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브리가 불러온 재능 논란

엄마를 놓고 벌이는 남매의 경쟁

by 산들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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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나는 주방에서 라면을 먹고 있었다. 엄마가 들어오는 것도 모를 만큼 맛있었다. 갑자기 엄마가 울음을 터트리셨다. 놀라서 엄마를 쳐다보니 운동화를 가슴에 끌어안고 목메어 우셨다. 논산 훈련소에서 보내온 오빠의 운동화를. 종갓집의 종손이라고 그렇게 귀히 여기던 오빠가 군대에 간 거였다. 그 귀한 오빠에게 대든다고, 억센 딸이라고 구박받던 나. 그게 참 억울했던 나. 그런데 인정하고 말았다. 서럽게 우는 엄마에게 있어 오빠란 존재는 단순한 아들 이상이란 걸. 처음 보는 엄마의 울음 앞에서 처음으로 딸이 아닌 인간으로서 이해한 거였다. 그런 후 나는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오빠군대엄마울음_뒤통수팍.png


내 Threads에 올린 글에 달린 댓글이다. 당신이 우리 집에 대해서 뭘 알아? 불쾌했다. 그런 이유로 메타인지력을 발휘했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 엄마한테 물어봤다. 오빠 운동화 껴안고 왜 울었냐고? 엄마 하시는 말씀. 처음으로 떨어지는 거라서 울음이 났다고 하셨다. 부모 품이라는 것. 그래서 고생할 때 옆에서 챙겨주지도 못하는 게 가슴 아팠을 테지. 이 생각마저도 나의 가난한 상상력이라서.


성장기 오빠를 질투했다. 오빠가 제일 우선이었으니까. 나도 이쁨 받고 싶었다. 그만큼 엄마를 미워했다. 미운만큼 서러웠다. 그 서러움을 글로 풀었다. 그리고 지금 엄마와 나는 둘도 없는 친구사이다. 서러움도 한도 모두 다 털어낸 중년의 나는 조금은 너그러워졌고, 그래서일까 엄마를 대하는 눈도 넉넉하다. 3월 말 4월 초, ChatGPT로 지브리 스타일의 이미지(가족사진 등)를 만드는 재미로 세계가 떠들썩했다. 저작권 이슈로 지브리풍 이미지 생성이 막힐지도 모른다는 소문에 나도 유행에 편승했다.


KakaoTalk_20250402_114000176_01.png 엄마의 딸이 선택한 ChatGPT 이미지

지브리를 학습한 ChatGPT는 우리 엄마를 이렇게 묘사했다. 어깨가 두 뼘도 안 되는 가녀린 몸매에 보호본능을 절로 자극하지만 독립적인 성격에 워낙 까칠하신 분인데 인공지능이 포착할리가 있나. 한 없이 인자한 모습이다. 그리고 카톡 가족방에 이 이미지를 공유했다. 그게 4월 2일이었다. 그런데 오늘(4월 10일) 엄마 계정의 카톡을 보니 오빠가 이미 3월 31일에 ChatGPT로 생성한 이미지가 와 있었다.

엄마_오빠버전.jpg 엄마의 장남이 선택한 ChatGPT의 이미지


오빠 눈에는 엄마가 이렇게 보이는구나


스마트폰이라고는 전화 걸고 받기만 하시는 엄마, 카톡이라고는 신경도 안 쓰는 엄마에게

오빠가 보낸 사진이라고 알려드리니, 대번에 오빠에게 전화해서 "허리도 날씬하고 맘에 쏙 든다" 하셨다. 아무리 잘해 드려도 듣지 못한 말. 나는 안 되는 거였구나.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거였구나. 인정! 나는 오빠만큼 엄마가 이쁘지 않다ㅋ


자신을 이렇게 이쁘게 생각하는 자식이 더 이쁘지 않겠나. 질투는 나지 않았다. 그냥 같은 배로 난 자식인데 이렇게 엄마를 보는 눈이 다를 수 있나, 신기하기만 했다. 엄마 계정의 카톡 프로필 사진을 오빠가 보내 준 이미지로 변경하면서 생각했다.


그러고 보면, 재능이란 '좋아함'의 다른 말 아닐까?

아무리 노력해도 좋아하지 않는다면 지속할 수도 성과를 낼 수 없다.


AI 크리에이터라고 여러 인공지능을 실험하며 첨단기술을 선도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창작의 본질은
대상을 어떻게 바라보느냐, 였다는 걸 잊고 있었다.
화려한 기술이 아니라, 사람을 대하는 마음
사랑, 사랑이었다.


엄마의 하나밖에 없는 딸이 직접 찍은 사진과 하나밖에 없는 딸을 바라보는 엄마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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