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제의 친구가 되고 싶어요!
ⓒ '마르코스 번스테인' 영화 감독의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장면 중에서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속 제제는 가슴속에 작은 새를 품고 살았다. 때때로 작은 새가 충동질하면 제제는 얄궂은 장난을 쳤다. 아무리 혼내도 말썽을 피웠기 때문에 마을에서는 작은 악마로 불렸다. 제제의 아빠는 실직했다. 오랜 불황 때문이었다. 엄마는 온종일 공장에서 일했다. 제제를 돌볼 여력이 없었다. 그래서 제제가 말썽을 피울 때면 형, 누나가 욕을 했다. 귀를 잡아당기고 엉덩이를 때렸다. 어린 제제에게 매 맞는 건 일상이었다. 불우한 일상 속에서 제제의 숨 쉴 틈은 라임오렌지나무와의 특별한 교감이었다.
제제는 말썽을 피우고 나면 자기가 악마 같다는 생각에 무척 괴로웠다. 그런 제제에게 선물과 같은 친구가 생겼다. 바로 멋진 자동차를 가진 뽀르뚜가이다. 뽀르뚜가는 제제의 예민한 감수성에서 천재성을 알아봤다. 그리고 아낌없는 사랑을 줬다. 아빠에게 혁대로 맞아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제제는 죽고 싶었다. 그런 제제를 살린 건 뽀르뚜가와 나눈 우정이었다. 그러나 그 깊고 깊은 우정이 제제를 너무 빨리 철들게 했다. 뽀르뚜가가 탄 자동차가 기차와 충돌하면서 뽀르뚜가가 하늘나라로 가자 제제의 동심도 같이 죽었다.
그래도, 그래도 다행인 것은 제제가 뽀르뚜가의 죽음으로 사경을 헤맬 때, 제제를 골칫덩어리로 부르던 모든 마을 사람들이 차례로 문병을 왔다는 것이다.
“빨리 나아야 된다, 제제. 네가 망나니짓을 안 하니까 거리가 온통 슬픔에 잠긴 것 같지 뭐냐.”
“내 어린 천사가 죽으면 안 됩니다. 정말 안 돼요. 제발 죽게 내버려 두지 마세요.”
이런 위로와 돌봄이 없었다면 제제는 아픔을 털고 일어날 수 있었을까? 다시 살아 어른이 되어서 자전적 소설인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를 쓸 수 있었을까?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지금이다. 초인종이 울려도 문을 열기가 겁나는 세상이다. 마을공동체가 파괴된 21세기에 제제가 설 곳은 과연 있는가? 수많은 매질에도 계속 장난을 친다면 ADHD 증후군 진단을 받는다. 나무와 얘기를 나눈다고 하면 조현병이라는 낙인이 찍힐 수도 있다. 동심을 지키며 사느라 고통의 나날을 보내는 오늘의 제제들에게 뽀르뚜가와 같은 존재가 되고 싶다. 그런 뽀르뚜가가 되기 위해 이 밤 나는 글씨를 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