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가 재밌다고?

[고생 끝에 낙]

by 산들바람

호기심이 많았던 나는 ‘왜?’라는 질문이 많은 학생이었다. 주입식 교육하에서 ‘왜’는 금기이다. 누구도 안 된다고 하진 않지만 눈치껏 삼가해야 하는 암묵적인 규칙이다. 애석하게도 눈치가 없던 나는 금기를 깰 때가 많았고 성가신 아이라는 눈총을 받아야 했다. 많은 선생님이 나를 귀찮아했고, 호불호가 강한 나는 선생님이 이상하다며 대놓고 싫어하는 티를 냈다. 삐딱선을 타고 천덕꾸러기가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그것이 어떤 질문이 됐든 이해하기 쉽게 알려주는 선생님이 내겐 있었다.


공부만 잘해도 무시당하지 않는 세상이라는 걸 초등학교 4학년 때 알았다. 그래서 나는 우등상을 받으며 초등학교를 졸업했고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상위권을 놓치지 않았다. 재미난 공부를 성실하게 하는 게 아니라 시험을 잘 보기 위한 공부만을 전략적으로 했다. 하지만 아무리 성적이 좋아도 나는 인문계 고등학교로 진학할 수 없었다. 우리 집은 삼남매 모두를 대학에 보낼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가정 형편이 나를 기죽게 해도 좋은 성적으로 꿀리지 않았는데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위기가 찾아왔다. 중 3 담임은 내가 상업고등학교를 갈 거라고 하니 부모님을 모셔오라고 했다. 단정하게 차려입고 온 엄마에게 담임은 상업계와 인문계의 차이점을 말하며 인문계를 가야 한다고 강권했다.


“형편이 안 돼서요.”


엄마의 말에 나는 담임 앞에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자존심에 금이 간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행동하면서 가장 들어가기 어렵다는, S 여상에 입학했다.

S 여상은 공부를 잘하지만, 가정형편 때문에 온 친구들이 대부분이었다. 나는 상한 자존심을 보상받기라도 하듯 써클 중에서도 인기 많은 전산반에 들어갔다. 그리고 전산반은 상고에서도 자부심을 느끼며 공부하게 해준 결정적인 역할을 해주었다. 그 중심에 바로 그 선생님이 계셨다.


선생님은 써클 지도 교사이면서 컴퓨터 프로그래밍언어 과목을 가르쳤다. 짙은 눈썹에 또렷한 눈매. 검은색 뿔테 안경을 낀 선생님은 참으로 멋스러웠다. 선생님을 닮고 싶었던 나는 안경을 쓰기 위해 코앞에서 TV를 보기도 하고 불을 끄고 책을 보기도 했다. 선생님은 나의 어떤 질문에도 술술 막힘이 없었다. 나는 박학다식이란 한자성어가 살아 움직인다면 선생님 같을 거라고 생각했다.


여름방학 내내, 우리 써클은 가을 축제에 있을 전시회 준비로 바빴다. 우리는 GW 베이직으로 프로그래밍한 2차원 그래픽을 전시하기로 했다. 16 비트 컴퓨터와 도스가 운영체제인 시절이었다. 지금이야 마우스로 아이콘을 탁탁 누르고 태블릿 펜으로 쓱쓱 그으면 되지만 그때는 군인이 삽질할 때처럼, 대단한 인내심을 발휘해야 했다. 즉흥적이고 성질이 급했던 나는 동기보다 어려움을 많이 느꼈고 모니터를 던지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만큼 골치 아픈 일이 많았다.


여름방학에 어디 놀러 가지도 못하고, 한 시간 넘는 시간을 들여서 학교에 가느라 기력이 달려도 나는 프로그래밍에 대한 재미를 점점 붙여갔다. 선생님이 작품을 보고 잘하고 있다고 칭찬하면 나는 어린아이처럼 우쭐거렸고 선생님의 기대에 부응하고 있다는 생각은 처음 맛봤던 콜라처럼 짜릿했다.


학생이 공부를 잘하는 비결은 선생님을 좋아하는 것이다. 프로그래밍이 아무리 힘들어도 선생님을 좋아하는 것만큼 내 작품은 좋은 꼴을 갖춰갔고, 선생님을 좋아하는 것만큼 프로그래밍하는 맛은 진해져 갔다.


작품 제목은 ‘열녀문’이었다. 조선 시대에는 남녀 이란성 쌍생아가 태어나면 대부분 여자아이는 죽이거나 버렸다고 한다. 이렇게 시작된 이야기는 열녀문이라는 제도가 어떻게 여자를 억압했는지에 대한 문제의식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드디어 축제 날! 나는 왼쪽 가슴에 빨간 꽃을 달고 양손에는 하얀 손수건을 끼고 작품 설명을 했다. 나의 도전적인 이야기는 받아들여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프로그램 리스트(프로그램 소스 코드를 인쇄한 것)를 벽면에 전시했는데 꽃, 초콜릿, 사탕, 동전, 메모지가 빼곡히 붙여졌다. 나의 이야기에 공감하는 여학생들이 많다는 게 놀랍고 신기했다.


손꼽아 기다렸던 순간이다. 선생님이 학교 목사님과 함께 전시장 안으로 들어왔다. 선생님이 내 작품 앞에서 어떤 표정을 지을지 쿵쾅쿵쾅 가슴이 뛰었다. 안내석을 지켜야 했던 나는 멀찌감치 떨어져서 선생님을 지켜봤다. 선생님과 교목님은 다른 작품을 지나 내 작품 앞에서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는 없었다. 그저 기분이 묘하면서 뿌듯했다. 아닌 척 내숭을 떨고 싶은데 배시시 하고 자꾸 웃음이 났다.



“선생님 제가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잘할 수 있을까요?”


컴퓨터와 힘겨루기를 하던 어느 날, 초롱초롱 한 눈으로 선생님께 질문했다. 느닷없는 나의 질문에 선생님은 장난기 가득한 눈으로 말했다.


“실핀으로 살짝 뚫으면 ‘팡’하고 터질 거야. 실핀이면 돼.”


선생님을 만나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끝내는 삐딱선을 타고 냉소적인 삶을 살고 있을까. 고생을 피하느라고 도망자처럼 살고 있지는 않을까. 선생님 덕분에 나는 성적을 내기 위한 공부에 그치지 않고 진짜 공부에 대한 재미를 붙였다. 나는 뒤늦게 대학에도 가고 다양한 분야에 호기심을 가지며 공부하는 삶을 살고 있다.


막힌 게 무엇인지, 그것을 뚫기 위한 실핀은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지, 수수께끼는 아직 풀지 못했다. 다만 ‘팡’하고 터지는 날, 선생님께 달려가 ‘드디어 터졌어요!’라고 말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고대한다.


최형제 선생님의 목소리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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