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편소설 - 집중력이 남다른 아이, 훈이 2/2
훈이를 껴안은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친구들과는 잘 어울리나요?”
“... ...”
나는 고개를 떨궜다. 더는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의사는 책상 위로 손을 모은 다음 다른 병원을 알아보라고 했다.
88올림픽이 열리던 해, 나는 초등학교 3학년이었다. 여름방학이 되고 당고개에서 성북동으로 이사 갔다. 고무줄놀이, 말뚝박기, 비석 치기 같이 놀던 친구들에게 인사도 못하고 전학을 했다. 새집은 당고개와 같은 달동네인데 새 학교의 친구들은 달랐다. 입는 옷부터가 그랬다. 나는 기가 죽었다. 골목을 주름잡던 말괄량이가 새 학교에서는 천덕꾸러기가 됐다. 담임이 아이들 보는 앞에서 보란 듯이 나를 예뻐했는데 그 게 촌지 때문이었다는 걸 한 참 지난 후에 알았다.
친구들이 무리에 끼워주지 않는 것보다 심각했던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나는 예상치 못한 행동을 하는 친구들이 무서웠다. 뒤에선 A의 욕을 하던 아이들이 A의 앞에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친한 척을 했다. A가 나쁜 애라고 생각하고 멀리한 나만 바보가 됐다. 그 후 나는 다른 사람의 행동에 담긴 뜻을 알 수 없을 때면 눈을 내리깔고 입을 다물었다. 남들에게는 무심한 척 행동했지만, 평생 남의 눈치를 살피며 살아왔다. 그래서였을까. 내겐 친구가 별로 없었다. 진정한 우정이라 부를 수 있는 친구가 없었다.
일주일 후, 남편과 Balance&Community 뇌발달연구센터를 찾았다. “니가 훈이구나.” 약간은 무표정한 얼굴에 전문의가 차분한 음성으로 말했다. 전문의는 눈을 감고 “꾸르구르” 이상한 소리를 냈다. 훈이가 고개를 돌려 손가락으로 전문의 입을 가리켰다. 몇 초 만에 훈이의 관심을 끈 건 아마도 전문의가 처음이었다. 전문이가 훈이와 검사를 끝낸 후 평가지를 내보이며 말했다.
“감각이 매우 예민한 아드님을 두셨군요.”
하기 힘든 말을 무겁지 않게 꺼내는 사람이었다. 전문의는 훈이가 알 수 없는 행동을 하는 건 세계를 지나칠 정도로 의식하기 때문이라고 알려줬다. 극도로 예민해진 감각에 압도당해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는 것. 자폐아가 눈을 맞추지 못하는 이유는 아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많은 양의 정보가 눈에 담겨 있기 때문이라는 거였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과 소통하지 못하고 자기 안에 갇히게 된다고 했다.
“완치가 가능한가요?”
“아이가 자폐증으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다면 결코 자폐적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어깨에 힘이 스르륵 빠져나갔다. 아이의 있는 그대로가 받아들여지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어른이 해야 할 일이지 않냐고 전문의는 타이르듯 말했다. 명치끝이 싸하게 저려왔다.
“저도 자폐증의 일종인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고 있습니다. 어때요 이만하면 나빠 보이지 않죠?”
어깨를 으쓱하며 말하는 전문의의 눈동자가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전문이의 눈은 맑은 우물 같았다. 우물에서 길어 올린 투명한 빛이 사위를 감싸고 돌았다. 수용되는 분위기에서 자란 아이는 예후가 긍정적이라고 한다. 곁에서 많이 웃어주고 많이 만져주라고 알려줬다. 또한, 장애가 아니라 특징으로 여기면서 그것을 강점으로 만드는 법을 부모부터 배우는 것이 Balance&Community 뇌발달연구센터가 추구하는 치료 방식이라고 했다. 동의서에 싸인을 하고 진료실을 나왔다. 품에 안겨 쌔근이 잠든 훈이를 봤다. 완치가 가능하다는 말이 어쩌면 발걸음을 더 무겁게 하지 않았을까.
서른여덟 살, 어렵게 임신한 나는 유도분만을 통해서 훈이를 낳았다. 세상에 태어나서 가장 잘한 일은 아이를 낳은 것이라는 감격도 잠시였다. 젖이 나오지 않아서 분유를 먹였는데 잘 먹으려고 하지도 않았고 어렵게 먹더라도 토해내기 일쑤였다. 밤만 되면 비명을 지르듯 울어댔다. 문 여는 작은 소리에도 깜짝 놀라며 나에게 매달리는 아이를 매번 안아 줄 수는 없었다. 곁에서 잠시 떼어 놓기엔 뽀로로만 한 게 없었다. 살림과 재택근무로 바빴던 나, 아이가 칭얼댈 때면 뽀로로를 틀어 주었다. 그러면 아이는 거짓말같이 얌전해졌다. 그렇게 뽀로로를 틀어주는 횟수와 시간을 늘어갔다. 사내 녀석은 2살 때 온갖 말썽을 피운다는데 순하기만 훈이를 보며 엄마 고생 덜어주는 효자라고 여겼다. 그동안 훈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신뢰할 곳을 찾지 못하고 자기 안에서 숨바꼭질하고 있는 훈이를 보자 뽀로로의 오른쪽 눈알을 달아주지 않은 내가 미웠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 공기는 낮게 깔렸었다. 숨이 차올라 창문을 열었다. 그래도 계속 숨이 찼다.
“다 내 탓 같아. 내가...”
멍하니 황색 신호가 깜빡이는 걸 바라보면서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누구 탓도 아니야.”
남편이 짧고 강하게 말했다. “썬! 니탓 네탓 가르지 말자. 그럴 힘 있으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응?” 남편의 목소리는 어느새 부드러운 중저음으로 바뀌어 있었다. 남편은 당장 필요한 게 무언지 찾아보자며 시무룩한 나를 달랬다. 그렇게 허물어질 듯한 나를 다독였다. 신호가 녹색으로 바뀌고 비보호 좌회전을 하려는데 맞은편으로 버스가 지나갔다.
“마마, 마마. 따요, 따요.”
파란색 타요버스를 보고 훈이가 손뼉 치며 좋아했다. 남편을 닮은 눈이 웃음으로 한가득하고도 넘쳤다.
아파트 현관 앞에 다다르자 자율방범대 아저씨가 어떤 남자와 얘기 중이었다. 가볍게 묵례하며 지나치려는데 그 남자가 말을 건넸다. “안녕하세요. 이번에 동대표로 당선된 김양성입니다.” 훤칠한 키에 배가 나온 남자는 회춘이라도 한 것처럼 혈색이 좋아 보였다. 남자는 잘하나 못 하나 비판만 하지 말고 살기 좋은 아파트를 만들기 위해 응원도 해주고 참여도 해달라고 말하고는 설문지를 건넸다.
“시간 날 때 작성해서 엘리베이터 앞에 있는 의견함에 넣어 주세요.”
나는 얼결에 설문지를 받아들었다.
“고 녀석 참 똘똘하게 생겼네요, 이름이 뭐에요?”
“훈이에요, 훈이”
옆에 있던 자율방범대원 아저씨가 머뭇거리는 나 대신 대답했다. “애 엄마가 그렇게 부르더라고, 맞죠?” 나는 자율방범대 아저씨의 얼굴을 똑바로 볼 수가 없었다. 눈을 맞추기가 부끄러웠다. 내가 대답을 못 하자 남편이 서둘러 말했다.
“네, 훈이에요. 훈이. 집중력이 남다른 괴짜 같은 녀석이죠.”
나는 목이 메어오는 걸 참으며 설문지를 읽어 내려갔다.
<끝>