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왜 쓰는가

선거참관인, 7시간의 기록

투표소에서 본 사람과 풍경 |

by 산들바람

제21대 대통령선거에서 선거참관인으로 참여했다. 오후조였기 때문에 13시부터 20시까지 투표소를 지켰다. 참관인은 총 7명으로 민주당, 국민의힘, 개혁신당, 민주노동당, 무소속 후보 측으로 구성됐다. 7시간을 어떻게 앉아 있나 걱정했는데, 10분씩 2번의 휴식 시간과 17시부터 18시까지 식사 시간이 있어서 생각보다 견딜 만했다. 무엇보다 투표하러 온 사람의 다양한 모습을 지켜보는 재미가 있어 지루하지 않았다.


놀라운 건 투표하러 온 20대 청년이 많았다는 사실이다. 정치에 관심이 없어서 문제라던 시절이 무색할 만큼 진지한 모습이었다. 더불어 70대로 보이는 어르신들은 지팡이를 위풍당당하게 짚으시며 투표소 안으로 들어오셨다. 50~60대 중년 부부들은 자녀와 나란히 서서 차례를 기다렸고, 이제 막 유권자가 된 것으로 보이는 10대 청소년은 너무나 청량했다. 딸이나 며느리의 부축을 받고 온 80~90대 어르신들은 존경심이 절로 일게 했고, 젊은 부모를 따라온 꼬꼬마들은 투표소에 웃음을 자아내게 했다. 아기를 업고 온 앳된 얼굴의 엄마는 힘들어하면서도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장애인 콜택시를 타고 온 분, 휠체어를 밀고 온 분, 전동 휠체어를 타고 온 분, 어르신 보행기를 의지해 오신 분까지. 투표소는 다양한 사람들로 북적였다.


투표사무원이 한 어르신에게 물었다. "어르신, 이름 못 쓰세요?" 그렇다. 80, 90세 어르신 중에 한글을 깨치지 못한 분도 계실 수 있다. 그럼 어떻게 하나? 대신 써주는 걸까? 그러면 안 될 것 같은데…."그러면 여기에 지장 찍으세요." 아하, 이런 방법이 있구나. 인주에 지장을 찍은 어르신은 준비된 물티슈에 으레껏 손가락을 닦고 기표소로 들어가셨다. "글씨가 안 보여"하는 어르신이 계신다면? 그렇다. 돋보기가 미리 준비돼 있었다. 어르신들이 편하게 투표하실 수 있도록 곳곳을 배려한 세심함에 마음이 따스했다.


선거관리위원회 직원은 매시간 마다 투표 현황을 휴대폰 문자로 보고 했다. 투표함은 개봉할 수 없도록 규격 테이프로 봉해졌고, 투표함을 지키는 사무원은 투표용지가 많이 들어갔다 싶으면 투입구에 30cm 플라스틱 눈금자를 넣어 투표함의 공간을 확보했다. 투표용지를 접는 방식에서 그 사람의 성격을 엿볼 수 있었다.


접지 않는 사람과 세로로 접는 사람(잉크가 다른 후보에게 묻을까 봐 걱정하는)

가로로 한 번 접는 사람(투표 내용을 안 보이려고)

가로로 두 번 접는 사람(꼼꼼한 성격?)

가로로 두 번 접고 세로로 한 번 더 접는 사람(이해 불가!)


투표관리관은 투표자가 없는 틈마다 자양강장제와 사탕, 젤리, 과자를 나누어 주었다. "여기는 이것저것 참 잘 챙겨주네요"라고 하는 참관인도 있었다. 참관인이 처음이었던 나는 '아, 참관인도 해본 사람이 하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키가 너무 커서 기표소 칸막이 위로 머리 뒤통수가 나온 청년을 보곤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한 번은 중년 부부가 투표함 앞에서 나란히 주춤하더니 남편이 아내에게 투표용지를 살짝 보여주며 "됐지!"하고 말했다. 투표관리관이 제지했지만, 그들은 힐끗 웃더니 태연하게 투표소를 나갔다. 참관인들은 "잡혀 사네, 잡혀 살아. 크크"하면서 수군거렸다. 가장 극단적인 사건이라면, 70대로 보이는 꼬장꼬장한 할머니가 기표소에서 나오다 말더니 "에이XX, XXX 찍었네"하고 거친 욕설을 내뱉었다. 선거관리인은 화들짝 놀라서 "이름 말하시고 그러면 안 돼요!"하고 말렸고, 할머니는 신경질을 내며 기표소로 다시 들어가 탁!탁!탁! 여러 번 도장을 찍어 무효표를 만드셨다. 사전투표처럼 신분증만 있으면 어디서든 투표할 수 있다고 착각하고 온 1명과, 이사는 했지만 5월 2일까지 전입신고를 완료하지 못해 투표할 수 없었던 3명도 있었다. 그 중 19시가 다 되어서 온 분은 너무나 아쉬워하며 돌아갔다.


20시 투표가 끝나고 투표함의 투입구를 밀봉했다. 거기에 참관인이 서명했는데, 내 이름을 정자로 쓰는 기분이 참 묘했다. 투표 종료 후 5분 만에 개표소로 이동하는 호송 차량에 탔다. 경찰관 2명이 지원을 나왔다. 저번 선거에서는 조금밖에 안 늦었는데도 워낙 먼저 온 사람이 많아서 투표함을 건네는 데만 1시간 줄을 섰다고 한다. 그래서 참관인 중 한 분은 "안전보다는 속도로 가 달라"는 우스갯소리를 하셨다. 호송 차량은 노란 유치원 버스였는데, 운전기사분이 운전 실력을 십분 발휘하여 다른 호송 차량 2대를 제치고 개표소까지 5분 만에 도착했다. 그날 그 지역의 노란 유치원 버스는 선거에 총동원되어 줄줄이 개표소로 들어섰다. 개표사무원에게 투표함이 최종 인계되는 것을 확인하고 다시 호송 차를 타고 동주민센터로 와서 모두 헤어졌다.


그렇다면 나는 왜 참관인 역할을 자청했을까. 2025년은 정말 중요한 해이다. AI 기술 패권으로 세계질서가 재편될 중심 연도가 될 것이고, 경제는 제2의 IMF 위기설까지 나돌고 있었다. 자칫하면 하이퍼인플레이션의 교과서 같은 베네수엘라 수준의 나라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돌고 있다. 이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 고민했고, 적극적으로 투표하고 그 현장을 기록하고 싶었다. 내가 참관했던 투표소의 유권자는 약 1,800명. 그 중 투표한 사람은 1,375명. 약 73% 투표율로 잠정 집계된 전국 평균 투표율 79.4%보다 낮았지만, 요양원이 많은 특성을 고려하면 나쁘지 않은 수치라 했다.


국민의 선택을 받기 위한 민주당, 국민의힘, 개혁신당, 민주노동당의 싸움, 덩달아 서로 혐오하는 지지자들. 그러나 현장에서 목격한 그들은 모두 다 평범한 사람, 사람들이었다. 2025년 6월 4일 새 정부가 출범했고, 지금까지 여러 일이 벌어졌다. 그때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판단이 각자 다를 것이다. 바람이 있다면 이제는 싸움을 멈추고 온 국민이 한마음이 됐으면 좋겠다. 너무 순진한 바람일까? 하지만 7시간 동안 지켜본 사람들의 모습을 생각하면, 그들도 결국 같은 마음이지 않을까, 짐작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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