에 있는 훈장님도 그와 비슷한 권위를 가졌지요. 그러나 지금 우리 주변에 그 정도의 권위를 가진 스승들이 과연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스승의 권위가 갈수록 떨어지는 요즘입니다. 일선 학교나 대학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스승은 단순히 ‘지식을 가르치는 사람’ 정도로 치부되곤 합니다. 심지어는 지식을 잘 전달하느냐 아니냐에 따라 학생들의 평가를 받기도 하고 때로는 학부모의 평가를 받기도 하지요.      

스승이 그저 지식을 전달하는 사람으로 전락해버린 사회에서 우리 아이들이 가정을 떠나 배울 수 있는 곳은 과연 어디일까요. 인터넷만 뒤져도 세세한 지식이 넘쳐나는 세상, 그럼에도 스승이 존재하는 이유는 인터넷으로는 배울 수 없는 지식의 보이지 않는 면까지도 배울 수 있기 때문일 텐데 아이들에게는 그마저도 허락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최근 대학 교수가 학생들로부터 평가를 잘 받았다는 내용을 SNS에 올린 것을 보았습니다. 학생들은 과연 무엇을 보고 교수를 평가한 것일까요. 평가의 기준은 무엇이었을까요. 한 학기가 끝나고 나를 가르친 교수를 평가하는 것, 그처럼 비교육적인 제도가 또 있을까요. 만일 교수를 굳이 평가해야 한다면 어떤 교수에게 지식과 삶을 포함해 어떤 것을 배웠는지 에세이 형식으로 써내려가게 하고 그것을 토대로 대학 측에서 종합적으로 평가해도 되지 않을까요.     

제자가 스승을 평가하고, 그에 따라 스승의 자격이 박탈되는 것, 그것은 어느 한사람이 만든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만들어낸 괴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스승에게 배울 수 있는 것은 단순한 지식뿐 아니라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스승이 살아온 삶과 학문을 대하는 태도, 지식과 삶이 어우러진 모든 관계까지를 포함한 것일 테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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