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3일은 ‘제1회 한국수어의 날’이었습니다. ‘한국수어의 날’은 2016년 2월 3일 ‘한국수화언어법’이 제정되면서 한국수어가 국어와 동등한 자격을 가진 농인의 공용어로 인정받은 날을 기념해 제정된 법정기념일입니다.
‘수어’는 손으로 표현하는 언어와 얼굴 표정 등이 어우러져 의사를 전달하는 농인의 언어입니다. ‘농인’은 청각 기능이 원활하지 못한 사람들을 통칭해서 쓰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청각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농인’은 아닙니다. 청각장애를 가진 사람들 중에는 수어를 모르는 사람도 많기 때문입니다. 즉, ‘농인’은 청각장애가 있어 말을 전달하는 것이 어렵지만, ‘수어’라는 언어를 사용해서 의사소통이 가능한 사람을 의미한다는 것이 보다 정확한 표현입니다.
각 나라마다 고유하게 사용하는 농인의 언어가 있고 우리나라에는 우리나라 농인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한국수어’입니다. 그러니 우리나라에는 대부분의 국민이 사용하는 국어와, 일부의 국민이 사용하는 ‘수어’까지 모두 두 개의 모국어가 있는 것입니다. 다만 사용하는 사람이 많지 않아 생활에 불편함을 느끼지 못할 뿐, 또 하나의 모국어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거꾸로 생각하면 내가 사용하는 언어가 사회에서 통용되지 않을 때 그 불편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이 큽니다. 가까운 일본만 가도 낯선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 틈에서 당황했던 기억이 있으니까요. 해외에 나가도 내가 사용하는 언어가 없는 것이 아니고 의사를 전달할 능력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내가 그 나라의 언어를 모르거나 혹은 상대방이 내가 사용하는 언어를 모르니 그저 불편을 감내하고 며칠 지내다 귀국하면 그만입니다.
그런데 농인의 경우 우리나라 안에서 우리국민으로 살아가면서도 마치 해외에서 살아가는 것처럼 일상에서 불편함을 느끼며 살아갑니다. 언어가 없는 것도 아니고 버젓이 국어와 동등한 위치에 있는 수어로 충분히 의사를 전달할 수 있음에도 다른 사람들이 그 말을 알아듣지 못하니 답답할 밖에요. 외국어도 아니고 국어와 동격으로 인정받은 또 하나의 모국어인데 말이지요. 그러니 ‘수어’는 농인만이 아니라 모든 국민이 배워서 같은 국민들 사이에 소통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이치에도 맞습니다. 모국어를 배우는 건 선택이 아니라 필수니까요.
농인 중에는 외적으로 불편함이 없는 사람들이 많아서 어쩌면 그들은 다른 장애인들 중에서도 역차별을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장애인이라 하면 신체가 불편한 사람을 떠올리게 되니 말입니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사회에서 살아가는 불편함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해외에서의 경험을 다시 떠올려 보면 화장실이 급해서 사람들에게 물어도 답을 구할 수 없고, 택시를 타더라도 목적지를 전하기도 어렵습니다. 병원엘 가도 내가 어디가 아픈지 전할 수 없으니 위급한 상황에 처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저 까맣게 속만 타들어가는 것이 일상이 되는 셈이지요.
우리나라의 언어인 한국수어가 국어와 동등한 언어로 사용되기 위해서는 한국수어가 일상생활에서도 언어로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어에 대한 관심과 농인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절실히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