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장메모리 털기 #1
외장 메모리 안에 갇혀있던 사진들을 꺼내봤다.
28살의 나는 다큐멘터리 사진가를 꿈꿨다. 주제는 '노동 소외'로 삼았다.
내가 '노동 소외'란 주제를 다룰 거라 하니
사진 선생님은 포스트모더니즘 이래 '노동 소외'라는 주제는 유효하지 않다고 했다.
아버지는 보기에 좋은 것, 아름답고 즐거운 걸 찍으라 하셨다.
하지만 나는 새것에 밀려나 이내 사라질 것들에 마음이 쓰였다.
2006년 12월, 종로구 이화동
아케이드 오락기에 몰입한 꼬꼬마들,
호빵 자판기 옆 조인성의 웃음,
낡은 피아노 간판,
전단지가 붙어있는 미용실,
꼬불꼬불 이어진 이화달팽이길,
간판이 닳은 비디오가게,
빼곡하게 옷이 걸린 컴퓨터세탁소,
구멍가게의 빨간 돼지저금통,
하얀 박스들이 진열된 전파사,
'HOF'와 넌센스 공연 포스터까지.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의 풍경을 의도적인 구도나 테크닉 없이, 그저 보이는 대로 찍었다.
10년, 20년 후
이 골목을 그리워할 누군가를 생각하면서.
* 종로구 이화동 낙산마을의 '도시재생 공공미술 낙산프로젝트'는 예술을 통한 도시재생의 시작점이었다. 그러나 2010년 KBS 예능 '1박 2일'에서 이승기가 날개 그림 앞에서 사진을 찍는 장면이 방영된 후, 이곳은 관광명소로 급부상했다. 늘어난 관광객을 겨냥한 카페와 음식점들이 들어서면서 임대료가 치솟았고, 원주민들과 오래된 가게들은 하나둘 마을을 떠나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