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 볼 시간은 별로 없지만 아침 마다 꼭 보게 되는 것이 바로 뉴스입니다. 출근준비를 하느라 앉아서 볼 여유가 없으니 될 수 있는 한 소리를 크게 해놓고 화장실로 방으로 분주히 움직입니다. 현재의 나는 그저 나가 아닌 세상 속의 나, 사회 속의 나이기 때문에 그 주변 것들을 결코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지요. 세상이 변하면 내가 서 있는 위치도 변하고 정치가 변하면 지금 당장은 눈에 띄지 않겠지만 결국 내 생활이 변하는 중대한 지름길이기도 하니까요.
그런데 요즘은 뉴스 외에도 꼭 보게 되는 프로그램이 생겼습니다. 그건 바로 ‘김제동’이 나오는 토크프로그램입니다. 내가 채널을 돌릴 때 마주치는 것이 본방송인지 재방송인지는 알 수 없지만 무심히 채널을 돌리다 멈추게 되면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끝까지 시청하게 됩니다. 그것도 뉴스처럼 귀로만 듣는 것이 아니라 소파에 앉아 정자세로 보게 되니 시간이 아깝게 느껴질 법도 하련만, 김제동의 토크쇼는 한 번도 내게 그런 생각을 안겨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뭔가 충족되는 느낌, 잃어버린 것들을 찾게 되는 소중한 느낌으로 충만한 느낌이 들곤 하니 참 이상한 일이지요. 적어도 내게 있어서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며 처음 느끼게 되는 감정이 아닐까 싶습니다.
김제동의 토크쇼는 평택대학교에서도 한번 본 적이 있습니다. 혼자 무대에 올라 이런저런 얘기들을 하는 김제동 씨를 보며 참 많이도 웃었습니다. 그런데 한참 웃다보면 이상하게 가슴 한 구석이 저린 느낌을 주는 사람이 바로 김제동 이었습니다. 난 그를 직접 만나본 적도 없고 그다지 열혈 팬도 아니었지만 그가 사람들과의 대화를 이끌어가는 장면에서는 배울 점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연히 발견한 텔레비전 토크프로그램에서도 그 느낌은 이어졌습니다. 그는 사회자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시간을 객석에 앉은 방청객의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이끌어갑니다. 김제동 씨는 그저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듣고 그에 대해 짧은 답변을 하거나 아니면 그에 대해 답변해 줄 또 다른 방청객이나 패널들에게 마이크 순서를 넘기는 것뿐이지요.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신들의 가슴 속 얘기에, 또는 다른 사람의 아픈 얘기에 함께 웃고 웁니다. 나 역시 그들의 이야기에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꼭 내 얘기를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그동안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던 것들이라면서 저들은 어째서 방송이라는 무시무시한 매체에 대놓고 개인적인 얘기들을 거침없이 쏟아내는 것일까 하는 의구심도 듭니다.
그러나 몇회를 거듭 보는 동안 김제동의 대화법이 항상 ‘너 중심’이구나 하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모두가 ‘나 중심’으로 대화하고 행동하는데 비해 그의 대화는 언제나 ‘너 중심’이었거든요. 그건 아주 특별한 발견이었고 그가 하는 ‘너 중심’ 대화법이 정말 큰 힘을 갖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나’가 아닌 ‘너’가 중심이 되어 ‘너’를 귀하게 여기는 대화법, 이 대화법이야 말로 서로를 이해하는 진정한 소통이 아닐까 하는 생각, 바로 ‘김제동’ 그대를 보며 갖게 된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